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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23. 2021

시각언어 4강-1

색과 뇌

(9) 시각언어의 또 다른 요소, 색(色)

1) 입자와 파동

색은 시각적 형태요소들과 함께 시각언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색은 의미 요소가 담겨 있는 언어가 아닙니다. 색은 시각적인 느낌으로 추상적인 요소에 가깝습니다. 특정색은 어떤 의미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경험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죠. 파란색의 경우 어떤 사람은 희망을, 어떤 사람은 우울함을 상상합니다. 같은 색을 두고 전혀 다른 판단을 하죠. 이렇듯 색은 보편적인 언어가 아니라 개별적인 경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추상적 요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다소 자유롭죠. 그래서 색을 활용할때는 문화적 특징보다 물리적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럼 색의 물리적 특징이란 무엇일까요. 

색채학자 문은배는 영어에서 color의 어원은 colos로 ‘덮다, 가리다’라고 말합니다. 비슷한 발음인 kel은 인도 유럽어계에서는 ‘숨기다, 가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체에 숨겨져 있는 그 무엇이 있는데 빛이 있기 전에는 숨겨져 있다가 빛이 있으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무언가 속 안에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을 색으로 여긴 것이죠. 두가지 어원 중 전자는 색을 입자로 보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색이 입자로 구성되어야 덮고 가릴 수 있으니까요. 반면 후자는 색을 속에 있는 성질, 즉 속들이=속성으로 보았습니다. 이 속성은 빛에 반사되어 보이게 되죠.

실제로 물리학에서 색은 입자이자 파동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색을 입자로 보았습니다. 입자로서의 색은 '덮는 것'입니다. 물감과 잉크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물감은 캠퍼스나 벽을 덮음으로서 우리에게 보여집니다. 다양한 색이 덮힘으로서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죠. 때론 이 느낌에 의미가 부여되기도 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주로 사용하는 포토샵 같은 그래픽프로그램에서는 색을 CMYK로 구분합니다. 사이안 C는 파랑, M은 핑크, Y는 노랑,  K는 검정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색깔들을 섞어서 다양한 색을 표현합니다. 그러면 색에 주어진 값대로 잉크가 섞여서 프린트되죠. 디지털 출력도 전통적인 그림과 마찬가지로 입자로서의 색입니다. 

입자로서의 색은 기술력이 좌우합니다. '라피스 라즐리'라 불리던 파란색은 청금석을 갈아서 만든 것입니다. 이 광물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만 나오기때문에 아주 귀한 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양미술사에서 이 색은 성모나 성인 같은 귀한 사람들에게만 사용되었습니다. 비슷하게 귀한 색은 반짝거리는 노랑입니다. 예상하셨듯이 금색은 실제 금을 아주 얇은 박으로 펴서 사용했습니다. 이렇듯 과거에는 물감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화려한 색을 가진 그림은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독점했습니다. 주로 왕과 귀족, 거대 종교에서 조각과 그림에 색을 사용했죠. 그래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미술 유산이 전쟁과 종교의 기록입니다. 

서양미술사는 색기술사로 보아도 재밌습니다. 근대의 기술 혁신만 간단하게 소개하면 15세기 초 얀 반 에이크 형제는 오일 페인팅 즉 유화를 발명합니다. 유화 이전에는 에그 템페라라 불리는 수채화 기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안료를 계란에 섞고 이를 물로 희석해서 사용했죠. 이 물감은 금방 마르는 장점이 있지만 불투명했습니다. 색위에 색을 덮어도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았죠. 반면 안료를 기름에 섞으면 물감이 반투명해집니다. 그래서 색을 덮을수록 묘한 깊이감이 생기죠. 그래서 아주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물감이 금방 마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죠. 서양에서 안료는 주로 청금석의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등의 동양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상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강렬한 색채 미술이 등장하죠. 대표적인 곳이 베네치아입니다. 앞으로 베네치아 미술을 보실때는 화려한 색을 유념해서 보시면 좋습니다. 

19세기 들어와 이 물감을 보관할만한 튜브 기술이 등장합니다. 화가들은 더이상 물감을 만들고 보관할 걱정을 하지 않았도 되었죠. 게다가 어디든 물감을 들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미술에는 풍경화가 많아집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비전문가들도 그림에 도전할 수 있었죠. 그렇게 등장한 미술가들이 고흐와 고갱, 세잔 같은 후기 인상파입니다. 

화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안료를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감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잉크가 됩니다. 잉크는 대량인쇄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화려한 포스터와 홍보물들이 대량으로 인쇄되어 세상에 뿌려졌습니다. 잉크와 인쇄 기술은 점점 발달했고,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어떤 색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색이 있을 뿐이죠.        

현대의 양자물리학에선 색을 빛(파동)으로 봅니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나오는 빛은 입자가 아니라 파동입니다. 파동은 덮는 것이 아니라 반사되는 것입니다. 빛이 어떤 대상에 비춰지면 그 대상의 속성에 따라 반사되는 정도가 달라지죠. 우리는 그 반사된 빛을 보게 됩니다. 사실 물감이나 잉크처럼 인위적으로 덮은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보는 색들은 모두 반사작용입니다. 심지어 그려지거나 인쇄된 색도 반사작용으로 보는 것이죠. 물감의 안료 또한 특정 속성을 가진 물질을 대상에 덮음으로서 반사되는 상태를 조정한 것이죠. 그렇기에 색은 근본적으로 파동이고 반사의 작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색을 사용할때 입자와 파동은 흰색과 검정색에서 두드러집니다. 입자의 상태에서 흰색은 잉크를 덮지 않은 상태입니다. 인쇄를 할때 흰색을 표현하고 싶으면 그곳에는 어떤 색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부분은 아예 인쇄되지 않죠. 인쇄되는 종이가 색지인 경우 그 색지의 색이 그대로 인쇄됩니다. 노랑색 색지에 흰색을 인쇄하면 그냥 노랑색이 나오죠. 흰색 부분은 잉크가 없으니까요. 파동의 상태에서 흰색은 모든 빛이 겹쳐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주 밝은 빛은 흰색입니다. 태양이 가장 강하게 비출때 하늘의 태양을 보면 흰 빛깔에 눈이 부십니다. 한국말의 '하양'은 바로 '해'의 경험이 반영된 색이름입니다. 입장의 상태에서 검정색은 모든 색이 겹쳐진 상태입니다. 파랑색(C)과 핑크색(M), 노란색(Y)을 모두 합치면 검정색이 됩니다. 반대로 파동의 상태에서 검정색은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반사할 빛이 없으니 모든 것이 검게 보이죠. 이렇듯 입자와 파동의 상태에서 흰색과 검정은 정확히 반대입니다. 참 재밌죠. 

검정과 흰색의 반대가 시사하는 바는 입자로서의 색과 파동으로서의 색이 역할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입자로서의 색은 대상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색입니다. 파란색 안료로 벽을 칠하면 그 벽은 파란색 안료로 덮힌 셈입니다. 이 파란색 벽이 빛에 반사되어 사람에게 인식되는 것이 파동으로서의 색입니다. 그래서 입자=색은 대상 그 자체의 속성이라면, 파동=색은 대상과 인식하는 사람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대상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입자=색 속성과 인식하는 사람이 여기는 파동=색 속성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대비에 의한 예술교육

앞서 강의 초반에 언급한 '바우하우스' 기억하시나요? 추상적 요소들로 재밌는 실험을 많이 했던 예술가들이 모인 학교라고 소개했었죠. 이들은 의미요소를 완전히 제거된 추상적인 점선면으로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생활양식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때 최초로 주목한 것이 바로 '색'입니다. 

바우하우스 설립 당시에는 색체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설립취지도 중세 공예길드를 표방했고, 소묘와 원근법 중심의 아카데미 교육이 더이상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 주로 공예에 관심을 두었죠. 그래서 재료다루기와 기술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설립자인 그로피우스는 아예 예술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우하우스 초기에 합류한 학생들은 이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 학교에 오면 제대로된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을거야 생각했습니다. 당시 바우하우스에는 칸딘스키와 클레와 같은 유명 예술가들이 많았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교육이 불가능하다니 황당한 상황이었죠. 

이럴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요하네스 이텐이 합류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됩니다. 이텐은 바우하우스가 공예가 아니라 예술 교육을 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주장했죠. 이텐은 자신만의 예술교육 커리큘럼을 운영하기 위해서 그로피우스에게 '예비과정'을 개설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로피우스의 허락을 받아 개설된 예비과정은 바우하우스 교육을 대표하는 과정으로 성장합니다. 바우하우스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이 예비과정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예비과정은 바우하우스 교육이 후일 디자인 교육의 모태가 됩니다. 

이텐이 시도한 예술교육 방식은 바로 색채 대비 교육입니다. 그는 슈트투가르트 아카데미에서 빈분리파 출신의 아돌프 휄첼에게 색채대비 교육을 받았습니다. 핵심은 '대비'입니다. 이텐은 휄첼에게 배운 색체 대비를 더 섬세하게 다듬고 확장합니다. 색상의 채도 아니라 명암과 보색 등 다양한 맥락에서 색채 대비를 시도하죠. 심지어 따뜻함과 차가움 등의 온도느낌도 대비에 적용합니다. 이 대비 교육은 재료와 형태로 확장됩니다. 철과 유리, 나무, 돌 등을 만지고 느끼면서 대비를 통해 재료의 성질을 파악합니다. 칸딘스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색과 형태를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수업초기 음악과 연관해 소개했던 추상화입니다. 

이텐은 대비를 통해 감각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술교육은 다소 이성적인 접근이었습니다. 수학적인 원근법과 형태를 인식하는 소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텐은 대비를 통해 이성에서 감각적 감성으로 예술교육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것이죠. 이 감성적 대비가 색채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연 색이 무엇이길래.

3) 색의 맥락

뇌신경의사인 올리버 색스는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다양한 환자들을 소개합니다. 특이한 사례가 태어나서 얼마뒤 시각을 잃었다가 수십년 뒤에 되찾는 경우입니다. 수십년만에 세상이 보이면 어떻게 보일까요? 얼룩덜룩한 색깔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크기감, 거리감 등은 전혀 감지할 수 없죠. 그런데 손으로 만지고 소리를 듣게되면 비로소 대상의 입체가 느껴지고, 거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뇌가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수십년간 뇌는 시각에 써야할 자원을 다른 감각에 나눠준 것이죠. 그래서 시각은 다른 감각의 보조 수단으로서만 쓰일 뿐, 단독으로 사용되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죠. 또 다른 사례는 뇌의 특정영역이 다쳐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이는 상태입니다. 시신경에서 색채는 감각하는데 뇌에서 색을 해독하지 못해, 색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올리버 색스는 이를 통해 색은 눈으로 감각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색은 눈만이 아니라 뇌에서 인지할때 비로소 감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색이 보이려면 최소한 4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먼저 눈이 있고 이를 인지할 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빛이 있어야 하고 이 빛이 반사되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빛이 대상의 속성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여지겠죠. 정리하면 색은 대상에 반사된 빛 자극을 눈이 반응하고, 이를 뇌가 재구성해 느끼는 상태입니다. 이를 물리적인 용어로 바꾸면, '파장이 대상에 반사된 광자가 몸에 반응해 기존의 기억으로 해석 감정'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좀 어렵죠.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빨간 사과를 볼때 밝은 곳에서나 어두운 곳에서 그 사과가 '빨간색'이라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감각으로도 그렇게 보입니다. 분명 빛이 다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색이 다르게 반사되는데 우리 뇌는 같은 색으로 인지합니다. 이를 '색지각 항상성'이라 말합니다. 올리버 색스는 우리가 색을 인지하는 것은 감각에서 오는 정보보다 기억에 내재된 정보가 훨씬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색지각 항상성이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그 비율이 무려 9:1입니다. 즉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것에 9할은 눈이 아니라 뇌의 작용이란 말이죠. 

4) 공감각적인 색

삼각형과 동그라미 기억나시나요? 형태가 다른데 이상하게 소리가 다르고 촉감, 맛조차 다르게 느껴졌죠. 시각적 형태는 단독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라 다른 감각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를 공감각이라고 말하죠. 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텐이 색채대비를 다룰때 따뜻함과 차가움이라는 촉감을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색 인식도 공감각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대상에 부딪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죠. 상상력을 다소 쉽게 하기 위해 작은 입자들이 어떤 대상에 부딪친다고 가정해보죠. 이런 빛 입자를 '광자'라고 말합니다. 물론 광자는 무게나 부피 등 질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빛의 속도란 이 광자들이 움직이는 속도인데 1초에 약 30만km를 갑니다. 달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죠. 달에서 누가 전등을 끼면, 우리는 그 빛을 1초뒤에 봅니다. 우리가 달을 볼 수 있는 이유는 태양에서 출발한 광자들이 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태양과 달까지 거리를 가만하면 태양 광자가 달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8분입니다. 이 광자가 달에 부딪쳐 우리에게 오는데 1초 걸립니다. 즉 우리는 8분1초만에 태양에 반사된 달빛을 보는 셈입니다. 

광자가 대상에 부딪치면 온갖일이 다 벌어집니다. 작은쇠구슬이 작은쇠구슬로 가득한 덩어리에 부딪쳤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쇠구슬들은 그 덩어리 속으로 들어가고, 어떤 쇠구슬들은 튀어나오겠죠. 쇠구슬 덩어리에 있는 쇠구슬들도 난리가 납니다. 부딪쳐서 자리를 바뀌고, 어떤 쇠구슬을 부딪처 튀어 나갑니다. 이렇게 쇠구슬들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소리도 나고 열도 납니다. 일종의 마찰열이죠. 예를 들어 태양의 광자가 달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면 달의 소립자들이 광자들과 뒤섞이겠죠. 그리고 여기서 반사되는 것들이 지구에 있는 우리의 눈에 감각되고 뇌에 지각됩니다. 달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일단 옆에 있는 별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시나요? 혹은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 하나요? 물론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빛을 보면서 분명 무언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빛은 파장입니다. 이 파장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역을 '가시광선'이라고 말합니다. '가시광선'의 짜임뜻은 굳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광선' 정도로 아실 것입니다. 이 가시광선을 프리즘에 비추면 여러가지 색깔이 배열됩니다. 우에서 좌로 '빨주노초파남보'죠. 앞의 6색은 뉴튼이 발견했고, 보라는 나중에 발견되어 추가되었습니다. 이를 우리는 무지개색이라고 말합니다. 비가 내리고 개면 빛이 공기중에 남은 물방울에 반사되고 굴절되어 프리즘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죠. 

그림에서 보시듯 파란색은 파장이 조밀합니다. 무척 빠르고 조밀하죠. 이 파장은 빨강으로 갈수록 느려집니다. 그래서 파랑쪽 파장을 단파장, 빨강쪽 파장을 장파장이라고 말합니다. 긴 장파장은 느린만큼 깊숙히 들어갑니다. 나이가 들면 시신경이 쇠퇴해 단파장의 색들이 잘 인지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장파장의 색들이 눈에 확들어오죠. 그래서 어르신들은 빨간색 같은 밝은 원색을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눈에 잘 들어오니까요. 

제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이 파장이 작용하는 감각들입니다. 사실 소리도 파장=파동입니다. 열도 마찬가지죠. 높은 열이 난다는 것은 내부의 입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단파장인 파랑의 경우 높은 열이 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파랑색 옆에 있는 자외선, X선 등에 맞으면 위험합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쓰는 광선처럼 타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반면 빨간색 옆에 있는 적외선과 라디오파는 맞아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파랑색이 차갑고, 빨간색이 따뜻하게 느껴질까요? 이는 반사때문입니다. 우리가 색을 지각하는 것은 빛 그 자체가 아니라 빛이 대상에 반사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차갑게 느껴지는 파랑색을 가진 대상은 실제로 차갑지 않고 뜨거운 상태입니다. 빨간색은 반대겠죠. 그러나 촉감은 빛 그 자체입니다. 가스불을 켜면 파란색 불빛이 확 올라오죠. 절대 손을 대면 안됩니다. 반사되어 눈에 인식되는 빛의 파동과, 들리는 파동은 연동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상 그 자체는 반대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색이 소리와 열이 일어나서는 현상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색, 소리, 열은 같은 현상의 다른 이름이죠. 제가 어떨때는 학생이고, 어떨때는 선생이고, 어떨때는 아버지이고, 어떨때는 직원인 것처럼 파장이 감각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 상황입니다. 색의 이런 물리적 특징은 다소 보편적입니다. 앞서 제가 색은 문화적 특징보다는 물리적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색을 사용할때 그 색이 주는 문화적 약속보다 물리적 현상이 더 믿을만 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파란색은 어떤 의미일까요? 문화적 약속은 '우울'과 '희망'이 동시에 공존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파란색이 우울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을 의미합니다. 파란색에 대한 경험이 어떻냐에 따라 색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쩌면 100명에 파란색을 보여주면 100명 모두가 파란색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할 것입니다. 반면 물리적 특징은 다소 공공적입니다. 단파장인 파란색은 차갑고 높은음이 느껴집니다. 실제 파랑색은 뜨겁지만 반사되면 차갑게 느껴지죠. 그래서 파란색을 보면 경쾌함이 느껴집니다. 사실 이는 상대적인 느낌입니다. 여기서 차가움, 높은음, 경쾌함은 빨간색과 상대적으로 볼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빨간색은 낮은음, 뜨거움, 장엄함이 되겠죠. 이렇듯 색은 그 자체보다는 물리적 상황에서 상대적인 대비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텐이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요. 

자 이제 색상환표를 보시죠. 어떤 느낌인가요? 색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어떤 촉감이 느껴지나요? 여러분의 느낌이 바로 색을 선택하는 기준이 됩니다. 물론 '대비'를 잊지 마시고요! 


5) 색 경험과 바탕치기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면 즐겁습니다. 이 즐거운 상황에서 몇가지 색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물리적 특징입니다. 먼저 물의 색이 다릅니다. 잔잔한 상황에서 물은 파란색입니다. 수영장의 표면이 파란색이기에 다소 투명한 물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겠죠. 그런데 아이들이 물장구를 칠때 물방울이 튀는 곳은 흰색으로 보입니다. 같은 물이고 같은 공간에 담겨 있는데 잔잔한 상황과 물장구치는 상황이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이죠. 이는 앞서 말한대로 반사되는 물의 상황이 달라져서 빛을 다른 방식으로 반사하기 때문이니다. 우리는 그 반사된 것을 보기에 둘의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이 수영장에 아이들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있다고 생각해보죠. 그럼 어떤 느낌일까요? 마냥 즐거워보일까요? 아니면 감기 드실까 걱정될까요? 이 또한 아이의 부모와 어른을 모시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이 수영장에는 어르신들보다 어린이들이 어울리다는 점은 동의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물의 파란색과 흰색의 대비가 차갑고 경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반면 음식 사진을 보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음식은 대부분 붉은 색 계통입니다. 포카리스웨트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음식을 파란색으로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왜 음식은 대부분 붉은 계통일까요? 네 따뜻함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차가운 음식도 붉은색이면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뭔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들게하죠. 

이처럼 색의 물리적 현상은 색을 쓰는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음식 브랜딩을 한다고 할때 파란색은 아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붉은색 계통을 선택해야 안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죠. 양산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국의 양산은 주로 흰색인데, 일본에 가니 대부분 검정이더군요. 어떤 색이 양산에 맞을까요? 한국사람들은 백의민족이라 흰색을 좋아한다는 엉뚱한 말은 생각나더라도 자제하십시요. 차라리 여름엔 흰색이 밝아보여서 좋다는 말이 설득력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여름에 검정은 좀 답답해 보이니까요. 그럼 더 더운 곳에 사는 일본 사람들은 왜 검정색 양산을 선호할까요? 이는 물리적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얀색은 모든 빛을 갖고 있는 색이라 빛을 반사합니다. 바깥쪽은 빛을 반사하기에 시원한 느낌을 주는데, 안쪽으로 들어오는 빛은 차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산의 구조상 안쪽 빛의 반사는 모두 얼굴을 향하게 됩니다. 양산을 쓸 이유가 없죠. 아니 오히려 얼굴을 상하게 합니다. 반면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합니다. 그래서 겉에서 볼때 검은색 양산은 답답해 보입니다. 그러나 안쪽의 경우 검정색이 훨씬 좋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흡수하기에 얼굴이 상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양산의 색은 어때야 할까요? 안쪽은 검은색, 바깥쪽은 흰색이 적합합니다. 그렇다고 검정색, 흰색이 정답이니 그렇게 써야한다고 하면 재미없습니다. 디자인엔 정답이 없으니까요. 안쪽은 어두운색, 바깥쪽은 밝은색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되겠죠. 이렇듯 색의 물리적 특징은 내가 어떤 대상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색을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려면 교통법규에 규정된 색이 나옵니다. 빨간색은 주로 위험을 표시하고, 노란색은 경고, 녹색은 안전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운전면허필기시험에 노란색이 의미하는 바를 물으면 반드시 '경고'라고 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약속이니까요. 앞서 시각언어를 이야기하면서 언어는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공성이란 일종의 약속입니다. 어떤 맥락에서 이 기호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약속이죠. 교통법규야 그렇다치고 우리의 말도 시험을 보나요? 물론 국어시간이 있긴 하지만 시험문제에 "너에게 노란색이 어떤 의미냐?"라는 문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해 볼 수 있습니다. "노란색은 왜 이름이 노란색이지?"라는 질문이요. 색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어느날 제가 아이에게 주황색을 가르키며 "이건 무슨 색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오렌지!"라고 답하더군요. 저는 즉각적으로 이 아이가 색이름 바탕치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렌지 경험과 색을 연결시켜 이름을 지은 것이죠. 사실 '주황색=오렌지'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색이름 입니다. 어른들도 주황색을 오렌지라고 여겨 '오렌지색'이란 말을 흔하게 사용합니다. 이렇듯 오렌지라는 색이름은 기본층위 범주에 속하는 단어입니다. 

사실 우리의 색 이름은 대부분 직관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림과 말의 여김 바탕치기가 일어난 상황이죠. 그럼 노란색의 어떤 경험과 바탕치기를 한 것일까요? '노루'입니다. 노루는 사시사철 노란색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루의 색을 보고, '노랑'이라는 말을 만든 것입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경험+말' 바탕치기이기에 굳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말이 공공성을 갖게 되어 오래오래 이어지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파랑은 바다의 '파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푸른색은 '풀'에서 비롯되었고요. 이런 바탕치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저는 어릴때 연주황을 '살색'이라고 말했습니다. '연주황'이라는 한자말은 무슨말인지 가물가물한데, '살색'하면 즉각적으로 어떤 색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인종차별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 색이름이 문제가 됩니다. 새로운 색이름 바탕치기가 요구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바탕치기를 통해 '살구색'이란 이름을 짓습니다. 시대적 인식과 삶의 맥락이 달라지면서 '살색'이 '살구색'으로 바뀐 것이죠. 앞서 언급했듯 이런 말놀이는 말의 공공적 규칙을 바꿉니다. 바뀐 규칙은 다시 우리가 대상을 감각지각하는 바탕을 이루게 되죠. 요즘 젊은사람들에게 살색이란 말을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한가지 더 사례를 살펴보죠. 한국의 도로를 보면 자동차가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흰색 아니면 검은색입니다. 요즘은 색이 다양해졌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사람들은 무채색을 선호합니다. 겨울에 거리를 주의깊게 보시면 온통 검정색 패딩입니다. 확실히 한국사람들은 흰색과 검은색 혹은 회색을 선호합니다.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날 색채별 자동차 판매량 통계를 보니 인도는 녹색과 빨강 같은 자동차 판매률이 상당히 높게 나오더군요. 한국은 한자리수 판매랑인데, 인도는 두자리수 판매량이었습니다. 왜 한국사람과 인도사람은 자동차 색의 선호가 다른 걸까요? 이 판매량을 분석한 글에는 한국사람은 시베리아에서 온 초원민족이기에 주변환경 색이 흰색과 검정색을 주로 경험했고, 인도사람은 적도근처의 숲에서 살아왔기에 녹색 등 다양한 컬러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하더군요. 확실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타당한 분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경험과 말의 여김 바탕치기에 앞서 경험과 그림의 새김 바탕치기를 기억하시나요? 어쩌면 그 땅의 기후와 자연환경 때문에 무의식중에 감각과 색의 새김 바탕치기가 일어난 것일지도 모르죠. 

새김과 여김의 바탕치기로 만들어진 색이름은 색을 선택하는 기준과 연관 있습니다. 색에서 소리를 듣고, 열을 느끼듯 사람들의 살아가는 경험에 의해 색이름을 규정됩니다. 색이름은 공통경험에 근거하기에 말의 공공성을 갖기 마련입니다. 말은 집단지성의 산물이기에 색이름도 물리적 기준처럼 색 선택에 위한 공통 기준 자격이 충분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색의 문화적 기준을 적용하고 싶으면 매체가 가볍게 말하는 색 기준(가령 파란색=우울함)이나 몇몇이 공유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색이름'에 주목하세요. '말=색이름'에 여러분이 찾는 단서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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