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위한 예술' 이 말은 늘 그 뜻이 궁금했다. 왜 당시 예술가들은 이런 말을 했고, 왜 이 말을 그토록 좋아했을까? 지금까지 나는 윌리엄 모리스를 따라 이 말을 부정만 했지. 이 말이 지닌 진정한 뜻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
혁명시대 이후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일자리와 갈 길을 잃었다. 일자리야 그렇다치고 정말 힘든 것은 '길의 막막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잃어버린 길은 무엇일까? 나는 '역사적 의미'라는 생각이다. 즉 이들이 잃어버린 것은 '예술의 존재 의미'다.
-
존재 의미를 상실하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나라면 어떻게 새로운 존재 의미를 찾을까? 과거 예술은 민족, 지역문화, 종교 등 온갖 의미를 함축한 역사적 기록물이었다. 이 기록물을 더 탁월하게 만들어 심미성을 극대화 시킨 것이 르네상스 미술이다. 이 미술이 존재하려면 자신들의 지역문화, 민족, 종교의 가치가 탄탄해야 한다.
-
하지만 혁명으로 지나간 모든 것의 기능과 의미가 상실되었다. 사람들은 과거의 업적보다 새로운 미래를 더 중시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지역과 민족의 경계가 사라지고, 과학이 종교를 대체하면서 예술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처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예술은 3가지다. 과거의 예술을 폭파하거나, 지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보편적 표현을 발명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찬양하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 서양 미술은 이렇게 나아갔다.
-
인상파의 미술은 개인의 작품이지 프랑스의 작품이 아니다. 고흐가 프랑스사람이건 러시아사람이건 일본사람이건 중요하지 않다. 고흐는 그냥 고흐일 뿐이다. 몬드리안과 말레비치,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그 어떤 지역문화와 민족성을 발견할 수 없다. 클림트와 코코슈카, 쉴레 등은 과거의 미술을 계승하는듯 하지만 가만보면 파괴에 더 가깝다. 미래파와 뒤샹 등의 다다이즘, 바우하우스 등은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찬양하거나 준비했다.
-
나는 이 모든 활동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모리스 이전까지만 생각했었다. 이후는 모두 '예술의 공예화'라는 좁은 식견속에서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부터 서서히 진행된 '예술을 위한 예술'이야말로 19~20세기 예술을 대표하지 않을까 싶다. 이 예술은 바로 '비역사적 예술'이다.
-
이런 점에서 일본사람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을 의미하는 fine art 를 '미술'이라 번역한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미술'이란 말이 역사적 예술작품과 현대적 예술작품 모두에 무분별하게 쓰이니 배우는 사람들은 헷갈리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