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표는 누구의 자산이 되었나

합리적 무지, 강남좌파, 그리고 민중가수의 연남동 건물

by 시간을 잊은 일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를 '로맨스 없는 시장'이라고 불렀다. 정치인도 기업가처럼 이윤을 극대화하는 존재이며, 그 이윤이란 표와 권력이라는 것이다. 낭만은 없다. 공익도 부차적이다. 오직 인센티브만이 행동을 설명한다.

이 냉혹한 관점을 한국 정치에 대입하면, 우리가 '신념'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합리적 무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유권자 개인이 복잡한 경제 정책을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은 크고, 내 한 표가 결과를 바꿀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니 공부하지 않는 것이 개인 차원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이다. 대신 그들은 감정에 반응한다. "우리는 약자 편이다"라는 슬로건이 정책 분석을 대체하고, 분노와 동질감이 판단력을 밀어낸다.

다주택자를 죄악시하고 '똘똘한 한 채'를 부추기는 정책을 생각해보자. 이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강남·서초·용산에 이미 '한 채'를 가진 사람들이다. 수요가 상급지로 집중되면 그들의 자산은 오르고, 중소형·외곽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한다. 서민의 유일한 자산이 마이너스 자산이 되는 구조다.

그런데 이 정책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것은 바로 그 서민들이다.

뷰캐넌이라면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정치 엘리트는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대중에게 '독이 든 성배'를 권했고, 다운스가 예측한 대로 대중은 그 독의 성분표를 읽지 않았다고.


토마 피케티는 현대 좌파 정당의 변질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그가 명명한 '브라만 좌파(Brahmin Left)'는 고학력·고소득 전문직이 좌파의 새로운 기반이 된 현상을 가리킨다. 노동자의 정당이 지식인과 자산가의 정당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것을 더 직관적으로 부르는 말이 있다. 강남좌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교하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도덕적 서사로 문화적 주도권을 잡고, 그 서사가 만들어내는 규제와 정책의 복잡성 속에서 자신들의 자산은 안전하게 배분해둔다. 정책의 부작용 — 집값 폭등, 물가 상승, 자영업자 몰락 — 은 서민이 감당하지만, 서사를 설계한 이들의 자산은 이미 방어적 포지션에 있다.

이들은 냉철하다. 위선적이되 유능하다. 문제는 그 위선의 연료가 되는 대중의 감정이다.


가수 안치환의 사례는 이 구조의 축소판이다.

그는 1980년대부터 민중가수로 활동하며 노동자와 민중의 고통을 노래했다. 대학가에서 그의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이들이 수없이 많다. 나도 연세대 시절 그 노래를 들었던 사람 중 하나다.

2016년, 안치환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3개 필지의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 4동을 올렸다. 매입가 52억 원, 대출 40여억 원. 그리고 이 건물은 아내와 20대 자녀의 공동명의로 등기되었다. 증여가 아니다. 애초에 취득 단계에서 가족을 공동매수자로 넣은 것이다. 증여세 이슈를 구조적으로 회피하는, 세무적으로 상당히 정교한 설계다.

이후 해당 부동산의 시세는 120억 원대로 올랐다. 별도 보유한 다른 건물에서도 20억 원의 시세 차익이 발생했다. 주차장에 불법 건축물을 세우고, 지하에 무허가 공연장을 설치해 구청의 시정 명령을 묵살한 것은 덤이다. 주민들은 그를 "막무가내 자본가"라고 불렀다.

민중의 고통을 노래해서 번 돈으로, 민중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부동산을 축적하고, 세법의 빈틈을 꿰뚫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했다. 그리고 그의 팬들은 여전히 그 노래를 부르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뷰캐넌은 이 현상을 예측했다. 정치적 엘리트는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다운스는 왜 대중이 속는지를 설명했다. 복잡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감정적 서사에 기대는 것이 개인에게는 합리적이다.

그리고 피케티는 데이터로 보여주었다. 좌파의 깃발 아래 가장 큰 이익을 거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깃발을 만든 사람들이었다고.

강남좌파는 위선자이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안다. 비난할 수는 있어도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다. 진짜 비극의 주인공은 자기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모른 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지지는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쓰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연남동 건물이 되었을 뿐이다.

당신의 지지는 지금 누구의 자산이 되고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대한민국 민주주의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