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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오발탄

by 윤여경

https://www.youtube.com/watch?v=rS4ocZjT0q0


코로나19로 다소 어수선하지만 한국 사회의 윤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나 디자인학교TV의 '놀며 말하며'에서 함께 본 영화 <오발탄>은 우리 사회의 윤리가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나와 이지원, 김의래 선생은 함께 영화를 보면서 '놀지' 못했다. 영화가 주는 메세지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마침 최봉영 샘의 오래전 책 <한국 문화의 성격>에 오발탄의 주요 대사가 나와서 인용해 소개한다.


양심을 강조하며 묵묵히 가족을 부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형에게 동생이 대들며 말한다.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쯔 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안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봉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되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이 없거든요. 흥!"


이 말을 듣고 형이 동생의 마음이 비틀렸다며 나무라자 동생은 말을 이어간다.

"글쎄요. 마음이 비틀렸다고요. 그건 아마 사실일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비틀렸어요. 그런데 그 비틀리기가 너무 늦었어요. 어머니가 저렇게 미치기 전에 비틀렸어야 했지요. 한강철교를 폭파하기 전에 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 명숙이가 양공주가 되기 전에 비틀려야 했지요. 환도령이 내리기 전에 하다 못 해 동대문 시장에 자리라도 한 자리 비었을 때 말입니다. 그러구 이놈의 배때기에 지금도 무슨 내장이기나 한 것처럼 박혀 있는 파편이 터지기 전에 말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전에, 제가 뭐 무슨 애국자나처럼 남들은 다 기피하는 군대에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노라고 자원하던 그 전에 말입니다."


결국 동생은 은행강도를 하다 잡혀간다. 잡혀가서도 형에게 자신이 인정(人情)에 이끌려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며 아쉬워 한다. <오발탄>은 1959년 이범선의 단편소설로 2년뒤 유현목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나는 이 소설과 영화가 해방이후 지금까지의 한국사회의 바탕에 있는 윤리를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저 동생과 같은 정서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이 사회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형이 추구한 삶의 태도를 추구해 왔다. 그렇게 윤리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사회가 급격히 쇠락하면서 사라진 윤리적 기준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재생되고 있는듯 싶다. 우리는 윤리적 기준이 바뀌는 그 중간 어딘가 혹은 과도기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곧 전환점을 돌기 시작한듯 싶다. 잘못 쏘아진 오발탄이 제자리를 향하길 바란다.


*인용 <한국 문화의 성격> 최봉영, 399-4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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