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대칭의 학문이다. 대칭이 자연에서 가장 근본적인 미의 바탕이라고 본다면, 수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태도이자 방법론이라 볼 수 있다. 그럼 수학은 어떻게 대칭이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구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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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은 바로 ‘치환’이다. 그리고 수학의 연산이란 치환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이자 약속체계이다. 가령 1이 있다. 1에다 1을 더하면 2가 된다. 이를 수식으로 간단하게 쓰면 1+1=2이다. 여기서 두 개의 1이 더하기라는 연산을 통해 2라는 형태로 치환된 것이다. 여기서 더하기 연산은 +로 표기하고 치환됨은 =으로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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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하나의 현상 혹은 정보가 더하기 연산을 통해 전혀 새로운 현상이나 정보로 치환되는 과정을 대칭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연의 대칭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학문은 물리학이나 화학, 즉 대칭을 요구하는 ‘과학’과 ‘철학’의 기초이자 바탕이 된다. 이론 물리학자들의 언어가 수학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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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토대로 우리는 ‘기호학’이라는 분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기호도 소통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연산과 치환이자 대칭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기호의 치환은 수학처럼 대칭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기호를 만들 때 생각했던 의미를 모두 형태로 표현할 수 없고, 또 형태가 담지한 의미를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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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도 수학처럼 분명 뭔가 치환은 되었는데 그 연산 과정을 알 수 없다고 할까. 마치 인공지능이 뭔가 결과물을 내놨는데 인간이 그 연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연산 과정을 인공지능 개발자조차 모른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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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과 수학처럼 분명 연산과 치환의 대칭 구현은 맞다. 다만 기호는 숫자 체계처럼 그 연산 과정을 모르기에 우리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연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이 짐작은 인류학, 언어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의 인간 문명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인문학, 문학이나 영화, 미디어 등의 비평적 도구로 활용된다. 즉 기호학이 갖는 어림짐작의 한계가 그대로 다른 인문학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 인문학이 과학에 밀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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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전제를 기반으로 기호학을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산 과정을 모른다면 그 모름의 현실을 수용하고, 이를 방법론적으로 재정립하면 된다. 마치 인류가 소리문자를 발명하고 나름의 체계적 소통을 시도한 것처럼. 사실 따지고 보면 숫자도 어떤 대단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조차 인간의 공통 인식을 바탕으로 발명한 약속체계 아닌가. 다만 그 약속이 운이 좋게 자연의 체계와 맞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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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상대적 인식에서 기호학의 새로운 지평을 생각했다. 과거 300년 전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지구에서는 정확했지만 우주에서는 항상 오류가 생겼다. 대칭적 치환이 안 되는 그 오류의 원인이 빛을 근거로 한 우주 시공간 차이라는 것은 1900년 무렵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확립하고 어긋난 대칭적 치환을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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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은 바로 양자물리학으로 이어지며 고전물리학과 결별을 하는데, 이 양자 가설은 여전히 그 정확한 통합적 연산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쉽지 않을 듯싶은데, 그 이유는 수학적 체계 자체가 인간이 발명했기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 한계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양자 가설은 수학을 버릴 때 새롭게 정립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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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화성의 시공간이 다르듯, 기호로 소통하는 주체의 시공간도 다르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상대성이론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시작부터 양자역학이었고, 중간 연산 과정을 모르기에 은유 등 다양한 소통 기법을 개발하며 인공지능 기술까지 이르렀다. 이쯤 되면 상대성이론을 인정할 법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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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2000년 전 장자는 득어망전, 물고기를 잡았으면 그물을 버리라고 했다. 이 말은 뜻을 얻었으면 언어를 버리라는 말로, 언어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다. 어쩌면 장자의 가르침처럼 그냥 기호의 의미를 즐기되 연산 과정을 정확히 알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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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호학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래서 나는 기호적 방법론에 더 천착하게 된 듯싶다. 마치 인류가 수학적 방법론을 찾았듯, 진리가 아닌 재밌는 방법을 쫓는 것이다. 처음 수학적 체계를 발명한 사람은 얼마나 재밌었을까. 처음 알파벳이나 한글을 발명한 사람은 얼마나 짜릿했을까. 그 재미와 짜릿함이 자연의 진리를 찾음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방법론에서 나온 것일까? 디자이너의 감으로 볼 때 나는 후자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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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호상대성이론’이란 바로 이런 접근방식에서 시작한 것이다. 기호와 소통을 이해하는 정확한 진리의 이론이 아니라 재밌고 짜릿한 방법적 접근! 어쩌면 기호학과 양자역학은 이 지점에서 사실 만날 수 있다는, 그 기대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