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Jan 20. 2019

빅터파파넥

“소비주의 디자인에는 마케팅 이론은 있을지 몰라도 체계적인 디자인 이론이라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최범, 161p

-

옛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그 책을 다시 들춰본다. 최범 선생님은 10개의 디자인고전을 선별해 강의했는데 이 책은 그때 그 책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위 인용 문장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설명하는 구절중 일부인데 저 문장을 읽고 독서를 이어갈 수가 없다. 나의 초심을 강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

나는 빅터파파넥으로 디자인공부에 입문했다. 개정판이 나오기 전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읽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조판이 조악했지만 그 책을 무려 열차례 읽었다. <인간과 디자인> <녹색 위기>도 최소 세번씩은 읽었다. 오죽 했으면 읽었던 <인간을 위한 디자인> 책을 전시품으로 내 놓은 적이 있다. 모든 문장에 줄이 쳐 있고 중간중간 메모가 빼곡했던 부을 펼쳐서. 

-

어쩌면 이때 일종의 사명감을 가졌던것 같다. 마케팅에 종속된 디자인을 이론적으로 구명해야 겠다는. 그래서 마케팅도 공부하고 정치학도 공부하고 역사, 철학,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방면을 공부해야만 했다. 시장에 구속된 디자인을 꺼내려면 다방면으로 로비를 해야했고, 그러려면 그들의 논리를 알아야 했다. 

-

그렇게 나는 완전히 새로운 이론에 빠져들었다. 때론 이론을 위한 이론은 아닐까 우려했지만 일단 끝까지 가보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회의가 들었다.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무도 곁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지를 함께하는 친구는 있지만... 이론을 함께 하는 친구는 없다. 요즘 1-2명 생길랑말랑 하는데... 얼마나 갈까...

-

내가 위 문장에서 멈춘 이유가 이거다. 문득 ‘빅터파파넥 옆에 누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저 주장을 하고 약 30년간 저 주제에 골몰할때 꾸준히 함께 한 사람이 있었을까... 드물거나 없었다고 확신한다. 여전히 빅터파파넥’만’이 호명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

보통 위대한 사상가가 등장하면 학파가 생기고 그를 따르는 저작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를 위한 디자인>(나이젤 휘틀리)를 제외하고 빅터파파넥의 계보를 잇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을 소비자이거나 사물적인 대상으로 보는 인간공학 책만 난무할뿐 인간과 세상을 그 자체로 진실되게 접근하는 디자인 이론책을 만나지 못했다. 

-

인간이건 세상이건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디자인은 이 존재들 사이를 매개한다. 그렇기에 더욱더욱 아주아주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가장 밑바닥에서 겸허하게 세상을 수용해야 하는 이론이자 이념이 디자인이다. 그래서 이 뜻을 함께 하기란 더욱 어려운듯 싶다.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어쩌겠는가. 외로워도 누군가는 가야 하는것을... 다시금 빅터파파넥을 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튜브 디자인학교TV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