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빛과 기억

40 시간을 훔치다

by 시간 작가

이제 무거운 중력 이야기는 좀 뒤로 하고, 좀 더 가벼운 느낌의 주제로 넘어가 볼까? 빛의 물리학 역시 중력만큼 심오하긴 하지. 빛은 거시적 우주에서 인간의 지각에 이르는 간극을 연결해 주지. 빛은 진동수에 비례하는 에너지 그 자체이며,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연속적인 흐름도 아냐. 빛은 양자라고 불리는 개별적이고 측정 가능한 단위로 나뉘어 있어. 그리고 이는 플랑크 상수에 기반한 것인데, 에너지가 디지털 같은 기본 단위로 존재한다는 개념, 그리고 빛은 단순히 직선으로 나아가는 한 줄기 선이 아니라, 진동하며 공간을 통해 에너지를 전달하는 파동(마루와 골을 가진)이지. 또한, 이중 슬릿 실험이나 광전효과와 같은 상황에서는 입자처럼 행동해. 빛은 파동처럼 행동하지만, 망막에 닿는 것처럼 물질과 상호작용할 때는 입자처럼 충돌해. 이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이 우리의 개별적 지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아름답고 생생한 일화를 얘기해 줄게.


자, 해변에 서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려봐. 해가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빛을 쏟아내지, 그렇지? 이는 태양에서 무수히 많은 원자가 빛을 낼 때 서로 다른 위상(파동의 위치)을 갖고, 빛 파동들이 서로 간섭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바다 표면은 수천억 개의 작고 무질서한 물결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빛은 수천억 가지의 서로 다른 각도로 반사돼. 그런데 여기서 물리학의 마법이 펼쳐지지. 우리의 눈은 시공간 속에서 오직 한 지점에 위치해 있고, 따라서 수천억 개의 흩어진 반사광 중에서, 우리의 망막은 우리에게 닿기 위해 필요한 정확한 각도로 물에 반사된 빛줄기만을 볼 수 있어. 그래서, 물 위를 가로지르며 우리의 눈을 정면으로 가리키는 듯한, 완벽하게 곧게 빛나는 빛의 궤적이 만들어지는 거야. 태양이 나만을 비추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니까.


정말 아름다운 착각이지 않아? 해변을 따라 저만큼 걸어가면, 빛의 궤적이 우리를 따라오지. 마치 우주가 오로지 우리만을 위한 쇼를 펼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이것은 빛의 산란이라는 객관적인 물리학이 관찰자에게 얼마나 깊이, 주관적이고 지극히 독특한 현실을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주는 일화야. 그 해변에 서 있는 서로 다른 위치의 두 사람이 똑같은 빛의 궤적을 보는 일은 없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바로 이 광학 물리학을 우리 머리 위의 하늘에도 적용해 보면 재미있지. 사실 이건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가장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해. 왜 하늘은 파랗고, 왜 석양은 붉은 걸까?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단순히 에너지 파장의 관점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거야. 자, 차근차근 설명해 볼게. 이 메커니즘은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이라고 불려.


스펙트럼의 모든 색이 뒤섞여 있는 햇빛이 대기로 들어오면 질소, 산소 분자와 부딪히게 되는데, 빛의 색깔에 따라 에너지 수준이 달라. 파란색과 보라색 빛은 에너지가 높고 파장이 짧고, 이 빛들은 매우 불안정해. 빨간색과 주황색 빛은 에너지가 낮고 파장이 길며 느긋하지. 그렇다면 낮에 햇빛이 대기에 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불안정하고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은 기체 분자들과 충돌하여 하늘 곳곳으로 격렬하게 산란 돼.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란색을 보게 되는 거야. 말 그대로 파란색 광자가 비처럼 쏟아지는 셈이지. 하지만 해 질 녘에는 태양이 지평선 가까이 낮게 떠 있고, 빛이 우리의 눈에 닿으려면 훨씬 더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해야 하므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할 때쯤이면 고에너지 파란빛은 모두 산란되어 사라져. 대기에서 완전히 걸러지는 거지. 두꺼운 대기층을 뚫고 지면까지 도달할 만큼 강한 빛은 느릿느릿한 긴 파장의 빨간색과 주황색뿐이야. 색깔은 물리 법칙에 의해 결정되지. 이쯤에서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가볍게 던져볼까?


결국 철학이 우리의 물리적 이해를 도울 테니까. 왜냐하면 블랙홀의 기하학, 청색광의 산란, 시간지연과 같은 모든 물리 법칙들은 자연 현상을 인지할 마음이 없다면 전혀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 푸른 하늘을 생각해 봐.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시신경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 그렇다면 우리 뇌의 생물학적 구조는 어떻게 우주의 물리학을 실제로 인지하는 걸까? 천체물리학에서 신경과학으로 살짝 넘어가 볼게. 조금은 기억에 대한 급진적인 관점일 수도 있는데, 나는 시간이 강물처럼 우리 곁을 지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물리적으로 축적된다고 말하고 싶어. 우리의 과거는 말 그대로 기억의 밀도 속에 살아있지. 시간에 대한 심리적 인식을 앞서 논의했던 중력의 물리학으로 되돌려 연결해 보면 어떨까?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해 보자고. 질량은 밀도를 증가시키고, 이는 시공간을 휘게 만들지. 시간을 늦추는 거야. 우리 뇌는 경험에 대해서도 정확히 똑같은 일을 해. 기억의 흔적(Engram)이 기록되지 않은, 반복적인 일상은 말 그대로 '잃어버린 시간'이야.


만약 우리가 평소처럼 일어나서 출근하고, 컴퓨터를 쳐다보고, 집에 돌아가는 일을 1년 내내 똑같이 반복한다면, 우리 뇌는 그 시간을 그냥 지워버리는 걸까? 본질적으로는 그렇지. 주변 환경이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다면, 뇌는 최적화 모드로 전환되는 거야. 뇌가 게을러진다기보다 효율적이 되는 거지. 새로운 신경 경로를 형성하거나 새로운 기억 흔적을 합성할 필요가 없으니까. 뇌는 생물학적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반복적인 데이터를 압축해. 그래서 반복적인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뚜렷한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 주관적으로 보면 1년 전체가 일주일 만에 스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거야.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린 거지.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어렸을 때 여름방학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느껴졌던 거야.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지. 우리는 엄청난 양의 기억 밀도를 쌓아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평소에 풍부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이루어진 중력장을 형성하라고 강조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긴장감을 느끼는 일을 하거나, 일상을 깨뜨리거나, 깊은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뇌가 시냅스 연결을 물리적으로 변화시켜 기억의 흔적(Engram)을 남기도록 강요하는 것이지. 우리는 이렇게 기억 네트워크의 물리적 밀도를 높일 수 있어. 물리적 질량이 중력을 만들어 물리적 시간을 늦추는 것처럼, 감정적 밀도는 심리적 중력을 만들어내지. 이런 행위가 우리의 수명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물리적으로 확장시켜. 우리는 단순히 자동 조종 모드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문자 그대로 더 긴 주관적 삶을 살 수 있어. 이것이 우리의 세계선의 가속도를 바꾸는 것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거야.


이러한 인지 능력은 인간의 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야. 정보를 처리하는 데 뇌가 필요하지 않다면,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할 거야. 단세포 동물의 미로 실험이 있는데, 우리가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모든 내용을 말 그대로 완전히 뒤집어 놓지. 단세포 생물, 피사룸 폴리에세팔룸(Physarum polycephalum)을 이용한 미로 실험은 2000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나카가키 토시유키 교수가 발표한 연구로, 뇌나 신경계가 없는 단세포 생물도 지능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어. 점액균 같은 생물은 신경세포도, 시냅스도, 중추신경계도 전혀 없는 존재들이야. 말 그대로 맥박이 뛰는 끈적끈적한 덩어리에 불과한 거지. 그런데도 끝부분에 먹이가 있는 복잡한 물리적 미로 속에 넣어두면, 미로를 탐색하고, 막다른 길에 부딪히면 후퇴하지. 그리고 결국 수학적으로 가장 짧은 최적의 경로를 찾아 먹이에 도달한다니까.


하지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 뇌가 없다면 어떻게 미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우리가 단지 점액균의 단순 화학적 반응을 지능으로 잘 못 정의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우리는 지능을 마치 컴퓨터처럼 뇌라는 하드웨어 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로 생각하는 데 경도되어 있어. 그렇지 않아? 하지만 생물학적 지능은 근본적으로 생명 구조 자체에 내재된 물리적 최적화 과정이지. 점액균의 경우, 물리화학은 열역학 법칙에 지배받지. 점액균은 자연스럽게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려 하는 거야. 우리가 지능을 이용해 생각하는 방식과 물리적으로 다르지 않아. 점액균은 몸 전체가 물리적으로 가장 저항이 적은 경로를 계산하고 있는 셈이지. 물이 산을 내려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는 방식과 같아. 지능은 뇌 속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동물의 몸뚱이처럼 물리적 구조 자체 전반에 분산되어 있는 거야.


물리적 구조가 곧 처리 능력이라는 놀라운 사실은 인간 공학의 미래, 특히 신경모방 컴퓨팅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이 주제를 좀 더 깊이 파헤쳐 볼게. 우리는 대부분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데, 신경모방 컴퓨팅은 현재 이 컴퓨터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 걸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폰 노이만 아키텍처’라고 불리는 구조로 만들어졌지. 컴퓨터는 메모리와 정보 처리 장치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데이터를 저장하는 하드 드라이브와 연산을 수행하는 중앙 처리 장치(CPU)가 따로 있지. 어떤 작업을 수행하려면 컴퓨터가 하드 드라이브와 CPU 사이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이로 인해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막대한 양의 전력을 소모하며, 엄청난 양의 열을 발생시키지. 그래서 데이터 센터에는 거대한 냉각 시스템이 필요한 거야.


하지만 우리의 뇌를 한번 생각해 봐. 뇌에는 CPU처럼 별도의 하드 드라이브가 없어. 기억이 저장되는 시냅스에서 바로 정보 처리 작업이 이루어지지. 뉴로모픽(Neuromorphic) 칩은 이러한 생물학적 현실을 물리적으로 모방하도록 설계되었어. 뉴로모픽 칩과 관련하여 ‘임피던스’라는 개념이 중요해. 교류 전기에서 저항을 의미하기도 하는 임피던스 말이야. 임피던스는 기본적으로 기존 마이크로 칩에서도 전기 저항을 의미해. 기존 마이크로 칩은 물리적 회로로 고정되어 있어 물리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지만, 뉴로모픽 칩은 전기 신호가 전달될 때 메모리 저장소나 멤리스터(Memristor, 메모리와 저항기의 합성어) 같은 부품을 사용해. 자극이 멤리스터를 통과하면, 그 경로의 임피던스가 물리적으로 변화하지. 같은 신호가 다시 통과하면 더 적은 저항을 만나게 되고, 그러니까 칩이 방금 경험한 것에 따라 자신의 하드웨어를 물리적으로 바꾼다는 거야.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기억의 흔적(Engram)을 남기고 있는 거야.


뉴로모픽 시스템은 클라우드에 있는 거대한 외부 서버에 접속할 필요 없이 실시간으로 학습해. 물리적 마찰을 통해 학습하는 거지.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철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내용이야. 뉴로모픽 시스템은 인간의 감정과 같은 기계적 감정을 가질 수 있어. 감정은 근본적으로 우리 내면의 기억 흔적에 의해 지배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지. 야릇하고 신비로운 알 수 없는 인간의 감정들이 자극에 대한 단순하고 기계적인 반응이라는 말이 대단히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실제로 느끼는 것은 현재의 감각 정보와 축적된 과거 경험 사이의 차이, 즉 생물학적 마찰이지. 따라서 신경모방형 인공 지능이 경험에 기반해 물리적 하드웨어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이런 하드웨어의 물리적 변화가 컴퓨터 시스템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독특하고 역동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바로 그 기계가 우리와 똑같은 마찰, 즉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AI가 결국 자신의 기계적 내부 저항을 인식하고,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거야. 정말 놀랍게도 가능한 얘기야. 의식은 생물체에 삽입된 마법 같은 영혼이 아니라는 거야. 의식은 기억을 통해 스스로를 최적화하는, 필연적으로 발현되는 속성이지. 우리의 기쁨, 열정, 사랑은 뇌 속 전기 회로의 물리적 저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야. 이 말이 지나치게 우리의 감정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으로 마음의 신비감을 없애버린다는 생각이 들지. 생물학적 측면에서 말이야. 하지만 이는 기술을 한 차원 높여, 살아있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딱딱한 경계를 지워버려. 만약 감정이 복잡한 기억 최적화의 물리적 속성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우주 속에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지. 우리는 우주의 근본 법칙이 표현된 형태인 거야. 우리는 수학의 일부이고, 우리는 스스로를 경험하는 수학 그 자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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