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짧은 인생을 돌이켜보면
10대는 부모님이 누구냐가 중요했고,
20대는 어느 대학을 다니냐가 중요했고,
30대는 어느 회사에 다니냐가 중요했고,
40대는 어디에 사냐가 중요한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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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사냐'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아파트' 다른 하나는 '강남'이다. 물론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 살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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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만 보면 '부동산 투자를 독려하는 자기 계발서'처럼 보이지만 책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의 서문에서 말하듯 '사는 곳'에서 '사는 것' 나아가 '사야만 하는 것'으로 바뀐 부동산 실태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냉정한 평가를 다룬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부동산 투자를 원하는 사람' 입장을 이해하면서 '그 입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강남아파트'의 작은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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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은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그는 한 개인을 인터뷰하고 그 개인의 경험과 삶을 통찰해 이와 비슷한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끌어온다. 가령 가정돌보미를 인터뷰하고 역사에서 돌보미와 비슷한 처지의 계급과 한 개인의 삶을 비교한 다음, 그 계급과 개인이 어떤 삶을 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즉 개인의 시선에서 일반적인 역사로 흐르는 이 서술방식 덕분에 역사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일반화된 역사를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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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젤딘의 역사서술과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두 사람, 1945년생 엄마와 1975년생 딸의 삶에서 '아파트'와 '강남'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끌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이들의 삶과 생각을 쫓아가며 '강남+아파트'라는 세계가 어떻게 구축되고 구성되어 왔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얼마전 MBC에서 이 책을 기반으로 다큐까지 제작되었다. 다큐를 보고 책을 읽으면 더욱 재밌다. http://www.imbc.com/.../culture/docuflex/vod/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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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엄마이야기, 2부는 딸이야기, 3부는 강남 아파트에 대한 진지한 수다이다. 이 수다에 등장하는 경신원 샘의 대담자 '수다쟁이'는 나다. 샘과 나(수다쟁이)는 강남과 아파트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주고 받았고 출판사에서 각색해 정리했다. 이후 경신원 샘이 다시 정리했다. 이런점에서 수다쟁이의 말은 온전히 윤여경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신원 샘과 출판사의 생각이 섞여있다.
나는 이 대화를 마치며 '강남 아파트'를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의 '안채'로 규정했다. 이 땅에서 '안채'는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일단 안채의 주인은 '여자'다. 대한민국의 인재는 이 안채에서 길러진다. 그래서 강남은 현재 한국 교육의 메카이다. 40대 자녀를 둔 부모는 강남 입성을 꿈꾼다. 20-30대를 살며 어느정도 기반을 닦아야 40대에 강남입성이 가능하고 자녀에게 더 많은 교육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산 증식은 덤이다. '강남=안채'라는 부정할 수 없는 인식 때문에 강남붐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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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이 말하듯 강남이 처음부터 한국의 안채였던것은 아니다. 강남이 안채의 지위를 획득했듯이 새로운 지역이 부상해 안채의 지위를 빼앗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강남에 안주하는 것은 먼미래 즉 자녀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의 40대가 강남아파트에 열광하는 것처럼 미래의 40대도 그러란 법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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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책이 어려워야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깊이는 소수에게만 특혜가 주어진다. 마치 강남의 복부인처럼. 이 책은 쉽다. 쉽다고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쉬우면서 깊이가 있다면 다수에게 혜택이 주어진다. 나는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강남과 아파트, 나아가 '사는 곳'인 동시에 '사는 것'인 집에 대해 깊이 생각할 혜택을 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