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와 존댓말

by 윤여경

1. 먹어

2. 밥 먹어

3. 여경 밥 먹어

4. 여경 밥을 먹자

5. 여경아 밥을 먹자

6. 여경씨 밥을 먹어요

7. 여경선생님 진지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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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달해 왔을까. 아마도 처음은 동사였을 것이다. 그 다음은 동사의 대상이 나오고, 그 다음에 동사의 행위자가 나왔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기본 구조다. 이후 말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섬세하게 구분하기 의해 의미를 나타내는 몸통말에 구실을 나타내는 겿씨말(토시, 케이스, 격)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토시가 섬세하게 발달했을 것이고 급기야 상황에 따라 말의 몸통 자체가 구분되는 말로 발달했을 것이라 본다.


위 예시문은 말의 발달을 나열해본 것이다. 처음에 나오는 "먹어"는 가장 단순한 말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여경선생님 진지 드세요"는 가장 복잡한 말이다. 이런 말은 서로 어려운 사람에게 격식있게 말해야 할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어느말이던 격식있는 말은 어렵다. 아무래도 말이 복잡하니까. 그만큼 소통도 어렵고 판단도 느리다. 하지만 말이 복잡해질수록 말뜻이 섬세해지고 품격도 올라간다.


한국말은 격식있는 말이 아예 형식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존댓말이란 형식이 등장했고, 반말과 구분되었다. 최봉영 샘은 이 존댓말+반말을 '존비어체계'라 규정하셨다.


이성민 샘은 최봉영 샘 책을 읽고 한국사람들이 존비어체계 말형식에 얽매어 서로 맘껏 소통하지 못함을 발견했다. 더 큰 문제는 한국말에선 격식있는 존댓말이 너무 강조되어 친구관계 자체가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직관계만큼이나 수평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이성민 샘은 한국사람의 말소통 구조 자체가 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말을 디자인하기로 결심했다.


이성민 샘의 말 디자인은 위 예시에서 3-4단계의 말이다. 말의 모든 구조가 갖춰진 상태에서 가장 소통이 빠르고 격식이 없는 말을 고른 것이다. 한국사람은 5단계만 가도 상하관계가 만들어진다. 누군가 "여경아"라고 부르면 그 사람은 친구이상의 관계라는 느낌이 생긴다. 친한 형이나 누나 등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편하게 부를때 '아'를 붙히니까.


그래서 이성민 샘은 호칭에 겿씨말(토시)를 생략했다. 아무래도 호칭에 격이 붙으면 뒤의 말들에 영향을 주기마련이니까. 이름만 부르고 약간의 격식을 갖춘 반말을 쓰는 방식을 도입했다. 3단계의 호칭에 4단계의 반말을 쓰는 방식이랄까. 선생님은 이를 '평어'라 명명했다. "여경 밥 먹자" 첨엔 좀 어색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디학에는 두개의 말이 있다. 3-4단계의 평어와 6-7단계의 존댓말이다. 상호평어를 쓰거나 상호존댓말을 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말을 골라 쓴다는 점이다. 서로 편하게 소통해야만 할때는 평어를, 서로 격식을 차리고 싶을때는 높힘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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