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대칭과 비대칭

39 시간을 훔치다

by 시간 작가

어때, 복잡한 물리 법칙이 인간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 하지만 우리 각자의 세계선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공간의 실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파악해야만 해. 개인적인 관계에서부터 우주 그 자체의 수학적 실재에 이르기까지 시야를 넓혀 나가 보자고. 그리고 지금껏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개념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는 거야. 바로 ‘완벽한 대칭(Perfect Symmetry)’ 말이지. 우리는 대칭을 아름다움과 완벽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완벽하게 대칭적인 얼굴. 완벽하게 대칭적인 건축물. 우리는 그것을 이상적인 상태로 생각하지만, 물리학에서 완벽한 대칭은 절대적인 죽음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지. 왜 그럴까? 만약 우주가 완벽하게 대칭적이라면, 그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을까? 완벽한 조화의 문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야. 물리 시스템에서 완벽한 대칭이란 경계도, 온도 차이도, 에너지 변화도 없다는 뜻이지. 모든 것이 완전히 균일한 상태란 말이야. 그리고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에너지 차이가 없다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도 흐르지 않아. 완전히 비어 있고, 얼어붙은 정적 상태가 되고 말 거야. 여기서 '얼어붙은'이란 표현은 에너지 흐름이 멈춘 상태를 의미해, 온도가 낮아 차갑다는 말은 아니야.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대칭 상태에서도 확률적 중첩상태에 있는 에너지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어. 다만, 완벽한 대칭상태에서는 상대도 없고 차이도 없어. 모든 것이 같은 속도로 운동하고 있어서 서로의 앞도 뒤도 옆도 볼 수 없어. 상대의 다른 면을 보려면 그 상대를 지나쳐야 하는 데 속도가 같으니 그럴 수 없는 거야. 마치 달의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는 약 27.3일로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달의 같은 면만 보게 되는 조석 고정 현상을 생각해 보면 이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당연히,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얘기지 물리적으로 달과 지구가 대칭이라는 건 아니야. 오해 없기를…… 그리고, 시간도 존재하지 않을 거야. 시간은 변화를 측정해야만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오류인 셈이지.


나는 우주를 ‘생동하는 결함’이라고 규정해.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이지 않아? 뭐, 시적 감동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동시에 물리적으로도 정확한 표현이지. 우리 우주는 초기 미세한 비대칭성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어. 만약 물질과 반물질이 완벽하게 대칭적인 양으로 생성되었다면, 둘은 접촉하는 즉시 서로를 완전히 소멸시켜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저 무반응한 광자의 요동만 남겼을 거야. 하지만 에너지의 불연속에 기인한 아주 미세한 차이, 즉 시간 차가 있었고, 반물질보다 물질이 아주 조금 더 많았는데, 그 아주 조금 남은 부분이 바로 우리 우주인 거지.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 소멸(Pair Annihilation)하며 질량 전체가 에너지로 변환되게 되는데, 이때 방출되는 감마선이 그 미세한 불완전함과 상호작용하며 질량을 생성하게 된 거야. 감마선이 밖으로 따뜻한 에너지(인간 감정의 친절)를 방출하며 공간을 열어 길을 나설 때 비대칭의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안으로 결합된 에너지(겸손)가 질량을 생성해. 그 깨진 대칭성 덕분에 물질이 뭉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중력이 먼지를 끌어당겨 별과 은하, 그리고 결국 행성을 형성할 수 있었지. 자, 이쯤에서 CPT 불변(CPT Invariance)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솔직히 말해서, CPT란 용어는 꽤 위압적으로 들리지. CPT는 전하(Charge, 전하 켤레 대칭), 패리티(Parity, 반전 대칭), 시간(Time, 시간 방향 대칭)을 의미해. 양자역학의 기초 개념이지. 요점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스위치를 동시에 켤 때만 대칭을 이룬다는 거야. 여기서 주의할 점은, 대칭은 "균일함" 또는 "대응성"을 의미하고 불변은 "상태의 유지"를 의미한다는 거야. 그럼, 이 세 가지 스위치들은 뭘까? 먼저 하나씩 살펴보면, 첫 번째 스위치는 전하 켤레(신발 한 켤레 할 때 그 켤레)야. 모든 입자를 그에 대응하는 반입자로 바꾸는 거지. 여기서 입자가 가진 전기적 성질을 의미하는 플러스, 마이너스의 전하와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는 전하 켤레를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어. 전하는 전기력을 발생시키고 전하 켤레는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을 확인하는 수학적 연산 개념이지. 두 번째 스위치는 패리티야. 이건 공간 반전으로 보면 돼. 거울 속의 우주를 바라보는 걸 상상해 봐. 왼쪽이 오른쪽이 되고, 오른쪽이 왼쪽이 되는 거지. 3차원에서는 왼쪽으로 90도 돌리고 180도 뒤집은 걸 말하기도 해. 그리고 세 번째는 시간이야. 시계를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돌리는 거지.


수학적으로, 이 세 가지 스위치를 동시에 작동(수학적 연산을 의미하는 거지, 실제로 그런 스위치가 있다는 건 아니야)하게 되면 우주는 정확히 똑같이 작동해. 물리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지. 이것이 바로 CPT 불변이야.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지도 않고,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는 우리가 반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아니잖아. 현실에서는 CPT 대칭의 일부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깨진 대칭성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깨짐은 실수가 아니라 생명의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지.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정말 흥미로워. 나는 단순히 우주나 물리, 수학의 놀라움에 감탄만 하려는 게 아니야. 우주를 계산하려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도전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맹점을 지적하려는 거지. 나는 아주 대담하고도 조심스럽게 인류 역사 속, 물리학의 거인을 정면으로 언급하려고 해.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지. 어려운 과학 학술지 말고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렇게 언급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사실 기하학 관점에서 접근하면 이해할 수 있을 법도 해.


이 관점을 이해하려면, 인류가 공간을 측정해 온 역사적 변천 과정을 먼저 알아봐야 해.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부터 시작되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평평한 2차원 평면의 기하학을 선사했지. 땅 위에 그려진 원과 삼각형 같은 것들 말이야. 기본적인 2차원 기하학이지. 하지만 현실 세계는 평평하지 않으므로, 19세기로 건너뛰어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라는 수학자를 소개할게. 가우스는 곡면인 3차원 공간의 수학적 원리를 밝혀냈어. 그는 구의 곡률이나 감자처럼 불규칙한 물체의 곡률조차도 그 표면 밖으로 나가 외부에서 바라보지 않고도 거리와 각도만 알면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가우스는 내부 구조에 대한 수학적 원리를 정확히 규명해 냈고, 표면 안이나 위에서 길이를 재고 각도를 측정하여 곡률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2차원적인 측정으로 3차원 공간상의 위치를 알 수는 없었지. 그 후 가우스의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이 등장해, 가우스의 연구를 바탕으로 차원의 수에 구애받지 않고 이를 일반화하여 진정한 n차원 기하학을 창안했어.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중력 방정식에 사용한 기하학이야.


아인슈타인은 본질적으로 리만의 기하학을 받아들여. 중력은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행성들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것이 아니고, 중력은 바로 이 4차원 시공간 구조가 실제로 휘어지고 구부러지는 현상이며, 이것이 세상을 바꿔놓았지. 아인슈타인은 리만의 수학을 활용해 자신의 유명한 중력 방정식을 도출했지만, 방정식에 수학적인 불균형이 존재해. 아인슈타인의 수학이 이른바 공변 성분에 엄청나게 의존하고 있는 반면, 반변 성분은 결정적으로 부족하거든. 공변과 반변은 좀 아리송하지?


이걸 현실 세계에 적용해 볼까? 예를 들어, 이게 실제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비유를 들어볼게. 지형도를 예로 들어 보자고. 우리가 거대하고 복잡한 산맥을 헤쳐 나가는 등산객이라고 상상해 봐. 지형도의 공변 성분은 산 자체를 묘사해. 등고선이라서 단순히 고도를 보여주지. 지형이 어떻게 휘어져 있는지, 가파른 절벽이 어디에 있는지, 계곡의 경사도, 지형의 전반적인 구조적 기하학적 형태를 정확히 알려줘. 그러니까 공변 성분은 공간의 형태와 같아. 반면, 반변 성분은 그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실제 물체들을 설명해. 생각해 봐. 휴대폰의 GPS 위치 표시처럼 말이야. 산 위에서 등산객의 구체적인 위치, 속도, 그리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정확한 지점을 벡터로 나타내지.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의 수학이 산의 등고선을 그리고, 공간의 곡률과 경사를 묘사하는 데는 사실상 흠잡을 데가 없어. 하지만 그 공간을 정확히 통과하는 물체에 대해 정밀한 GPS 위치를 표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 일반 상대성 이론은 거시적 곡률에 대한 최고 수준의 이론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수학이 블랙홀 내부와 같은 극한 조건에서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 블랙홀 중심부의 우주 탄생 순간에는 무한한 밀도를 지닌 점인 ‘특이점’이 존재하지. 산의 등고선이 무한히 깊게 휘어진다고. 왜냐하면 공변적 수학은 연속적인 곡선을 측정하는 데 의존하지만, 그 곡선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야. 수학이 힘을 잃는 것처럼 보이지. 플랑크 길이처럼 양자 수준으로 확대해 보면 말이지. 플랑크 길이는 우주에서 측정 가능한 가장 작은 양자 영역을 말해. 시공간은 더 이상 매끄러운 곡선이 아니라, 혼란스럽게 요동치고 있어. 원주율 파이 있지? 파이가 원둘레 길이와 지름의 비율이기도 하지만, 모든 점에서 미분 가능한 곡선으로 취급되기도 해. 그 파이가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는 거야. 따라서 개별 양자 입자의 정확한 벡터를 추적할 수 있는 견고한 반변량 성분이 없다면, 그 지도로 등산객의 위치를 찾기는 어렵지. 현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산과 계곡의 형태와 등산객들의 정확한 위치와 움직임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수학적 언어가 필요해. 이 반변량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관점이 있어. 우리는 경사도는 이해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놓치고 있다는 거야.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1차원 시간과 세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