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후 오늘도 놀이터에 들렀지만 더운 날씨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더워서 바로 집으로 오고 싶었지만
운동화까지 챙겨서 신고 나간 진심에 놀이터에 잠시 놀다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땀 흘려 더러워진 옷을 입고 소파나 침대로 올라가거나
오랜 시간 꾸물거리지 않고 빠르게 옷을 벗고 샤워했다.
물기를 닦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완벽했다.
아이 샤워를 시키고, 나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아이가 방에서 책을 보며 오늘 저녁은 콘버터옥수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요즘 아이는 먹고 싶다고 하는 음식이 많아졌다.
해줄 수 없는 것은 해줄 수 없다고 하고,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해달라고 해서 해줬는데 안 먹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해달라고 해놓고 안 먹으면 다음에는 해달라고 한 음식을 해줄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아이는 알겠다고 하고 새로운 음식을 해달라고 할 때마다
"이번에는 잘 먹을 거예요."
약속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지켜지진 않는다.
그래서 콘버터옥수수가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오늘 저녁은 소불고기를 준비해 놨어. 음식이라는 게 말한다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야. 음식을 만드는데 많은 정성과 노력,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야. 그리고 시안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엄마가 해주는 건 당연한 게 아니야."
라고 말해주었더니,
"왜 당연한 게 아니에요?"
하고 묻는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엄마가 정성 들여해 주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야."
"왜 당연한 게 없어요? 당연한 게 있을 수도 있죠!"
"아니, 세상엔 당연한 건 없어. 네가 배고플 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편안하고, 시원하고, 따듯한 우리 집에 사는 것도,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네 곁에 있는 것도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어. 모두 감사해야 할 일이야."
"그래요?"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 아이는 잘 이해했을까? 태어나서부터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임을 어린 나이에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라면서 일관된 메시지를 계속 주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감사함은 결핍과 비교해야만 느껴질 수 있는 걸까. 있는 그 자체로 감사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결핍된 상태를 알아야만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 아이에게도 힘들게 살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이나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이 티브이에 나오면 설명을 더 해주어야 할 것 같다. 가진 것을 잃어봐야만 감사함을 알게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기를 바란다. 아닐 거라 믿는다.
함께 저녁을 맛있게 먹고 좋은 기세를 몰아
아이에게 바로 양치하고 남은 시간 즐겁게 놀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흔쾌히 수락했다.
예감이 좋다.
아이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고 수월하게 양치를 마쳤다.
엄마, 아빠 모두 격하게 칭찬하고 높이 들어 안아줬다.
아이도 기뻐했다.
양치를 빠르고 수월하게 마친 사실에도,
그래서 엄마 아빠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도,
아이가 좋아하는 번쩍 들어 안기는 보상을 받은 것도,
남은 시간 재미있게 놀일 만 남았다는 것도,
그 사실에 아이는 너무나 기뻤을 것이다.
감사했다.
이렇게 수월한 샤워와 양치가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할 일인 것을 나도 힘듦을 겪었기에 깨달은 것이다.
사람이란 그러하다.
크게 속상할 일 없이 아이가 잘 커주는 것, 너무나도 감사한 일임을 안다.
크게 걱정할 일 없이 바르게 자라는 것, 너무나 감사하다.
매사에 감사할 일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부족한 것만 눈에 보였었고, 불만거리는 점점 늘어 갔었다.
감사함은 줄어가고, 결핍은 점점 크게 느껴졌었다.
사람의 욕망이란 끝도 없어서 아무리 채워도 그 갈증은 사라지지 않고 욕망이 커질수록 고통만 커진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에서부터 행복의 시작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아이도 깨달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