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한국사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평양 전쟁 발발 소식을 접하고, 일제 패망을 확신하며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준비했습니다.
주요 세계사
*1941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현지 시각 7일, 한국 시각 8일 새벽)
*1980년: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뉴욕 자택 앞에서 피살되었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전시 칼럼: 눈밭을 걷는 마음, 우리가 박물관에 가야 하는 이유
오늘의 역사 중, 1941년 12월 8일은 세계가 전쟁의 화마에 휩싸인 날이자, 우리에게는 역설적으로 '독립의 기회'가 찾아온 날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소식을 들은 김구 주석은 "이제 왜적은 망했다!"라며 일제의 패망을 직감했습니다.
이 역사적 결단의 순간과 관련하여, 우리는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그 치열했던 기록들을 다시 꺼내어 봅니다.
전시실 입구,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 옆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1941년 겨울, 전쟁이라는 거대한 눈보라 속에서 임시정부가 걸어야 했던 길도 이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하지만 반드시 똑바로 걸어야만 했던 '이정표 없는 길'이었습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임시정부의 고뇌와 투쟁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습니다. 특히 1932년,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한인애국단원들의 사진 앞에서는 절로 숙연해집니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김구와 임시정부. 하지만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의 발발은 그들에게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닌 '당당한 교전 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 것입니다.
김구 선생의 이러한 결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기념관에는 1894년, 약관의 나이에 동학농민군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하던 '청년 김구'의 모습이 기록화로 남아있습니다. 붉은 깃발을 앞세우고 성을 향해 돌진하던 저 청년의 기백은, 반세기가 지나 1941년 임시정부 주석이 되어 전 세계를 향해 '선전포고'를 외치던 노(老) 지도자의 결단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이처럼 한 사람의 생애를 관통하는 '저항 정신'의 맥락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험난한 길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중국 낯선 땅에서 며느리를 잃고 손자를 키우며, 아들의 독립운동을 위해 밥을 빌어야 했던 곽낙원 여사. 녹슨 밥그릇을 들고 서 있는 동상은, 독립운동이 영웅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의 피눈물과 희생으로 지탱되었음을 침묵으로 웅변합니다.
12월 8일, 전쟁의 포화 속에서 김구 주석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어머니가 보여준 이 강인한 사랑이 지지대가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맺음말: 역사의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지만, 우리에게는 '광복'이라는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우리가 백범김구기념관에 가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박물관은 단순히 위인의 업적을 나열한 공간이 아닙니다. 가장 춥고 어두웠던 시기(눈 덮인 들판)에도 길을 잃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 했던 선조들의 '뜨거운 심장'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12월 8일, 오늘의 역사를 통해 위기 속에서 희망을 찾아냈던 그들의 혜안을,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발자국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