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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차 Oct 25. 2020

좀비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좀비딸>, <좀비소녀>, <좀비탐정>으로 보는 좀비와 인간의 관계

화장하는 좀비의 등장

요즘 좀비물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화장하는 좀비가 등장한 것이다. 반쯤 죽은 자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네이버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의 수아는 인간들의 학교에 다니기 위해 화장을 한다. 괴사(!)한 피부를 감추기 위해 피부화장을 하고 입술도 빨갛게 칠한다. 물론 좀비라서 의식이 없으니 본인의 의지는 아니고, 아빠 정환이 결정한 것이다. KBS 드라마 <좀비탐정>의 무영은 좀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해서 비비크림을 바르고 향수를 뿌린다. 심지어 혹독한 발음및 걸음걸이 교정 연습까지 마친 뒤 인간세계에서 탐정으로 일하게 된다.


<좀비딸>의 수아가 화장한 모습(네이버 웹툰 캡쳐)


수아와 무영은 그동안 <부산행>, <킹덤>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좀비들과 사뭇 다르다. 좀비물의 주류적인 전통이 인간과 좀비의 대결에 집중했다면, <좀비딸>, <좀비소녀>, <좀비탐정>의 서사는 좀비와 인간의 공존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 대결 대신 공존에 집중할수록 좀비의 '인간적인' 면모는 더욱 부각된다. 좀비가 된 사람 개인의 특성, 역사 그리고 그가 주변과 맺고있는 관계가 이야기의 초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들과 잘 어울리다가도 때때로 고개를 드는 '야생성'이 주요한 갈등 요소로 떠오르게 된다.


이 글에서는 웹툰 <좀비딸>, <좀비소녀>, 드라마 <좀비탐정>을 통해 '좀비물'이라는 장르의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세 작품을 2010년대 좀비물의 특징과 비교해본 뒤 인간과 좀비가 공존하는 서사가 가능한지 질문할 것이다.


2010년대 좀비물의 컨벤션(convention)

영화 <부산행> 스틸컷

앞에서 어느 정도 말했지만, 기존 좀비물의 특징을 먼저 짚어보고자 한다. 좀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나는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인간에게 떼로 달려드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또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바이러스'와 '감염'이다. '좀비=좀비 바이러스 감염자'가 현대 좀비물의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감염은 어떻게 되는가? 좀비의 이빨에 물리면 감염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간일 때의 기억과 인격을 모두 잃어버리고 인간을 비롯한 각종 동물, 날고기에 달려드는 좀비가 된다. 과거의 좀비는 묘지에서 막 나온 시체처럼 팔을 앞으로 뻗고 느리게 걸었지만, 요즘 좀비들은 매우 빠르고 힘이 세다. 그리고 대부분 똑똑하지 않다. 정리하자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2010년대 좀비의 특징

말이 안 통함(기억X, 인격X)

인간/동물/날고기에 달려듬

물어서 좀비 바이러스를 감염시킴

빠르고 강함

그리 똑똑하지 않음


물론 기존 좀비물이 좀비를 그저 처치해야 할 괴물로만 여기는 건 아니다. <부산행>에서는 좀비가 되어가는 고통에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좀비가 이전에 분명히 인간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좀비'의 서사이기보다는 '인간'의 서사이다. 어쨌든 기존 좀비물에서 좀비가 된 이들은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고 제거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아니면 치료해서 다시 인간으로 만들거나.


가족, 이웃과 공생하는 좀비

처치한다/치료한다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당장은 치료제가 없지만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라서 좀비를 데리고 살아야만 한다면? 웹툰 <좀비딸>은 좀비가 된 딸 수아를 어떻게 데리고 살지 고민하는 정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환은 들킬 위험이 높은 도시에서 보다 안전한 시골집으로 수아를 데리고 내려가 같이 지낸다. 어찌저찌 잘 둘러대서 수아의 정체를 주변 사람들에게 속이는 데 성공하고 학교에도 보내게 된다. 좀비 수아는 마치 야생동물을 길들이듯이 정환에게 길들여져서 말을 꽤나 알아듣는 좀비가 된다. 심지어 학교에서 친구도 사귀게 된다.


웹툰 <좀비소녀>에 나오는 노인 좀비들은 이가 다 빠져서 위협적이지 않다(네이버 웹툰 캡쳐)


웹툰 <좀비소녀>는 좀비가 되어버린 마을 노인들을 돌보는 마을 최연소자 원나의 이야기이다. 원나는 좀비가 되기 전까지 가까운 사이였던 마을 어른들을 차마 떠날 수 없어 그들을 먹이고 입힌다. 극소수만 살아남는 기존의 좀비물과 다르게 원나의 목표는 자신이 속한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다. 노인 좀비들은 이가 다 빠졌기 때문에 두꺼운 옷을 입으면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도 기존 좀비물과의 차이점이다.


드라마 <좀비탐정>은 또 어떤가. 좀비 무영은 자신이 좀비가 된 이유를 알고 싶어하고, 동료 인간과 함께 탐정일을 한다. 좀비로서의 본능을 누르려 애쓰기도 하고 좀비보다 썩어빠진 인간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무영이 아니라 다른 악역들이 더 좀비에 가깝지 않나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인간적인 좀비'가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류가 아니었을 뿐 분명히 존재했다. 영화 <웜바디스>에서는 연애하는 좀비가 등장하기도 했다. <기묘한 가족>처럼 좀비와 가족서사를 결합한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좀비와 인간의 공존'이라는 주제가 전면에 등장하는 건 분명 새로운 풍경이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인간과 관계 맺는 좀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좀비, 정의를 구현하는 좀비가 좀비물의 공식을 바꾸고 있다.


좀비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좀비는 사회적 약자의 은유로 이해되기도 한다. 좀비의 존재는 좀비를 기어코 몰아내려는 인간세계의 비정함을 보여준다. 좀비에 대한 질문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누가 좀비이고 인간인가?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기존 좀비물이 스릴있는 대결을 보여주기 위해 좀비의 '인간성'을 상당부분 제거했다면, 새로운 좀비물은 '인간적인 좀비'를 되살려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결국 좀비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냐는 질문은, 인간사회가 좀비와 같은 타자와 공존할 수 있냐는 질문이 된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언급한 세 작품 모두가 충분한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다. 어떤 작품에서는 좀비들이 치료되어 인간이 되고, 어떤 작품에서는 좀비들이 죽는다. 좀비가 좀비인 채로 인간과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가 어려운 다른 바이러스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치료가 어려운 전염병을 가진 사람들과 그 병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살 방법은 없는 걸까? 좀비물의 전통을 또 한 번 바꿀 작품을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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