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What I Read
엊그제 휴가를 내고 나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난생처음이다. 각오는 했지만 등골이 오싹할 만큼 현타가 왔다. 방치되었던 신용카드들과 자동결제되는 몇몇 지출을 해지했다. 큰 금액도 아니고, 오래 유지했던 후원도 있었고, 혜택이 많은 항목도 있었지만, 결국 이건 우선순위의 문제인 거다. 물가인상률을 반영했을 때 실질 급여가 줄어들고 대학원 학비도 만만치 않으니 이 씁쓸한 처방, 삼켜야 한다. 죄책감을 깨물고 후원을 중지했다. 카드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각 한 장만 남겼고, 자동결제는 이제 단 하나, 오디오북만 남았다. 엑셀 시트에 적어놓은 그 오디오북 서비스 이름을 한참 쳐다보았다.
'이런 긴축에도 저걸 남겼다는 건... 저게 지금의 나인 셈이네.'
책 한 권 가격도 되지 않는 월 9,900원의 구독료를 지불하는 그 플랫폼에서 나는 상위 3%의 헤비 유저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극혐하는 야한 연애 웹소설들을 자동 추천하는 건 참 얄궂다. 많은 책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성우가 낭독하는 방식의 제작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오디오북의 특성상, 큐레이션이 다양할 수가 없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음을 이해는 한다. 이토록 고루한 독서 취향을 가진 나 같은 유저는 여기서 매우 예외적인 아웃라이어라는 사실도... 그러니 선택할 만한 책이 적다고 불평하는 것은 피자 가게에서 왜 된장찌개를 안 파느냐고 진상 부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시력이 너무 나빠져서 읽고 쓰는 일이 몹시 버거워진 내게 이 정도면 정말 감지덕지다. 이 서비스를 통해 2023년 올해 완독한 책이 총 111권, 매주 두 권 이상 들은 셈이다. 그 외에 큰 글씨 종이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한 권 읽었고, 성경 통독도 한 번 했으니 총 113권을 읽었다.
그중 가장 많이 읽은 것은 단연 문학이다. 작년에 세계문학 분야의 고품질 오디오북을 집중적으로 녹음해 주어서 읽을거리가 꽤 갖춰진 편이다. 여러 번째 반복해서 읽은 책들도 있었고, 오래 미루었던 첫 읽기를 해낸 책도 있었다. 8월쯤에 문득, 이제는 <토지>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드라마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세 권(이라고 쓰지만 분량으로는 여섯 권쯤)을 읽으면서 미시적인 역사, 한 개인이 겪어내는 격동의 파고를 함께 따라가며 감당할 수 있는 준비운동이 되었던 듯하다. 그리고 9월 초에 <토지>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집에서 헤드폰을 끼고 듣고 있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울컥하며 목이 막혔다. 박경리 작가님이 스무 권의 책에 담고 싶었던 것, 독자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100권이 넘는 책을 들었다고 하니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게 가능해?" 살짝 기분이 나빴다. 아마 2년 전쯤 직장 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나에게 어느 팀장님이 했던 말과 겹쳐서 그랬던 것 같다. "완주 씨, 요새 일 없어? 시간 많은가 보네. 책도 다 읽고." 그땐 당황해서 아무 대답을 못했었다. 좀 억울하기도 했다. 집에서 내내 곱씹었다. 왜 그럴 때 있잖은가, '젠장,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하며 뒤늦은 변명을 수백 번씩 읊조리게 되는... 이번에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그때 읊었던 속엣말을 시원하게 뱉었다.
"응, 가능해. 아침에도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걷고, 저녁에도 걷고... 가끔은 혼자 점심 5분 만에 먹고 헤드폰 끼고 50분 꽉 채워서 걸어. 그러면서 듣는 거야. 2배속으로 말이야."
자신의 정체성에 근접한 활동들은 남이 시키지 않아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계속하게 된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 하는 활동들은 취향의 영역이지만, 모든 것이 부족해질 때 '남겨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체성과 본질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내게는 걷기와 독서가 그랬다.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시간을 만들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에 치이지 않으려고 더 강박적으로 더 많이 걷고 듣는다. 오디오북 덕분에 이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얼마 전에 우리 지역 내의 청년 창업가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한 시골마을의 전원주택에 차린 독립서점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서점 주인은 무려 열아홉 살, 자신이 지향하는 세 가지 가치를 담은 책들을 직접 큐레이션 하여 꾸민 서점에서 독서공간을 대여하고 있었다. 로즈메리 향이 가득한 서점을 돌아보고 어린 대표님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말했다. "이 공간, 대표님의 정신세계를 보고 있는 같아요."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의 정신세계는 따뜻하고 진지하며 싱그러웠다.
그곳을 다녀온 후 나의 자아가 어떤 책들로 물질화될 수 있는지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영적 세계에 물리적으로 닿는 듯한 경험을 몇 번인가 했었는데, 비단 작가만이 아니라 읽는 자들, 독서인간들에게도 그런 영혼의 시공간이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나의 본질이기도 하고, 읽은 책들도 모두 나다운 것들, 읽어서 내가 된 것들이니까 말이다. 그 작은 서점처럼 공간으로 구현된 자아가 몹시 부러웠지만, 가족의 책들과 종이부스러기가 잔뜩 쌓인 뒤죽박죽 거실 서가를 내 온전한 정신의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2023년이라는 시간은 순전한 나만의 책들로 지어졌다. 113권의 책을 벽돌 삼아 지어진 나의 시간이라니... 그 벽돌 하나하나가 숨결처럼 내 안에 머물렀었다니… 이것 참 멋진 한 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