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완주 Jan 24. 2021

우울의 우물

다시 넘어질 나에게(1)

어제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기사 하나를 읽었다. 어떤 사람의 자살, 그리고 자신이 겪은 깊은 우울에 대한 글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가 함구령(너무 익숙하다)을 받고 아무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 채로 인터넷에서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검색했었다고 한다.


댓글창은 비난 일색이었다. 그냥 그 신문사에 대한 불호인지,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한 거부감인지, 아니면 기사라고 하기엔 너무 개인적인 문체에 대한 지적인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몰아가길래 워워하는 댓글이라도 남길까 했는데, 원래 포털 뉴스에 댓글을 쓰지 않는 성향인 데다가, 댓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김과 동시에 그 난리통 속에 끼는 것 자체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미 다 겪어버렸다.


글이 아주 개인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언뜻 읽어도 연령과 전공과 성향이 보였다. 어, 나랑 같은 전공이네. 글을 보니 성향도 비슷하네. 그래서 그 기사의 필자가 겪은 일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던 것 같다. 게다가 필력 좋은 사람이,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써놓은 그 우울증의 증상들은 나도 모르게 글쓴이를 간절히 응원하게 했다.


그는 마음속의 우울을 우물이라 표현했다. 맞다, 우물. 내 마음에도 그게 하나 있는 거겠지.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아니면 열아홉 번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 그 우물 곁에 있었다. 거기에는 자꾸만 나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산다.


기사를 쓰신 분은 좋은 약을 만나 극복했다고 했다. 1차 위기 극복 성공이다. 1차, 그래 1차라고. 우물에는 그 무언가가 여전히 살아있고 다시 나를 부를 것이다. 이 악담 같은, 저주 같은 경고를... 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안다, 나 지금 아주 나쁜 사람이다. 이제 더 강건해지고 완전히 회복한 거라는 거짓말을 나도 정말 믿고 싶다.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아니면 열아홉 번째인지 알 수 없는 이번 위기에 나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숙이지 않았다. 우울을 버티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이다. 이전보다 덜 괴로웠냐고? 그럴 리가... 상담 선생님은 첫 상담 때 내가 무심코 쓰는 단어들을 자신의 노트에 적더니 곧바로 내게 상담 회차를 연장해야겠다고 말했었다.


선생님은 내 발로 상담센터를 찾아온 내게서 '생에 대한 강한 욕구'를 느꼈다고 하셨지만, 사실 나는 숨 쉬고 사는 일에 별 미련이 없다. 게다가 처음으로 분노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했다. 누군가를 찌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낯선 내가 두려워질 만큼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담센터를 찾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안 죽으려고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이 상담 초반에 숙제로 내주신 MMPI는 길고 지루한 질문들에 Y/N을 체크해야 한다.

요즘 들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N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N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을 갖고 있다. Y


앞뒤가 맞지 않지만 사실이다. 내가 그 계획을 실행할 장소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구상한 건 10년 전이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그 방법을 쓸 수 있다. 자살의 유혹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울은 한없이 추락하는 중력이다.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는 쉬운 자살계획은 그 중력에 가속도를 붙인다. 내 발로 병원에 가고, 상담센터를 찾는 일은 그 중력과 가속을 이겨야 하는 일이다.


죽지 않고 사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죽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다.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자살은 하지 않을게.'라는 약속 혹은 결심.


10년 전 어느 날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우물 안에 몸을 깊이 숙였을 때, 수면 위 아버지 얼굴에 내 뒤에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비쳤다. 이틀 내내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더니. 죽은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너, 나랑 여기서 니 자식들 기다릴 작정이냐.


그때 나는 중력과 가속을 거슬러 줄을 잡았다. 지독한 우울과 자살을 가르는, 삶의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죽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결단... 그거 하나다. 나는 다만 죽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우울과 공황을 이긴 것은 아니다. 그토록 쉽게 죽을 수 있지만 이토록 버겁게 견디기로 했다. 하여 지난 수개월간 나를 잡아당기던 중력과 가속도를 거슬러 다시 살아남았고 지금은 우물에서 조금 멀어졌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다거나 의미가 있다거나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다. 결심했으니 그냥 가는 거다. 다른 이들의 서툰 위로도 내겐 무의미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어쩌고 하는 말 따위,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따위... 그런 말들조차 '저게 최선이겠지... 위로라고 하는 말이겠지...' 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들어줘야 하는 일도 귀찮다. 나는 홀로, 결단했을 뿐이다. 살아야 하니까도 아니고 살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냥 사는 거다.


그러니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어쩌면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이 글을 보고 있을 수도 있을 당신,

죽지 않겠다는 결심 하나만 하자.

이름도 모르는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니 쉽게 지나가듯 한 마디 던져주자.

아무리 힘이 들어도 죽지'는' 않겠다,라고.

부디 그거 하나만 내게 해주면 안 되겠나.


이건 당신에게, 그리고 언젠가 같은 우물가로 되돌아올 미래의 나에게 띄우는 간절한 애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Stop throwing stones to yo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