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

38 시간을 훔치다

by 시간 작가

생각해 봐. 그날 기분에 따라 시간이 완전히 빨리 가기도 하고 영 끝나지 않을 때도 있지 않아? 그럴 땐 시간이 온통 뒤틀리는 것 같지. 오, 정말이지 신기하지 않아? 친구들이랑 저녁 식사를 하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다 같이 웃고 대화에 푹 빠져 있다가, 어느새 몇 시간이 휙 지나가 버리는 거 말이야. 딱 그렇지. 근데 다음 날 아침을 생각해 봐. 뛰어 보겠다고 나갔다가 숨은 턱까지 차고, 너무 힘들어 이어폰 음악 소리는 들리지도 않게 되지. 정말이지, 10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시간이 완전히 멈춰 버린 것 같지? 우리는 보통 이런 느낌을 그냥 인간 심리학의 정신적 문제 정도로 치부하곤 하지. 우리 뇌가 우리를 속이는 거라고. 하지만 만약 이게 단순히 뇌가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면 어떨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만약 그 느낌, 즉 시간이 지닌 그 오묘함이 사실은 시공간이라는 물리적 현상의 반영이라면 어떨까? 마치 시간이 우리 자신의 기억이 뿜어내는 중력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면 말이야. 이건 정말 생각해 본 적 없는 개념이지. 왜냐하면 우리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야. 내 말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주는 거대하고, 차가운 물질의 세계처럼 생각하도록 학교에서 배웠잖아. 뉴턴의 사과가 초당 9.8 제곱미터의 가속도로 떨어진다거나,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처럼, 사과나 물은 우리가 그걸 어떻게 느끼거나 생각하는지 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거지.


무척 기쁠 때든, 엄청나게 절망에 빠졌을 때든 상관없이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물리 법칙과 복잡하고 주관적인 인간의 경험 사이의 커다란 장벽이 느껴진다는 거야.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생의 주제인 거지.


오늘 우리는 “시간”에 대해 숨 막힐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을 얘기해 보려 해.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심층적이고 오묘한 것들로 가득해. 정말로 이 이야기는 난해한 천체물리학, 세포 생물학, 그리고 철학이 밀도 있게, 그리고 훌륭하게 융합되어 있지. 오늘 우리는 양자 요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우주의 근본 법칙을, 사랑이나 기억과 같은 인간의 깊고 친밀한 경험과 감각적으로 연결해 보려 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류의 기술이 향하는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까지, 정말 대장정이 될 거야. 자, 그럼 이 내용을 하나씩 펼쳐나가 볼까.


우주가 실제로 우리 인간의 경험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이해하려면, 인류가 역사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토대부터 시작해야 해.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가 결국 엄청나게 난해한 이론물리학의 세계로 빠져들어가야 하겠지만, 결코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야. 우리는 현실에 기반한, 아주 근본적인 인간의 고뇌를 살펴볼 거야. 다시 말해, 시간에 대한 분석을 현대 입자물리학 연구실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것이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보면 우주의 멈출 줄 모르는 시간 흐름과 인간의 개별적 의지를 분리하려는 인류의 초기 노력이 보여. 크로노스와 그의 손자 카이로스에 대한 신화를 조심스럽고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크로노스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법한 인물이야. 기본적으로 ‘시간의 신’이지.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을 그대로 의인화한 존재야. 그는 다음 자식 세대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날까 봐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친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렸어. 아주 암울한 이야기야. 하지만 크로노스는 미래가 미리 정해져 있고, 흘러가며, 멈출 수 없는 시간을 상징하지. 바로 시간의 흐름, 알다시피 과거, 현재, 미래 말이야.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그저 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간다고. 그러니 크로노스는 시간 그 자체, 순수한 시간 순서를 의미하지.


하지만 그 후 크로노스의 손자 카이로스가 등장하는데, 카이로스는 완전히 다른 시간 개념을 상징해. 카이로스는 정말로 정반대인 존재지. 카이로스는 고전적 묘사 속의 조각상들처럼, 칼날과 저울을 들고 있는,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절호의 순간을 의인화한 존재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는데, 카이로스는 보통 이마 위로 머리카락 한 가닥이 흘러내린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뒤통수는 완전히 대머리야. 이 모습을 상상해 보자고. 카이로스가 다가올 때만 머리카락을 잡을 수 있다는 거지. 왜냐하면 일단 그가 지나가 버리면 뒤통수는 휑하고 미끄러운 대머리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잡을 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지. 그럴듯하지? 그리고 이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야. 이는 그리스 문명이 심오한 철학적 구분을 체계화하려는 시도였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곁다리인가를 파악하는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거야. 물리학에서 우주 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 열이나 에너지가 공기, 물 등 매질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자기파의 형태로, 우주라는 디스플레이의 배경화면처럼 방향에 관계없이 거의 균일하게 전달되는 마이크로파)가 빅뱅의 잔광인 것처럼 크로노스는 ‘존재의 배경복사’라고 볼 수 있어. 크로노스는 종종 우주의 태초에 등장한 원시적 존재로 묘사되고, 카이로스는 인간의 행동이 시간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이지. 이렇게 순차적인 선형 시간과 기회의 순간을 구분하는 거지.


만약 시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간을 단순히 연속적인 운동의 척도로 정의했을 때 주장했던 것처럼 그저 멈추지 않는 연속에 불과하다면, 왜 현재의 순간은 우리에게 그토록 믿을 수 없을 만큼 안타깝게 잡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현재가 단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덧없는 통로에 불과한 걸까? 하지만 실질적으로 말해서, 그 통로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지금 현재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하지만 내가 이 사실을 인지하는 바로 그 짧은 백만 분의 1초에, 그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는 거야. 이건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역설 중 하나이며, 이 역설은 고대 사상에서 현대 물리학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 좀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속적 흐름에 대한 얘기를 했지. 후대에 임마누엘 칸트는 시간이 실제로는 물리적 세계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어. 칸트는 시간이 순전히 내적인 정신적 틀, 즉 우리 뇌가 원시적인 감각 입력을 정리하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선험적인 생물학적 소프트웨어라고 믿었어. 그러니까 모든 게 우리 머릿속에 있다는 거지. 기본적으로 칸트의 주장은 그렇지만, 궁극적인 해답은 결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어.


‘지금’이라는 순간이 그토록 애매모호하고 보편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금’이 보편적인 상수가 아니기 때문이지. 이건 전적으로 관찰자에게 국한된 개념이야. 이 점을 아인슈타인의 수학 선생님이었던 헤르만 민코프스키는 ‘세계선(World Lines)’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제 세계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거야. 세계선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기 때문이야. 자, 상대성 이론에서 시공간은 4차원 구조이지. 위, 아래, 앞, 뒤, 좌, 우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있지. 합치면 4차원 격자(4D Grid) 모양이야. 그리고 거대한 별이든, 미세한 원자든, 아니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이든, 모든 물체는 그 4차원 구조 속에서 고유한 궤적을 그려. 그 궤적이 바로 우리 각자의 세계선이야. 그리고 여기서 핵심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각자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는 거지.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Proper Time)이 있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지. 그리고 이 세계선의 기울기(속도)에 관한 더 놀라운 점은, 인생을 살아가며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가속할수록, 실제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는 것이지. 정지해 있는 관찰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말이야.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대성 이론의 시간지연(Time Dilation)을 실제로 반영하고 있어. 물리적인 사실이야. 인공위성의 시계를 통해 증명되었지. GPS 위성 시스템 말이야. 실험을 위해 매우 정밀한 원자시계를 비행기에 실어 지구를 빠르게 한 바퀴 돌고 착륙하면, 지상에 남겨진 똑같은 시계보다 약간 더 느리게 움직였을 거라는 거야.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항상 빛의 속도(c)로 일정하게 이동하고 있어. 만약 내가 공간적으로 정지해 있다면 나의 모든 속도는 '시간' 쪽으로만 쏟아지지만 내가 공간 속에서 빠르게 움직여서 세계선의 기울기가 가팔라질수록(즉, 공간 이동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 축으로 할당되던 속도를 공간 축으로 나누어 쓰게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 시간의 눈금이 늘어지면서,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 나의 시간(상대속도)은 더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되지. 결국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는 건, 내가 가진 총 속도 에너지를 시간과 공간이 서로 나눠 갖는 게임과 같아.


생각만으로는 정말 믿기 어렵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상대성 이론 같은 문자 그대로의 물리적 현실을 인간의 활력에 비유할 수 있어. 자,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지? 차가운 물리와 살아 숨 쉬는 인간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이야. 만약 우리의 세계선이 가파르다면—즉, 끊임없이 가속하며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면—정체된 상태에 있는 사람에 비해 우리의 생체 시계가 말 그대로 더 느리게 돌아간다고. 잉? 뭐라는 거지? 여러분이 인간의 대인 관계적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볼게. 자, 헬스장에 있는 두 사람을 상상해 봐. 나는 러닝머신 위에서 전력 질주하며 가속도를 최대한 내고 있어, 아주 빠른 움직임으로. 그리고 여러분은 바로 옆 러닝머신에서 느긋하게 천천히 걷고 있는 거야. 우리는 물리적으로 똑같은 공간에 있지. 같은 공기를 마시고, 러닝머신 앞 모니터 속의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고 있지. 같은 공간에 있으니 좌표는 정확히 같지만, 우리의 상대적 운동량은 극명하게 달라. 만약 우리가 갑자기 손을 잡기로 결정한다면, 물리적으로 아주 멍청하고 잔인한 상황이 연출될 거야.


헉, 그럴 것 같지? 우리 중 한 명이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속도나 관성을 극적으로 바꿔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넘어져서 러닝머신 밖으로 튕겨 나가 버릴 테니까. 정확히 같은 공간적 위치에 있을지라도, 서로를 가로지르는 운동량 벡터는 천지차이일 수 있지. 이 예시가 우리 서로의 물리적 연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거나 진정으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두 사람이 세계선을 정렬하는 행위라는 말이야. 정말 아름답지 않아. 단순한 감정 표현으로는 안되고, 의도적이고 신체적으로 힘든 물리적 동기화 과정을 위해 서로가 진정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 우리가 단순히 메타포로만 느끼던 '바쁜 삶'이나 '역동적인 움직임'이 실제 우주의 법칙 안에서 물리적인 시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소름 돋지 않아? 결국 우리가 더 빨리 달릴수록, 남들보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미래로 더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셈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관성을 능동적으로 조절하고, 시공간 속의 속도를 바꾸어 상대와 정확히 같은 좌표를 공유하고 있어야만 해. 추상적이고 시적인 감정의 사랑에서 천체 역학적 행위로 승화하는 거지. 연인들은 말 그대로 서로를 위해 자신의 궤적을 바꾸고 있는 거란 말이야. 특수 상대성 이론의 속도에 의한 시간지연뿐만 아니라, 중력을 다루는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히, 가슴 저미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물리학의 두 기둥인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서로 매우 다른 두 가지 유형의 인간적 고립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이 부분이 완전히 심장이 내려앉는 대목이야. ‘고립의 물리학(The Physics of Isolation).’ 참 무거운 주제지. 방금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역학적 가속도가 시간지연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이 상태를 '역동적인 고독(Dynamic Solitude)'으로 정의할 수 있어.


그래, 역동적인 고독. 우주선이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고. 우주비행사는 활력이 넘치고, 우주선은 속도를 내며 한계를 뛰어넘고 있지만, 시간지연 현상 때문에 창 밖의 나머지 우주의 생명체는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지. 말 그대로 우주선이 세상을 앞질러 가고 있는 셈이야. 비행사는 우주의 광활한 영역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완전히 혼자서 외롭게 경험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자신의 경력에 극도로 집중하는 사람의 이야기야. 끊임없이 활동하며 놀라운 성과를 거두지만, 주변 사람들과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지. 이게 바로 이 개념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거야. 역동적이고 인상적이지만, 동시에 깊은 고독을 동반하지.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물리학에서 시간을 극적으로 늦추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볼 건데, 바로 중력이야. 일반 상대성 이론, 바로 그거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처럼 우리가 거대한 중력 근처에 갇히면 극심한 시간지연이 일어나는데, 나는 이걸 ‘정적 고립(Static Isolation)’이라고 불러. 정적 고립이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해. 움직이지 않는 거야. 압도적인 힘에 눌려 꼼짝도 못 하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인데도, 주변의 시간은 여전히 뒤틀리고 있어. 이 상황을 더 큰 그림과 연결해 보면, 마치 심리적 트라우마나 나쁜 인간관계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되지. 중력 근처에 갇혀있는 사람은 빛의 속도로 별들 사이를 홀로 날아다니는 게 아니니까, 발버둥 처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정서적 중력에 갇혀 있다는 말이야. 정지된 궤도에 갇혀 있는 거지. 만약, 운이 좋거나 아니면 부단한 노력으로 중력에서 벗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보다 무척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랄 거야.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우리 주변의 시공간을 뒤틀어 놓는 질량들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는 삶의 동반자들과 안정적인 궤도를 찾아 끊임없이 조율하려 노력하지만, 상대방의 중력에 짓눌리지도 않고 가속하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에 남겨두지도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지. 남들보다 앞서가는 '역동적인 고독(Dynamic Solitude)'도 중력에 사로잡혀버린 ‘정적 고립(Static Isolation)’도 모두 우리를 정서적으로 힘들게 하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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