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12월10일, 지도 없는 나라의 선전포고

by 시간수집가art

작년 겨울, 우리를 뜨겁게 했던 영화 <하얼빈>(2024)의 여운을 기억하시나요? 1909년, 하얼빈 역의 차디찬 바람을 가르며 울렸던 안중근 의사의 총성. 그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야만의 시대를 향한 가장 처절한 '평화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리고 32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1941년 12월 10일. 그날의 총성은 사라지지 않고, 한 장의 거대한 '외교 문서'가 되어 부활합니다.


12월 10일, 오늘의 역사 요약

주요 한국사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對日) 선전포고 발표


주요 세계사

*1896년: 알프레드 노벨 사망 (노벨상 제정)

*1948년: 유엔(UN), 세계 인권 선언 채택


감옥 위로 쏘아 올린 선전포고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며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올리자 백범 김구 선생은 직감했습니다. "이제 왜적은 망했다.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그리고 이틀 뒤인 오늘, 12월 10일. 지도상에 영토 한 뼘 갖지 못한 망명 정부는,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일본 제국을 향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3천만 한국 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대일(對日) 선전을 포고하노라."

서울 서대문구, 붉은 벽돌의 옛 감옥(서대문형무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서 있습니다.

이곳 상설전시관에서는 1941년 그날, 임시정부가 발표했던 <대일선전성명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리관 속에 정지된 시간으로 남아있는 이 문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나 반란군이 아닌,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싸우는 '교전 단체(交戰團體)'임을 국제법적으로 선언한 증명서입니다.

안중근이 '개인'의 몸으로 제국에 맞섰다면, 1941년의 김구와 조소앙은 '국가'의 이름으로 제국과 맞섰습니다. 투쟁의 방식이 '저항'에서 '외교와 전쟁'으로 진화했음을, 박물관은 묵묵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아이러니

시간을 수집하다 보면 역설적인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임시정부가 제국주의에 맞서 '전쟁'을 선포한 12월 10일이, 세계사적으로는 가장 강력하게 '평화'를 염원한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1896년의 오늘,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이 눈을 감으며 노벨상을 남겼고, 1948년의 오늘, 인류는 전쟁의 참상을 딛고 <세계 인권 선언>을 약속했습니다.

기념관 옥상 정원에 서면 발아래로 서대문형무소의 까마득한 담장이 보입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인권을 유린당하며 스러져간 그 감옥 위로, 이제는 당당하게 임시정부의 기념관이 서 있습니다.

이 극적인 풍경이 말해줍니다. 1941년 임시정부의 선전포고는 단순한 파괴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빼앗긴 '인권'과 '평화'를 되찾기 위한 가장 숭고한 전쟁이었음을 말입니다.


맺음말: 기록이 기억을 지킨다

가진 것이라곤 낡은 타자기와 결기 어린 문장뿐이었지만, '정신'만큼은 이미 자주독립국이었던 그 날.

박물관 수장고에 잠든 1941년 12월 10일의 문서는, 2025년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숫적인 열세 속에서도 명분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기백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곳은 시간을 수집하는 공간, 시간수집가의 수장고입니다.


[전시 정보]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위치: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79-24 (독립문역 인근)

*관람료: 무료

*특징: 2022년 개관한 최신 국립 박물관. 임시정부의 모든 역사를 집대성했으며,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대문형무소와 인왕산의 풍경이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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