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시간이다. 한국말에서 '때'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때는 'ㄷ+다+이'로 시간이 아니라 순간이다. 시간의 한국말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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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바르는 것'이다. 바르는 존재인 바람은 질량이 없고 운동만 있는 상태다. 마치 전자(광자=빛)처럼. 바람은 머물지 않는다. 전자처럼 모든 것을 바르며 흐른다. 바람에도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 양자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는 위치와 운동의 동시성이 불가능한 상태다. 전자는 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인트(자리)가 실체가 있는 점이 아니라 실체 없는 포지션(자리값)인 것처럼 전자도 입자적 실체가 아니라 흐르는 개념일 뿐이다. 그래서 전자의 흐름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고 바람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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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시간을 바람이란 말에 담았다. 바르는 경험을 실체성이 없는 흐름으로 여기고, 고유명사인 '바람'이란 말을 만들어 자연의 어떤 현상을 바람이라 말했다. 이를 다시 추상명사로 만들어 현재 생각하는 미래의 꿈을 '바람'이라 말했다. 이 바람이 바로 '욕망'이다. 또 앞말과 뒷말의 흐름을 이어주기 위해 '바람에'라고 말했다. "최봉영 샘을 만나 한국말을 배우는 '바람에' 디자인이론에 눈을 뜨게 되었어" 이처럼 한국사람에게 '바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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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바람이다. 사람은 말로서 생각하기에 말도 바람이다. 말은 머물지 않는다. 언제나 바르면서 스쳐간다. 전자처럼 빛처럼 시간처럼 바람처럼. 스치는 말을 붙잡은 것이 글이다. 사람은 운동하는 말을 글입자로 만들어 특정 위치에 고정시켜 머물도록 했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운동의 말을 위치로 변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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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가 '축의 시대'를 열었을 것이다. 즉 '축의 시대'는 문자혁명이다. 말의 바람이 글로서 실현된 세상이다. 축의 시대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바람=욕망을 글로 고정시킴으로서 불안한 마음을 달랠수 있었을 것이다. 인쇄혁명과 교육혁명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고 쓸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축의 시대 사람들의 바람이 거의 완성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새삼 글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현대 물리학의 꿈이 이미 수천년전 문자의 발명으로 해결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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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바람이 분다. 이젠 글이 없어도 말을 음성으로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아가 인터넷이나 가상현실(메타버스)처럼 새로운 시간을 만들수 있는 세상이다. 오래전부터 가상현실이었던 전통 미술은 실체적 공간만 있고 시간이 없었다. 반면 현재의 가상현실, 전자와 빛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은 실체적 공간이 없고 시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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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시간에 매달릴까. 공간에 속박된 자연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자연의 공간과 시간은 동시통제가 불가능하니까. 축의 시대 2.0이 시작되고 있다. 이 시대는 절대공간이 아니라 절대시간을 추구한다. 영생과 영원, 지속가능성을 원한다. 그러려면 자연이란 공간적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세상, 인류세가 시작된다고 한다. 인류세라... 나는 이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인본주의보다 더하다. 이처럼 오만한 말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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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쓰여진 이 바람의 흐름이 바로 풍류다. 풍류는 말이며 시간이며 전자의 흐름이다. 이 풍류안에 유불선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론과 연기론, 쪽론 등 각종 이데올로기가 모두 들어있다. 경험과 생각, 논리와 은유가 모두 들어있다. 사실 시간에 담기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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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최봉영 샘 덕분에 깨달은 것이다. 아래 도식도 최봉샘이 직접 그린 것이다. 글로서 고마운 마음을 남긴다. 고맙습니다.
덧) 최봉영 샘의 '바르다' 설명 : 한국말에서 바르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벽에 종이를 바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에서 뼈를 바르는 것입니다. 벽에 종이를 바르는 것은 어떤 것을 덮어서 바르는 것이고, 살에서 뼈를 바르는 것은 어떤 것을 걷어서 바르는 것입니다. 바람은 덮어서 바르는 일을 하자 마자 곧바로 걷어서 바르는 일을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바람은 언제나 늘 바르고 바르는 일을 하는 것으로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사람은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저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이 ~하는 바람에 ~이 ~한다"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