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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Mar 01. 2021

샌프란시스코, 메탈리카(S&M)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Metallica)의 보컬 제임스 헷필드는 남자라기보다 수컷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냥 딱 보면 선글라스를 끼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질주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영화 <X맨>의 울버린 손에 일렉기타 하나 들려주면 제임스 헷필드랑 비슷할 것이다. 헤비메탈이라는 장르를 가장 잘 웅변하는 목소리와 외양을 가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포효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약간 무서울 정도로 압도적이라서 매혹적이다. 검은 셔츠를 입고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머리에 뿔이 있어도 별로 안 이상할 이미지인데 교회 오빠다. 뭔가 나쁜 짓을 부추길 것만 같은 앨범커버 안의 노래들도 정작 악에 빠진 사람들에게 빨리 나오라는 반전 메시지다. 아주 보기 드물게(?) 첫 결혼 배우자와 20년 넘게 잘 살고 있고, 꼬맹이 딸의 학예회에 따라가서 아이의 노래에 맞춰 기타 반주를 해주는 가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메탈리카를 듣던 시절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때였다. <Master of puppets>에 입덕했다. 강렬한 사운드가 좋았다. 의외성을 가진 그들의 진짜 거대한 반전은 1999년에 있었다. 그해 메탈리카는 S&M이라는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M은 메탈리카요, S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SFS)이다. 심포니, 그 클래식 연주하는 집단 말이다. 헤비메탈 중에서도 가장 거칠게 때려 뿌수는 스래시메탈 밴드가 오케스트라와 콜라보를 했다. 내 기억에 화면으로 남아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도 샀었나 보다. 미친. 그런 게 있었나? DVD는 없었을 텐데.


그때 제임스 헷필드는 30대 중후반이었다. 2시간 30분을 게스트 없이 공연했다는 것이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메탈리카 같은 상남자들이라면 그럴 수 있지 싶기도 하다. 더 대단한 건 오케스트라였다. 나는 그 공연을 볼 때마다 늘 생각했다. '저 연주자들 모두가 이 프로젝트를 기꺼이 즐겼을까.' 지휘자 마이클 케이먼은 원래 메탈리카랑 작업도 했고 약간 경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다르다. 원래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폐쇄적이지 않나. 불쾌한 이들이 있었을 텐데 150분의 공연 동안 정말 한 팀인 것처럼 멋진 공연을 했던 SFS도 반전이다. 다른 장르에 대한 오픈 마인드가 감동적이었다. 대중음악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교단과 국립오페라단에서 쫓겨났던 우리나라 성악가 박인수 님이 자꾸 떠올라서 질투심과 패배감이 들었다.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부른 건 정지용 시인의 시로 만들어진 '향수'라는, 아주 아름다운 노래였다.


작년, 2020년에 메탈리카는 또 한 번 반전을 보여주었다. S&M 공연 20주년을 기념해서 2019년에 다시 S&M 2차 공연을 했고 그 음반이 2020년에 나왔다. 이번에는 DVD를 사지는 않았다. 유튜브로 몇 개 찾아보았다. 제임스 헷필드를 비롯한 멤버들의 나이는 이제 50대 중후반, 배도 나왔고 이마가 많이 벗어졌고 머리가 반백이었다. 반백 살 넘은 나이에도 메탈리카는 이토록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장대한 프로젝트를 다시 시도한 것이다. 대체 어디까지 해낼 생각인 걸까.


기량이 예전과 같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체력도 당연히 다르다. 20년 전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단독 연주가 중간에 끼어있다. 그러나 아들은 라스 울리히의 드럼을 듣고 말했다. "저 곡 하나만 해도 완전 기진맥진하겠는데." 그러게 말이다. 지금도 매년 수십 차례 세계 투어를 다니는 현역의 기량은 죽지 않는다. 다만 변화할 뿐이다. 20년 전에는 밴드의 힘 만으로 폭발하던 공연이었지만 이번엔, 일찍 세상을 떠난 베이시스트에 대한 트리뷰트를 포함해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오랫동안 그 곡을 연주하지 못했던 것으로 들었는데.


S&M 2는 질투심과 패배감을 넘어 슬픔을 주었다. 멤버들은 억만장자다. 대저택을 몇 채씩 소유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대대로 호의호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메탈리카는 여전히 창작의 고통과 비평들을 견뎌내며 40여 년째 현역 뮤지션이다. 그들은 음악에 진심이다. 끊임없이 팬들과 소통하고 앨범을 낸다. 그래서인지 십 대임에 분명한 어린 소년이 객석에서 머리를 흔드는 것도 보인다.


또한 S&M 같은 프로젝트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쉽게 생각해봐도, 어쿠스틱한 오케스트라의 음량과 고막 찢어지는 전자악기들의 음량은 어울리기 힘들다. 오랜 기획과 편곡, 연습,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조율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그만한 인기와 자본력을 가진 메탈리카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끊임없이 한계를 허물며 역사를 써나가고,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열어주는 든든한 기둥이다.


어느 분야에나 어른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메탈리카는 그런 장르, 그런 문화, 그런 나라를 이끄는 어른이다. 그래서 ... 슬프다.


* S&M2, No Leaf Clover https://youtu.be/XbKwfvG0aA0


메탈리카의 보컬 제임스 헷필드, 1999 & 2019 (출처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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