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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May 01. 2018

한국 디자인의 구조적 문제

"한국에서 공예품이 '작품'이 된 것은 식민지 시대에 장인이 보호받고 나서의 일이다. 그때까지 멸시받고 있던 장인은 일본의 조선 취향에 의해 '조선미술'의 담당자로 높게 평가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생활에서 유리된 창작 작업을 하여 타락하게 되었다고 한국의 민족주의적인 미술 평론가들은 비판하고 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_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 오구라 기조, 119p



머리를 식히려고 펼친 책에서 의외의 문장을 발견했다. 이 문장은 우리나라 공예와 디자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반전(反轉)시킨다. 공예의 예술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 인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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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경우 아니 일본만 해도 예술은 공예가 되었다. 그렇게 멋진 근대의 풍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국은 반대로 갔다. 한국경제가 성장하면서 디자인의 양과 질은 높아졌지만 일상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삶의 일상은 늘 잿빛 혹은 혼란스런 키치였다. 최근에는 잿빛과 혼란스럼이 섞이고 발효되어 오묘한 빛깔을 낸다. 세계의 크리에이터들은 그 빛깔에 매력을 느껴 '힙'하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론 주목 받고 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 현재도 그렇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괴리에서 정신분열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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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한국 디자인의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면 일상에서 괴리된 예술화된 경향의 디자인, 일상에서 괴리된 수출지향형 산업디자인이다. 그래서 디자인은 자리를 잃고 벌거벗은 유령처럼 이 사회를 배회한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일부는 그 배회에 매력을 느끼지만 정작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환멸을 혹은 막연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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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된 원인을 쫓으면 일제시대로 거슬러 간다. 일제 시대에 조선의 공예가 귀족예술화 되면서 경쟁력을 갖춰갔다. 그 경향은 대학으로 이어졌고, 산업으로 이어졌다. 공모전과 전람회로 이어졌다. '함께'가 아닌 '경쟁' 지향으로 일상의 공예는 이상화된 공예가 되면서 일상이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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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조선 사회의 열악한 공예 현실에서 찾는다. 사농공상, 장인과 상인들은 비천한 신분이었고,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고단하게 만든 작품도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일본으로 끌려간 장인들은 능력을 인정받았고 호의호식했다. 그런 경향이 일제시대에도 확대되어 조선의 장인들은 신분상승의 기회를 갖는다. 작업환경도 좋아졌고, 작품도 인정받았다. 신이 난 장인들은 작가가 되고,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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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이 떠난 일상은 비천해졌다. 제대로된 물건이 없으니 엉망진창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누구의 책임일까. 오랜 억압에서 벗어나 신분상승을 꾀한 장인들을 탓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이에 앞서 결국 그런 환경을 조성한 우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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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계 밖에서 볼때 그들은 모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마치 조선사회에서 장인들이 무명으로 살면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처럼. 그나마 교수나 작가가 되어야 인정을 받는다. 마치 일제시대에 약간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처럼. 하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에게 그 기회는 언감생심이며, 정작 교수가 작가가 되어도 사회를 이끌만한 능력있는 인재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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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만나 인식의 반전을 겪은 나는 비판의 창끝을 되돌린다. 장인들이 아니라 민중에게... 그리고 비평가들에게도 부탁한다. 비천한 디자이너의 현실을 앞서 고민해줄 것을... 이것부터 현실화되지 않으면 일상은 계속 방치될 것이며, 아름다움은 늘 '관'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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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그것은 너무 쉽다. 길도 하나다. 바로 교육이다. 디자인이 경쟁력이고, 디자인이 아름다움의 판단기준이고, 디자인이 그토록 중요한 정책이 된 시대다. 심지어 디자이너는 예술가인양 행동하고 예술가는 디자이너의 흉내를 낸다. 예술이 디자인이 되고, 디자인이 예술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예술과 동시에 디자인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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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주변을 둘러봐라. 디자인을 배울 곳이 있는지... 없다. 대학외에는. 디자인을 배울 기회가 상실된 사회에서 무슨 디자인을 얘기한단 말인가... 해법은 여기부터 고민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디자인을 배워,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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