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기과론(因緣起果論)

by 윤여경

오늘 저녁 최봉영 샘을 뵙고 두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를 소개하면 '하는' 것을 이루면 '함'이고, '되는' 것을 이루면 '됨'이다. 그리고 '다운' 것을 이루면 '다움'이 된다. '함'과 '됨'이 '다움'과 다른 점은 결과이다. '함'과 '됨'은 분명한 결과가 있지만 '다움'은 딱히 결과가 없다. 뭔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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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사시공부를 '함'으로서 법조인이 '됨'은 결과가 분명하지만 법조인'다움'은 결과가 불분명하다. '다움'은 늘 그다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움'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가깝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러고보니 '다움'과 '다음'은 발음도 비슷하네. 거참 신기하네. 아니 자연스러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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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깨달음은 인과론과 연기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까지 인과관계와 연기관계가 똑같은 의미라 여겨왔다. 그런데 지난주 묻따풀 강학회에서 인과론과 연기론이 다른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며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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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론은 '나는 학교에 간다'에서 '학교에'를 지우고 '나는 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이 원인이고 '간다'가 결과이다. 그렇기에 인과론에선 '학교에'가 소외된다. 인과론이 가장 두드러진 말이 영어이다.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인과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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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론은 '나는 학교에 간다'에서 '학교에'를 강조한 말이다. '나는'은 '학교에'와 연이 되어 '간다'라는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나'와 '간다'는 '학교에'라는 연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12연기나 5온들이 서로 연결된 관계로 보았다. 그런데 위와 같은 개념으로 보니 12연기와 오온 등은 연결된 말이 아니라 연을 일으키는 존재와 상황을 분류해 나열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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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론에서 '학교에'가 소외된다면 연기론에선 '나는'과 '간다'가 소외된다. 이 둘을 모두 소외시키지 않으려면 '인연기과론'이 되어야 한다. '나는'이 원인, '학교에'가 연, '간다'가 기, 마지막으로 모두를 합쳐 '나는 학교에 간다'라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래서 한국말은 원인인 곧이말(주어)과 연기 관계인 맞이말(목적어)이 함께 결과를 풀어내는 지님말(동사)로 나열된다. 선생님은 한국말에 인과론과 연기론이 고루 담겨있기에 '인과론'만도 아니고 '연기론'만도 아닌 둘 모두를 포함한 '인연기과론'이라 말해야 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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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국말은 "나는 학교에 가는 바람에 친구를 만났다"는 말이 자연스럽다. 이때 중요한 말이 '바람에'이다. '바람에'를 한자로 하면 '풍류'이다. 위 문장에는 원인(나는)과 연(학교에), 기(가는)가 연결되어 '나는 학교에 가는'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다시 '바람에'로 연결해 연(친구를)가 나오고 기(만났다)가 나와 "나는 학교에 가는 바람에 친구를 만났다"는 전체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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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왜 최치원이 한국말에 유불선이 다 들어있고 그걸 왜 '풍류'라 말했는지 알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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