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러 생각

노예, 농노, 노동자

by 윤여경

<사생활의 역사>에서 로마의 노예 파트를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로마의 말기를 우리 시대와 겹쳐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로마가 우리 시대와 얼마나 많이 다른지 알려주려고 쓴 책이지만,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힌 나로서 로마가 우리 시대가 얼마나 많이 같은지 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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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이건 도데체 어떤 존재일까? 이 책에서 로마의 노예는 주인에게 종속된 상태지만 도덕적으로는 존중을 권장하는 존재라 말한다. 당시 유행했던 스토아 철학은 시민들에게 높고 많은 도덕률을 요구했다. 마치 요즘 우리 시대 PC(정치적 올바름)라는 말이 유행하듯. 그렇다고 도덕적 주장이 종속된 노예의 제도적 현실을 바뀌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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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상태가 해방된 사건은 공교롭게도 서로마의 몰락이다. 기독교에 기반한 중세 문명이 시작되면서 '노예'는 '농노'로 명칭이 바뀐다. 서부 유럽에서 노예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노예의 입장에서 오도아케르를 혁명가로 부를 수 있을까? 프랑스 대혁명이 15세기 대항해 이후 다시 시작된 노예제를 철폐하는 계기가 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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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들자. 노예와 농노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순간 드는 생각에 따르면 노예는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종속된 존재다. 반면 농노는 육체만 종속된 존재다. 정신만큼은 영주가 아닌 신에게 종속된다. 왕과 영주 또한 신에 종속되어 있었듯이. 정신이 해방된 이들은 노예가 아닌 농노, 주인의 재산이 아닌 영주의 소작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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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이후 여러 나라에서 중세 계급제가 무너졌다. 근세 노예제도 철폐되었다. 동시에 자본가와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으며, 노동자라는 새로운 역할도 등장했다. 초기 노동자는 노예에 가까웠다. 삶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냈기에 육체와 정신이 모두 자본가에게 종속되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시작되고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노동자는 농노처럼 된다. 농노가 자신이 지은 농사로 자신이 먹고 살아듯, 노동자도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이 번 돈으로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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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노동자는 노예에서 농노의 단계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면서 노동자들의 육체적 종속도 조금 완화되고 있다. 하지만 종속이 줄어든 만큼 감시도 심해지고 있다. 좋은 취지의 정책이지만 시행과정의 중심에 있는 노동자들은 무척 혼란스럽다. 이 안개가 걷히면 새로운 세계,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지, 아니면 더 종속된 처지가 될지 알수는 없다. 높은 도덕률이 근본적인 노예제를 바꾸지 못했듯이, 좋은 정책이 근본적인 노동자의 현실을 바꾸긴 어려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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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시대가 로마에서 중세로 가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거대 종교에 기반한 봉건+장원제가 올 듯 싶다. 코미타투스라 불리는 봉건제는 영주와 기사의 계약관계다. 우리 시대 국민군이 줄어들고 용병이 늘어나는 현상과 유사하다. 우리 시대 영주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들은 국제적 용병들을 고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강제한다. 영주가 기사라는 친위대를 고용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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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제는 중세 경제체제로 일종의 농노계약이다. 최근 기업들은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하는 시장 활동만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란 명분으로 사회적 역할까지 떠맡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사회적 경제란 명분으로 화답한다. 자본주의가 네오장원제로 서서히 바뀌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나의 역사적 가설과 의혹을 점차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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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자다. 언론사에 근무하다보니 노예보다는 농노에 가깝다. 만약 디자인 회사에 근무했다면 노예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노예냐 농노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종속되고 계약된 노동자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회사에서 쫓겨나 자유민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재취업이 안된다면 끔찍하겠지... 자유, 자유민... 개념적으론 참으로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참으로 끔찍하다. 그렇다면 로마시대의 노예, 중세시대의 농노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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