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원길에 놀이터를 가자고 한다.
볕이 뜨거운 더운 날이라 오늘은 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만 아이의 성화에 결국 놀이터에 간다.
"놀이터에 가서 율이랑 놀고 싶어요"
"어제도 더워서 율이 놀이터에 안 나왔잖아.. 오늘은 너무 더운데 그냥 집에 가면 안 될까?"
"안 돼요,,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어요.."
"... 그럼 엄마는 오늘 너무 더워서 같이 뛰어놀아 주지는 못할 것 같으니 시안이 스스로 놀아야 해..?"
"네! 엄마는 그늘 벤츠에 앉아 쉬고 있어요! 저는 놀이터에서 놀게요!"
그렇게 놀이터에 갔는데 날이 더워서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다.
벤츠에 앉았는데 그늘에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이었다.
조금 있으니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모르는 친구가 한 명 왔다.
아이가 그 새로운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이에게 엄청난 발전이었다.
같이 놀고 싶어도 서성이기만 하고 말도 못 걸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엄마에게 대신해 달라고 하던 아이였는데,
용기 내어 먼저 말을 거는 아이가 대견했다.
다행히 상대 아이도 아이의 말에 수용해 주고 함께 대화하고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놀며, 아이는 계속 자신이 좋아하는 괴물놀이를 하자며 새 친구에게 제안했지만 새 친구는 관심이 없었다. 새 친구가 그네를 타러 가자고 제안하니 아이는 조금 고민하더니 그러자며 수용하고 함께 그네를 타러 간다. 새로운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고, 수용되어 함께 놀고, 먼저 놀이를 제안해 보고, 거절도 당해보고, 상대의 다른 제안을 타협하여 수용하는 모습을 보니 잘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놀다가 새 친구의 동생이 엄마 곁에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아기가 우는 모습을 보니 불쌍해요"
라고 말했다.
아이는 측은지심이 많은 듯하다. 땅 위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지나가는 아이가 우는 모습을 봐도 불쌍하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엄마 곁에서 우는 아이가 다 불쌍한 것은 아니니,
"불쌍한 거 아니야~"
하고 그 자리에서 얘기해 주고 넘겼지만 다음엔 안쓰럽다는 표현을 알려줘야겠다.
아이에게 감정의 결을 다양하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상황에 적절한 단어를 알려줘야 할 것 같다.
새 친구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다시 혼자 놀면서 다시 놀 친구를 탐색한다. 놀이터에 새로 온 다른 친구 근처를 맴돌며 섞일 듯 말 듯 미묘한 놀이관계를 가지며 겉도는 중 기다리던 친구 율이가 왔다.
아이는 너무 신나서 엄마에게 알린다.
"엄마! 드디어 율이가 왔어요! 여기 봐요! 진짜예요!"
"응~ 그래, 재미있게 놀아~"
율이 아빠는 놀이터에 나온 동네 아이들을 많이 알고, 수용하고 잘 놀아준다. 율이아빠가 율이와 시안이를 데리고 괴물놀이를 하며 놀아주는데, 초등학생 돼 보이는 아이들이 함께 공놀이를 하자며 다가온다.
율이아빠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피구 같은 공놀이를 시작했다. 초등 남학생들 사이에서 율이는 재빠르게 요리조리 잘 던지고 피했지만 시안이는 느린 몸짓에 처음 해보는 피구놀이에 신나 하긴 했지만 빠르게 던져진 공에 몇 번 세게 맞아 걱정이 되었다. 잠시 후 율이 아빠와 율이, 시안이는 공놀이에서 빠져나와 조금 더 놀다가 율이네는 집으로 돌아갔다. 공에 맞은 아이의 배를 보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오늘은 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얘기했다.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냐고 물으니 구체적으로를 대답하지 못한다.
공놀이하면서 스트레스받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추측하건대 오늘은 친구와 어울려 함께 놀았지만 하고 싶은 괴물놀이도 거절당했었고,
다른 친구와 다시 어울려 놀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잘 안 됐고,
율이와 즐겁게 놀고 싶었지만 뜻밖에 형들과 거친 공놀이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과정도 겪어 내야 할 일들이라 생각이 든다.
세상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놀이터에서 놀면서부터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스트레스받아하는 아이를 보니 속은 좀 쓰리다.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부딪히고 부족함을 느끼고 인정하고
극복할 방법도 찾아보기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아이의 자존감이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겪는 좌절감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성취할 수 있게 하길 바란다.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은 후 정리하는 동안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는
"죽는다는 이야길 하는 게 나쁜 거예요?"
하고 물었다.
아이는 공룡이나 곤충을 비롯한 동물 등에 관심이 많다. 먹이사슬에 의해 동물 사이에 사냥해서 잡아먹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의 죽음들. 그리고 생활 속 재난이나 위험에 대해 가르쳐 줄 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림으로도 많이 그리고, 말로도 표현한다.
아이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게 된 날,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피해 설명해 줄지,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줘야 할지 고민했었다.
고민은 잠시였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실 그대로 아이에게 설명해 주기로 했다.
언젠간 알아야 할 개념이었고, 죽음이라는 개념 없이 세상을 이해할 순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간혹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아이의 말에 불편해 진적도 많았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자연현상을 이야기하는데 질책할 순 없었다.
다만,
"죽는다는 건 슬픈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죽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안 들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동물의 왕국을 봐도, 공룡, 곤충에 대한 자료를 봐도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뺄 순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터질게 터진 듯했다. 유치원에서 누군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불편하다며 그만 얘기하라고 한듯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외부에서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들어온 이상 더 이상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죽는다는 이야길 하는 게 나쁘냐고 묻는 아이에게
"죽는다는 이야길 하는 게 나쁜 건 아냐.. 다만, 죽는다는 건 정말 슬픈 거야.. 그래서 죽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면 사람들이 슬퍼서 싫어하는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받았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슬프고 힘든 이야기보다는 밝고 기쁜 이야기를 좋아해. 그러니까 앞으로는 밝고 기쁜 그림을 그려보자."
하고 말해주었고, 아이는 수용했다.
그리고는 웃는 구름이 비를 뿌리는 그림을 그려냈다.
자신의 의도가 어떠했든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처음 느꼈을 것이다.
그 또한 값진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고 변화하려는 모습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