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May 27. 2018

디자인학교 1기


디자인학교 1기 마지막 트랙, 일상의 실천 김경철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사진을 한참을 보았다. 이 사진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뭐지? 넌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거니...

-

요즘은 책을 거의 못본다. 그래서 한달내내 한권을 들었다 놨다 했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이다. 다행이 거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데,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만났다.

"나는 여기 있을 권리가 있다"

"장소에 대한 투쟁은 존재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

-

디자이너는 디자인과 달리 소외된 존재다. 특히 한국의 디자인 현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소외를 당할만큼 게으르거나 무능력하거나 바보 같지 않다. 디자이너들은 사실상 디자인에 가장 근접한 전문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문성은 송두리채 무시당한다. 밤잠을 설치며 열심히 갈고닦은 그 전문성을.

-

디자인을 거의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조언을 한칼에 무시한다. 디자이너가 지신의 머리 속에 있는 답을 맞추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너무 못해" "디자이너를 믿으면 안돼"라고 무심코 내뱉는 말들... 수년간을 디자인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말들은 화살이 되어 심장에 꽂힌다.

-

디자이너가 현실에 느끼는 박탈감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다. 대학에 디자인과가 생긴지 70년이 가까운데 아직 제대로된 교육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탓에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디자이너인지 항상 의심한다. 그래서 늘 진정한 배움을 갈구한다.

-

한 분이 디자인학교 수업을 듣고 이런 말을 했다. "전 대학을 왜 다녔던 걸까요..." 이 말에 함축된 의미는 대학전공에서 배웠던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었다는 우회적 자백이다. 그분은 진짜 디자인 배움을 맛본 것이다. 최근 그는 열정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저 취업만을 위해 달려왔던 그는, 요즘 디자이너로서 자기 자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

존재적 자존감은 삶의 의지를 일깨운다. 그러면 앎의 의지가 생긴다. 앎은 아름다움의 축약어다. 아름다움은 지속성을 담보하기에 삶을 지속시킨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다. 이를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디자이너를 불신하면서 끊임없이 디자이너를 찾는다. 좀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그리고 불신한다.

-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이 사진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자리를 잃어버린, 그래서 소외를 느끼는 디자이너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배우는 모습. 그들이 배우는 이유는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기 위함이다. 알았다! 이 사진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난 이 사진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

"여러분은 자리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아요. 바로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당신의 자리예요!"

-

디자인학교는 일종의 장소이다. 디자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디자이너가 존중받는다. 배움이 있고 관계가 있으며 대화가 있는 장소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큰 의미를 품고 있는 우리가 디자인하는 학교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공디자인 진흥 종합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