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여러 형태 중 가장 평등한 것이 대중음악 아닐까 싶다. 길거리에서나 라디오를 통해서 공짜로도 즐길 수 있다. 작품 하나를 소장하기 위해 그리 오래 망설이거나 돈을 모으지 않아도 된다. 자판기에 넣는 동전 정도의 가격이면 즐길 수 있는 예술이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가난으로 소외되지 않는 유일한 예술장르, 누구나 쉽게 사고 즐기고 말하고 버릴 수 있는 아름다움... 그것이 예술이자 산업인 대중음악의 미덕인 동시에 한계이다.
80년대 대중음악의 가장 선진적인 매체는 라디오였다. TV는 SBS도 나오기 전이다. 상업채널은 MBC, KBS가 전부였고, 그중 음악은 일주일에 몇 번 안 되는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라디오는 언제나 음악을 들려주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집에 라디오가 생겼고,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이전에 '이수만의 음악캠프'가 있던 시절이다. 나는 저녁 6시 음악캠프의 오프닝 멘트에 마음이 설레고 이수만 아저씨가 골라주는 팝을 즐겨 들었고, 7시 55분의 클로징 멘트로 마음을 다독여야 완벽해지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매체가 들려주는 음악을 피동적으로 즐기던 그 시절을 벗어나 '취향'이라는 걸 갖게 된 건 꽤 오래 지난 1994년 4월이었다. 대학생이던 나는 머라이어 캐리와 서태지에 피동적으로 빠져 있었고 배캠을 들을 시간은 알바와 서클 모임으로 대체된 지 오래였던 때다. 어느 날 아침 첫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앉았는데,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수십 년의 진부한 낙서가 빽빽이 쌓인 낡은 나무 책상 위로 누군가가 새로 파놓은 글이 선명하게 눈에 박혔기 때문이었다.
94. 4. x. 커트 코베인이 죽었어.
낙서를 만져보았다. 불과 얼마 전의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불빛이 어둑한 계단식 강의실 구석에서 누군가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공들여 새겨놓았을 에피타... 이상하게도 낙서가 울며 외치는 것만 같고, 그 글자들이 너무 강렬하게 나를 붙잡아서 결국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낙서는 나를 오래 맴돌았다. 이전까지 나에게 음악은 그저 듣고 즐기고 노래방에서 따라 부르는 액세서리 같은 피상적인 대상일 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가수의 죽음에 괴로워하지? 그게 이 낡은 학관의 오래된 책상을 뒤덮고 있는 온갖 'ㅇㅇ아 사랑해 ♡'들을 도려내고 저토록 깊이 각인해서 역사로 남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아이러니다. 그의 죽음을 기록한 낙서로 인해 나는 너바나(Nirvana)를 찾아 듣게 되었고 음악이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삶의 그림자라는 걸 알아버렸다. 힙합이 생겨나기 전인 그 시대에 아티스트의 삶에 가장 근접한 대중음악 장르는 록(rock)이었다. 그 그림자는 내 생각과 감정과 삶에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듣기 위해서 처음으로 산 앨범이 너바나의 Nevermind이다. 그 좋아하던 서태지의 앨범도 사서 들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사실 살 필요도 없었다. 거리가 온통 그의 노래들로 꽉 차있었으니까.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아주 느리게 알게 된 커트 코베인의 삶과 음악은 하나하나가 다 충격이었다.
코베인은 소외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의 소외, 그중에서도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말이다. 그가 만든 음악은 누구보다 생산자, 창조자인 자신을 무너뜨렸다. 예술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상품이기도 한 노래들은 만들어지자마자 창작자의 손을 떠난다. 리스너와 평론가들은 그 상품을 각자의 입맛에 맞게 칼질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음미한다. 상품을 생산한 뮤지션은 출시와 동시에 자기 생산물의 용도나 의미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다.
White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노래 중에 '네모의 꿈'이 어느 학교 국어시험에 출제된 적이 있었다. 가사의 의도와 맞는 것을 고르라는 객관식 문제였는데, 정답이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 뭐 이런 거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유영석은 다른 말을 했다. 외계인이 지구에 오면 온통 네모뿐인 세상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싶었다고 말이다. 사회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당황스러운 배신이지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간극 앞에서 미국의 정치 전략가인 Lee Atwater는 생산자의 패배를 선언한다. 'Perception is reality(인식이 현실이다).' 비단 정치 만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아닌가. 창작자의 의도는 동일한 무게를 가진 수천 가지 의견 중 하나일 뿐이다. 상품의 가치는 창작자의 의도를 철저히 배반하고, 소비하고 해석하는 이들의 주체적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코베인은 그가 만든 노래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왜곡되고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용도로 이용되는 것에 몹시 괴로워했다. 음악이 상품이 아닌 자기 삶의 그림자였기에.
대중음악의 생산물은 비단 음악, 노래에 국한되지 않는다. 뮤지션 자신도 상품이 된다. 대중과 미디어가 상품으로서, 상징으로서의 코베인을 소비하고 인식하는 본질과 그의 실존 사이에는 치명적으로 먼 간극이 있었다. 간극 저 멀리로 사라져 철저히 자신을 소외시키는 음악과 본질을 그는 버텨내지 못했다. 본질이 실존을 압도하고 삼켜버렸다. 그리고 MTV는 코베인의 죽음까지도 하나의 상징이자 상품으로 진열장에 올려놓았다. 신문과 방송은 앞다퉈 그 죽음을 소비하고 재판매했다.
아이러니다. 오랜 습관처럼 지금 다시 커트 코베인을 떠올리면서 나도 역시 그를 소외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진열장에 올라온 그의 죽음으로 프로모션 당해서 너바나의 상품을 사고, 나의 인식으로 나만의 커트 코베인을 빚어 내 진열장에 놓고 자꾸 꺼내 사용하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조차 이토록 두고두고 소환되어야 하는 천형 같은 업보를 가진 그는 아마도 열반(nirvana)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1994년의 나는, 사유 이전의 존재였다. 생각이 어떤 결론에 이르러서라기보다는 그저 막연한 위기감으로 코베인과 선을 그었다. 짐을 자주 싸야 하는 기숙사 생활을 하던 터라 이사를 핑계로 Nevermind와 다른 앨범들을 버렸다. 피상적으로 듣고 즐기는 예전의 가벼움으로 되돌아가고 싶었고 적당히 눈 감고 싶었다. 어떤 아티스트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겁이 났던 것 같다. 더 깊이 파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불안감으로 너바나를 놓아버렸다. 하지만 다시 Nevermind 앨범을 네댓 번 샀다가 버리기를 반복했다.
취향이란 한 번 생기면 변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 후로도 나는 무거운 음악들을 선호했고 많은 노래들을 부유하다가도 한 뮤지션에 빠지면 그의 모든 음악을 오래오래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메탈리카를 건너서 린킨파크에 이르렀다. 상처와 공감과 위로로 채워진 세계였다. 음악은 삶의 그림자다. 어쩌면 나는 나를 뜨겁게 말리고 태우는 태양으로부터 린킨파크의 그림자로 도피해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음악과 삶을 사랑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주었던 그는 정작 태양과 가장 가까이 있었고, 자신이 드리운 그림자로 위로받을 수 없었다. 체스터 베닝턴은 태양과 그림자의 간극 속으로 소멸했다. 아이러니다.
어쩌면 차라리 가벼운 사랑 노래나 부르고 들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유행이 인도하는 대로 이끌려 노래방에서 트롯이나 아이돌 노래 몇 개 흉내 내며 살았어야 했을까. 커트 코베인의 에피타를 다시 온갖 야한 낙서들로 덮는 것이 위태로운 간극을 좁히는 슬기로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음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도 리스너에게도 위험한 일이다. 노래는 그저 상품일 뿐이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어떻게 지지고 볶든 창작자는 돈이나 벌면 될 뿐이었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살아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겁게 노래를 듣는다. 철저한 분업에 의해 기획·제조된 노래가 아니라, 잘 팔릴 법한 남의 이야기를 죄의식 없이 훔쳐다 만든 노래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자신의 실존을 농축해서 빚어낸 예술을 듣는다. 그러나 예술은 상품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상품이라서 아티스트의 실존을 위협하는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 아이러니에 피투된 위험한 시시포스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노래를 듣는다. 삶이 음악과 가까울수록 위험한 간극이 커져감을 알기에 그들의 음악을 사랑할수록 불안이 커진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가벼운 노래들을 팔아! 영웅으로 죽지 말고 제발 빌런으로 살아남아. 실존이고 본질이고 삶이고 예술이고... 그런 건 개나 줘버려...
학관 108호 책상 한 구석엔 아직도 그 에피타가 남아있을까... 아니면 연예인과 남친의 이름들로 다시 뒤덮여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이 어느 사이에 소멸해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