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런 관행이 없어졌겠지만, 내가 어릴 때 일기검사는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한 학교 선생님과 엄마의 의무요 권리였다. 일기를 매일 쓰도록 숙제를 내주고, 매일 썼는지를 형식적으로 검사하는 것뿐 아니라 열의 있는 어른들은 그 내용도 다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야만적인 인권침해지만, 당시 일기검사를 당하는 학생 입장이었던 나는 그걸 뭐라고 항변할 수 있는지, 아니 항변할 만한 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엄마는 일기 쓰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국민학교(응 맞다,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2, 3학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졌겠는가. 당연히 거르는 날도 있지. 그러나 엄마는 반드시 빠진 날짜의 일기를 쓰도록 했다.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너무도 쓰기 싫은 날은 시를 썼다. 동생이 잔머리를 굴려서 먼저 시작했는데 엄마가 감동하길래 나도 따라서 가끔 시로 때웠다. 내가 먼저 시작했더라면 분명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엄마의 자녀들 중 최애였고 모든 것이 용서되는 아이였다. 실제로도 나에게만 왜 시를 썼냐고 태클이 몇 번 들어왔지만 나는 당당했다. 동생이 먼저 했으니까.
엄마는 예고 없이 불쑥 일기검사를 했다. 그날은 반드시 야단을 맞았다, 아주 길게. 이유는 다양했다. 나는 일기가 몹시 싫었으니 엄마 마음에 들도록 성실하게 썼을 리는 없다. 너무 짧다거나, 글씨가 엉망이라거나, 맞춤법이 틀렸다거나 이런 지적은 음... 백번 양보해서 이해한다. 야단맞는 건 뭐라도 싫었지만 변명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나를 정말 너무나 괴롭혔던 건 내용, 그러니까 내 생각과 감정을 공개적으로 난도질당할 때였다.
앞서 말했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번 얘기해야겠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녀의 정서를 존중하는 대화법 같은 것은 안타깝지만 내가 성인이 된 후에야 생겨났다. 엄마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지금과 달랐다. 어쨌든 엄마는 작정한 날은 일기를 빌미로 눈물을 쏙 뽑았다. 워낙 표현이 격한 분이라 가끔은 후유증이 2, 3일 갔다. 어떤 말로 야단을 맞았는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불만도 많아져서 6학년 말부터는 꽤 긴 일기를 쓰기도 했다. 철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엄마의 취지에 공감한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사악하게도 엄마를 도발할 만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이용한 자학이 시작되었다. 나를 처참하게 무너뜨릴수록 엄마는 더 화를 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내 눈치를 살폈다. 나의 표현 수위는 점점 격해졌고 실제 성격도 우울하고 음산해졌다.
엄마는 어느 때부터인가 일기검사를 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오랫동안 쓴 일기를 실과 바늘로 튼튼하게 묶어 한 권처럼 만들어 보관하던 것을 아무도 모르게 다 찢어서 버렸다. 내 마음을 흑암으로 채운 채 나를 주시하는 거머리 같은 감시자, 검열자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꽤 오래 하는 나이가 되도록 정신을 지배하는 검열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거기 항상 엄마가 있었다. 생각으로 떠오른 문장 뒤엔 어릴 때 들었던 비난이 자동으로 들러붙었다. 개인적인 글은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대학 때 과제로 제출한 소논문이 학과 문집에 실리면서 고향 집으로 배송이 되었던 모양인데, 엄마는 방학 때 집에 내려간 나에게 "이게 대학생 머리에서 나온 거냐"며 한심하다고 했다.
『1984』(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는 외부세계만 감시했는데, 나는 그보다 더한 감시 하에 있었다. 나는 글을 쓸 수도 없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내가 쓴 손글씨가 있는 노트, 책을 다 버리고 친구들이 준 손편지도 한 박스 가득 태워버렸다. 간신히 조금씩 자유롭게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가면서였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일기검사와 공개비판은 분명 악습이다. 나는 결코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겪어버린 일인 나 자신의 경우는 조금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세상에 어떤 것도 순도 100%는 없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늘 함께 한다. 그것이 인생의 조화이자 아이러니이며 '정반합'의 변증법이 유효한 이유다. 100% 정(正)이 존재한다면 어찌 반(反)과 합(合)이 있겠는가. 나도 나에게 남겨진 옥석을 분별해야 했다. 나의 인생을 자기 연민으로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같은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글을 쓸 줄 알게 된 것, 글 쓰는 것 자체를 겁내지 않는 것이 오래 일기를 쓴 덕택임을 인정한다. 먹고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강사생활을 할 때 강의보다 콘텐츠 개발에 더 많이 불려 갔던 건 글쓰기를 꺼리지 않아서였다. 자기 검열, 누군가 늘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삶도 긍정할 수 있다. 과도한 경건주의와 원칙주의는 분명 사회생활에 불리하다. 지금도 여전히 위태롭다. 감수한다. 그리고 정작 나는 이 밋밋하고 재미없는 삶이 그럭저럭 자유롭다. 비판을 견디는 힘도 좀 생겼다. 단련이 됐나 보다. 타인의 글을 봐줄 때 내 속에 입력된 말들이 자동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남의 생각을 짓밟지 않도록 단어를 골라 말하는 연습은 지금도 하는 중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덕분에 모난 성격이 많이 둥글어졌다. 감사한 일이다.
암울한 잔재들도 여전히 쌓여있다. 상상은 모두 자동 차단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잘 못 본다. 감정에 자꾸 야단을 맞아서 그런지 강도가 세거나 변화가 급격한 감정을 견뎌내지 못해서다. 오랜 자학의 습관은 냉소와 셀프디스로 남아있고, 검열자가 두려워서 나 스스로도 직면하지 못하고 빗장 여러 겹으로 가둬놓은 것들도 많다. 내가 모르는 나... 그래서 나는 치매가 가장 두렵다. 심지어 수면내시경도 하지 못한다. 타인 앞에서 빗장이 풀리고, 괴물이 그 안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가 있다. 경건주의의 씁쓸한 뒷면이다. 『전락』(알베르 카뮈)의 서술자처럼 언젠가 나도 내 속을 시원하게 탈탈 털어보고 싶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켰다는 건 또 하나의 아이러니이자 내 인생의 변증법이다. 합(合)은 너덜너덜해진 내 정신의 상처를 덮은 맑은 피, 검열자를 피하고 상처를 회복해보려는 노력들에서 건진 것들이다. 다행스럽게도 수업을 같이 한 아이들은 모두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우리는 정답이 있는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정직하게 책을 읽고, 자기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뿐이었다. 하기 싫다면 강요하지 않았다. 일기검사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떤 사람도 나의 내면을 내 허락없이 들여다보고 간섭하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한 번은 과학교양서를 읽는데, 한 아이가 수업에 오자마자 책상 위에 책을 툭, 던져놓더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며 웃었다. 그것으로 그날 독후감은 제출한 거랑 같다. 나는 아이들의 글에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이야기했고, 아이가 고쳐오면 그것이 진심으로 기특했다. 아이들은 나를 그냥 쌤이라고 부르지 않고 앞에 이름을 붙여 불렀다. "애들이 홈스쿨 부모님들 중에 이름 붙여 쌤으로 부르는 건 엄마 뿐"이라고, 엄마가 만만한 거라고, 오리는 킬킬댔다. 기뻤다. 애들한테 내가 만만해서... 좋았다.
아이들의 글을 보는 것은 유일하게 수업때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일기나 다이어리를 보지 않는다. 오리가 자랑삼아 멀찌감치에서 훌훌 넘겨 보여주면 따봉 날려주고 그걸로 끝. 내가 사준 컴퓨터로 구니가 무슨 콘텐츠를 보는지 나는 너무너무너무 걱정이 된다...만, "아들, 엄마는 너 믿어."하고 끝이다. 구니는 일부러 컴퓨터 부팅 암호를 걸지 않았다. 엄마가 확인하려면 언제든지 하라는 거다. 그리고 내가 안 볼 것을 안다. 내가 확인하는 순간부터 그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의 오랜 신뢰는 쫓고 쫓기는 지옥 같은 게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SNS 계정을 팔로우하지도 않는다. 어젯밤에 오리에게 아직 작성 중인 이 글을 보여주었다. 오리가 말한다. "나 실명 써도 돼. 흔한 이름이잖아." 그러더니 또 "엄마, 내 인스타 보고 싶어? 난 엄마가 팔로우해도 괜찮은데." 한다.
"아니야, 좋을 때만 있는 게 아니지. 나랑 싸우고 나서도 내가 니 인스타 보면 좋겠냐?"
"그땐 뭐... 엄마만 못 보게 숨기기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아이들의 내면 어디에도 검열자가 발 붙이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다행히 이룬 것 같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먼저 온전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가지는 자유를 누리기 바란다. 비판과 토론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