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겪어봐야 한다.

다양한 만남들

by 채롬

아이가 하원길에 친구와 놀이터에서 만나 놀고 싶다며 가자고 한다. 여름이라 한동안 못 나갔었는데 하원길에 날씨가 많이 덥지 않은 듯하여 오랜만에 놀이터에 갔다. 아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지만 부끄러움이 많아 먼저 다가가거나 말을 걸기 어려워한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킬이 많이 부족해서 이 부분만큼은 아이에게 잘 알려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놀이터에서 가끔 친구를 만나 함께 놀면 너무나 행복해하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 흐뭇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쓰리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관계가 어려웠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런 모습을 혹시 아이가 반복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이의 대인관계에 도움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다른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소통하며 아이들끼리도 잘 어울려 노는데 나 때문에 아이가 그런 경험을 놓치는 건 아닌지 자책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차피 초등학생 정도 되면 아이들은 자신에게 맞는 친구를 스스로 찾아 논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때까지 아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사회성을 길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들,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 무엇이고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사람을 사귀는데 방해되는 부분만 알려주면 나머지는 아이가 커가며 성향에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이가 만나고 싶어 했던 친구는 오늘 나오지 않았지만 놀이터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었다. 놀이터에 가서도 혼자 심심하게 놀다 오는 날이면 아이도 나도 기분이 처져서 돌아온 적도 있지만, 오늘은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아이도 즐거워 보이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새로운 친구와 노는 경험, 그러다 다시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새로운 놀이 무리에 끼는 경험, 함께 놀고 싶지만 낄 수 없던 경험.. 그 모든 경험을 해보는 것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엄마로서 좋은 경험의 비율을 높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성공적이지 못한 경험이 많이 쌓이게 될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부딪히고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경험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겪어봐야 한다. 그래도 요즘 유치원에서도 전보다 또래와 잘 어울린다고 선생님도 말씀하시고, 놀이터에서도 먼저 다가가 보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면서 함께 어울려 노는 좋은 경험도 늘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안심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도블록에 지렁이 한 마리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보도블록에 지렁이들이 많이 죽어있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서 꿈틀거릴 때도 있다. 나는 지렁이를 보면 안쓰럽다. 땅속에 있다가 숨쉬기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을 텐데 밖에 나오니 더 뜨겁고 숨쉬기 힘들었을 것이고 지나가는 사람, 달리는 자전거 등에 밟혀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도블록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고 마음 불편해하며 지나가려 하는데 아이는 그 지렁이를 지켜보다 손으로 잡아 흙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실행하지 못했던 일을 아이가 해주었다. 아이는 지렁이가 불쌍해서 흙으로 옮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아이도 느끼고 있었나 보다. 나는 실행하지 못했고, 아이는 실행했다. 삶을 살아오며 의욕도 의지도 많이 꺾인 듯하다. 아이는 살면서 이런 선한 의욕과 의지가 꺾이지 않고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의욕과 의지도 아이를 바라보며 조금씩 다시 살아나길 기도한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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