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실? 등 뒤의 남편이 이런 단어로 말을 시작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폭탄고백이라도 하려는 건가?
외출하기 전, 미뤄둔 숙제를 끝내는 마음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지난주에 사둔 임테기를 뜯어 검사를 했다. 눈앞에 임테기를 갖다대자마자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남편을 불렀다. 그의 눈에도 두 줄이 맞다고 했다. 평소 다니던 병원에 전화를 했다.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말씀을 듣고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다. 피검사 결과 역시 같았다. 1월 7일, 새해 첫주에 나는 전혀 다른 내가 되었다. 작은 생명을 위해 기록할 노트 한 권과 편하다는 운동화를 사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도 우리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시간만 보내다 밤이 왔다. 평소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그는 한참 있다 내가 잠들었다 싶었는지 조심스레 거실로 나갔다. 터덜터덜. 느린 걸음에 무게가 느껴졌다. 나몰래 그 역시 달라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터뷰 날짜가 미뤄지고, 인쇄 코 앞에서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남은 시간은 하루 반 나절. 원체 글 쓰는 속도가 느린 터라 일어나자마자 조바심을 냈다. 그날 밤 새벽 네 시, 여전히 글에 빈 곳이 많았다. 이런 날은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여덟 시 정각이면 벌떡 일어난다. 다음 날, 세수도 하지 않고 식탁에 앉아 가쁜 마감을 하고 시계를 보니 열두 시. 편안하게 날숨을 쉬고 오후를 쉬었다. 오후 다섯 시, 하혈을 시작했다. 아기집 옆에 생긴 커다란 피고임. 아직 태반이 안정되지 않은 시기라 자궁 안의 피가 흐르면서 아기집이 같이 쓸려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의사의 진단서에는 ‘절박유산’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유산이 아니라 유산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며, 푹 쉬라고 의사는 나를 위로했다. 하혈이 멈출 때까지는 마음 푹 놓고 누워만 있으라며. 그 외에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의심이 들어 찾아간 큰 병원에서도 같은 처방을 받고 소파에 누웠다. 걸을 수도, 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날이 몇 주간 계속되었다.
하고 있던 일을 모두 그만두었다. 시작하기는 그토록 어렵던 일들이 끝낼 때는 일사천리였다.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면 아무 걱정 말고 푹 쉬라는 말이 돌아왔다. 무기한 연기되어 골치를 썩이던 마지막 일을 정리한 후, 온전히 누워만 있는 몸이 되었다. 큰 일을 겪고 난 후, 남편은 누워 있는 내가 잘 보이는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부엌에서 밥을 하고, 나와 고양이를 챙기는 틈틈이 일을 했다. 타닥타닥. 거실 소파에 누워 있으면 한껏 인상을 쓴 채 노트북을 두드리는 그의 옆얼굴이 보였다. 바빠진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 억울했다. 속이 울렁거려 자다 깬 밤이면 옆구리를 아프도록 찔러 그를 깨웠다. 아이는 같이 만들었는데 혼자만 아플 수는 없다며.
하혈은 점차 줄었고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 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동네카페에 다녀왔을 뿐인데 다음 날 종아리 근육이 당겼고, 책에도 오래 집중하지 못했다.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겁이 났다. 이렇게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나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날이 올까 봐. 며칠째 같은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미래의 나를 상상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같이 우는 나. 밤잠 못 자고 좀비가 된 나. 상상 속 어디에도 보랏빛 미래는 없었다.
“일 안 하고 딱 한 달만 쉬는 게 소원이었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놓고 푹 쉬면 되지.”
침대에 누워 푸념을 늘어놓다 무심한 그의 말에 할 말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퍼붓는 내 말을 듣다가 물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것저것 하면서 사는 거, 괜찮아?”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회사를 나온 후 2년간의 시간이 ‘이것저것 하면서 산’ 시간으로 퉁쳐지는 기분이었다. 말없이 돌아누워 눈물을 삼켰다.
“사실…”
등 뒤의 목소리가 이런 말로 서두를 연 건 처음이었다.
“너를 만나면서 내내 미안했어. 나는 한계가 정해져 있는 사람이거든. 주어진 한계 안에서 열심히 사는 게 내 몫이라고 봐. 그런데 내가 봤을 때, 너는 한계가 없는 사람이었어. 0에서 1을 만들 수 있는 사람.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그런데 나를 만나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못 하는 건가 싶었어. 결혼을 결심하고 나서는 더 미안했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더 미안하고. 네가 뭔가 제대로 하려고 할 때마다 내가 발목을 잡는 것 같아서.”
졸업하고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는 동안, 퇴근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회사 이야기를 쏟아놓는 동안 그는 내내 내게 미안했다. 이루지 못한 내 꿈이 가까운 이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마음의 무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몰랐다. 결혼식장에서 그와 하나가 된다고 서약하면서도 내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믿었다. 흔히 겪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던 결혼과 출산은 내가 달라지는 또다른 시간의 입구였다.
내 몸도 내 꿈도 나만의 것은 아닌 시간. 내가 너에게 영향받고, 가끔은 너와 나의 구분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시간. 나는 다른 시간에 속해 있다. 이전의 시간과는 다르게 흐르고, 고통과 아름다움의 규칙도 조금은 다를 시간 속에. 눈앞의 불행을 미리 재단하지 않고, 전혀 몰랐던 곳에서 뜻밖의 행복을 찾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네가 웃을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