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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25. 2019

은유와 한국어

이성민 샘에게 레이코프의 '은유언어학'을 소개받아 그의 책을 읽고 인간의 언어가 신체화되어 있기에 경험에 의해 언어가 무의식중에 신경패턴으로 새겨지고, 이 신경패턴에 의지해 추상적인 단어를 소통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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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앎은 나의 공부에 있어 큰 성과다. 수개월동안 레이코프와 존슨의 <몸의 철학>을 읽고, 다마지오와 스피노자, 장자의 책을 읽었다. 이를 통해 지난 10여년동안 내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착각해왔는지 어느정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추구해야할지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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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을 요약하면 인문학과 별개로 느껴졌던 과학이 인문학과 아주 밀접하며 그 접점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되었다. 쉽게말해 분리되어 있던 철학과 과학이 내 안에서 통섭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이걸 나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느냐인데... 이 또한 어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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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잠깐 숨을 돌릴겸 최봉영의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을 읽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책이 나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존비어체계를 알고 싶었는데, 이 책안에는 존비어체계보다는 한국어와 한국인에 대한 보석같은 내용이 가득했다. 나는 책을 덮는 즉시 그 감상을 글로 공유했고, 최봉영 샘의 강의 영상과 기사를 찾아 읽고 책을 몇권 더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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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나의 글을 본 최봉영 샘이 메일을 주셔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 분을 좀더 덕질한 뒤에 디자인학교에 특강으로 모실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 보석같은 내용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명하느냐였는데... 반갑게도 샘이 페이스북을 시작하셔 이제 나만이 아니라 나의 많은 친구들이 이 분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덕분에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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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봉영 샘을 덕질하면서 느끼는바 은유언어학의 주장처럼 인간의 언어는 확실히 신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활짝'과 '살짝'은 활쏘기 경험과 연관된다. '누리' '누리다'는 무언가를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경험과 연관된다. '우리'는 울타리를 연상시키고, '나'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느낌을 준다. '고루'는 무엇을 고르는 느낌이고, '덕'은 무언가를 쌓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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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샘의 한국언어학을 읽으면서 레이코프가 일차은유라 말한 인간의 일차적인 신체경험을 떠올린다. 이 경험은 앞뒤, 위아래, 안밖 등이다. 신체에 의한 상황을 전제로한 경험이 어떤 소리를 갖고 이 소리가 동사가 되고 명사가 되고, 문장이 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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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명과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문명과 문화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문명과 문화를 이해하려면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 우린 과연 한국어를 알고 있는가? 어쩌면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최봉영 샘을 알고 이 착각이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다는 착각만큼이나 위험한 것은 없다. 그 착각들이 많은 문제를 낳았고, 이 문제들이 쌓여 해결조차 어려운 난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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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샘은 나에게 주변의 대상만이 아니라 상황을 디자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셨다. 가령 '인간관계' '대화'와 '수업' 등을 디자인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상황적 문제들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즉 한국인의 관계, 대화, 수업 등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 최봉영 샘은 이 앎의 바탕이 되고 있다. 올해는 참으로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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