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동의 연금술, 비루한 일상을 예술로 승화하다

우리미술관 레지던스 결과보고전<연금술>리뷰

by 시간수집가art

인천 만석동, 일명 '괭이부리말'.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시간이 그대로 퇴적된 장소입니다. 낡은 적산가옥과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힌 이곳의 중심에 바로 '우리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은정 작가의 <연금술> 전시는 단순한 회화 전시가 아닙니다. 이 기획은 만석동이라는 '장소성(Site-specificity)'을 캔버스로 적극 끌어들여, 낙후된 것으로 치부되던 마을의 시간을 황금빛 예술로 치환하려는 묵직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과 미술관 전경

전시의 핵심 키워드인 '연금술(Alchemy)'은 본래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은정 작가가 주목한 연금술은 물질적 변환이 아닌 '가치의 변환'입니다.

전시장 내부에서는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전문 작가의 숙련된 붓질이고, 다른 하나는 기교 없는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의 드로잉입니다. 일반적인 전시라면 아마추어의 그림은 작가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적 장치로 쓰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기획에서 주민들의 드로잉은 그 자체로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갖습니다.

주민들의 그림과 이은정 작가의 작품

벽면을 가득 채운 주민들의 그림은 투박합니다. 그러나 그 거친 선 안에는 만석동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질감이 날것 그대로 묻어있습니다. 작가는 이 서툰 이야기들을 '불순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연금술의 가장 중요한 재료로 삼았습니다. 주민들의 일상적 기록들이 모여 전시장이라는 제도권 공간에 걸리는 순간, 그들의 평범한 하루는 특별한 예술적 사건으로 격상됩니다.

이은정 작가의 제단을 만들며 노는 아이들

이은정 작가의 본인 작품들은 이러한 서사를 시각적으로 완성해 냅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금빛 안료와 빛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자칫 고단해 보일 수 있는 마을의 풍경을 신성한 영역으로 끌어올립니다. 노동하는 여인들,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실주의적 재현을 넘어, 마치 종교화 속의 한 장면처럼 숭고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이곳의 삶 또한 충분히 찬란하다"는 작가의 조용한 선언과도 같습니다.

전시장 서문

결국 이 전시가 보여주는 '연금술'의 실체는 명확합니다. 낡고 좁은 골목,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변두리의 삶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그 안에 숨겨진 존엄을 발견해 내는 과정인 것입니다. 화려한 도심의 갤러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묵직한 울림이 여기에 있습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됩니다. 만석동이라는 텍스트를 읽고, 그 안에서 피어난 황금빛 그림을 목격하는 일은 2025년을 마무리하는 가장 의미 있는 미적 체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시 개요]

전시명: 2025 우리미술관 레지던스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연금술>

참여작가: 이은정 (주민 협업)

기간: 2025. 12. 2. ~ 12. 31.

장소: 인천 우리미술관 (인천 동구 화도진로 192번길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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