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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15. 2019

돈 쓰기

나는 자본가는 아니지만 자본가에 관심이 많다. 교육가와 정치가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한 탓도 크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자본가에게 희망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자본가들과의 교류를 반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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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점에서 자본가를 주목한다. 첫번째는 '돈을 어떻게 벌었냐'. 두번째는 '돈을 어떻게 쓰냐'이다. 나는 돈을 잘 못벌기에 돈을 잘 버는 자본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불법, 탈법, 착취, 거짓이 아니라면 그 성과를 크게 존중한다. 돈을 버는 무용담을 듣고 있으면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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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자본가에게 관심을 두는 주안점은 후자다. 나는 돈을 잘 벌지는 못했지만, 제법 잘 써왔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쓸때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적어도 나 자신만의 배를 불리고 시간을 죽이는 향락에 돈을 많이 낭비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먹고, 누군가가 함께 하는 향락을 더 중시한다. 또한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은 소질도 없다. 그렇다고 돈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한채, 차한대 정도는 소유하고 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소유는 오히려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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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쓸때 가장 아쉬운 것은 모험을 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가끔 모험을 감행한다. 그렇게 지난 10여년동안 쓴 돈이 약 5000만원 정도는 되는듯 싶다. 주로 디자인읽기, 디자인학교 등에 썼다. 이 돈을 쓰는 재미는 아주 쏠쏠했다. 돌이켜볼때 만약 내가 이 돈을 나 자신을 치장하고 더 많은 돈을 위해 투자하는데 사용했다면 정말 아까웠을 것이다. 어쩌면 다 잃어버렸을지도. 지금의 관계, 경험, 모험, 가치 등은 전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혀 아깝지 않다. 앞으로도 이 정도는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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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나 카네기는 자신이 번 돈으로 많은 일을 했다. 인문학, 과학, 의학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랬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도 20세기에는 그랬다. 많은 재벌들이 학자와 대학 등 교육을 후원했다. 그 덕택에 비옥한 사회적 토양을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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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젠가부터 재벌들은 학문과 교육을 후원하지 않고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학자와 대학도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조하며 투자를 유치하고 자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자와 대학은 경쟁력이 없었다. 경쟁에 크게 실패하자 재벌들은 투자를 거둬들였고, 학자와 대학은 국가에 기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급격히 관료화되었다. 여기서 관료화란 경직되어 멈춰버렸단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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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건희와 김우중의 죽음이 너무 슬프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자본력으로 상당히 많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유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을 뿐이다. 만약 이 분들이 록펠러나 카네기처럼, 가깝게는 빌게이츠나 버핏처럼 인생 말년에 전재산을 털어 학문과 교육 등 사회적 가치에 후원했다면 엄청난 존경과 명예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엄청난 욕과 질타만 얻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분들의 삶은 자녀들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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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을때 엄마는 외할머니를 엄마가 다니는 학교 옆에 있는 요양원에 모시고 아침점심저녁을 함께 먹었다. 한번은 엄마가 수저를 뜨지 못하는 외할머니를 뒤에서 안고 밥을 먹여주는 광경을 우연히 보았다. 마치 엄마가 어린 아이를 먹이듯. 그 광경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엄마가 아프면 저렇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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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즉 좋은 모범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 사람이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자본가들이 이건희가 아닌 카네기나 빌게이츠의 삶을 모범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쓰는 것을 가치있게 여겼으면 좋겠다. 투자가 아니라 후원으로 사회적 가치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경쟁과 성과가 아닌 실패와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낙수효과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좋겠다. 돈을 잘 쓸때 누리는 명예와 보람을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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