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 만세

by 시간을 잊은 일기

재석 165인, 찬성 164인, 반대 1인.

국민의힘 전원 퇴장. 필리버스터 24시간 만에 해제. 공소청법 가결.

78년간 존재해온 검찰청이 사라진다. 정청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썼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만세."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민주주의의 견제 장치를 해체하는 풍경이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 원칙만 놓고 보면 타당하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는 구조가 권력 비대화의 온상이었다는 비판은 진보도 보수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

이 법안을 설계한 주체가 누구인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쪽이 아니라, 행정부를 장악한 쪽이다. 공소청장 임명권은 법무부 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 인사청문회? 한국에서 청문회가 인사를 막은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자기 손에 들어올 권력에 자기가 족쇄를 채우는 입법은 정치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법안의 본질을 말해주는 가장 단순한 팩트다.


검찰의 권한을 분산한 것이 아니다.

검찰이 행정부를 견제하던 기능을 제거한 것이다.

분산과 제거는 전혀 다른 단어다. 그런데 "개혁"이라는 포장지가 그 차이를 감춘다. 중수청이 수사해도 공소청이 "기소 가치 없음"을 선언하면 수사는 무력화된다. 기소권이 곧 수사에 대한 거부권이 된다. 수사-기소 분리가 오히려 행정부에 두 개의 통제 레버를 모두 안긴 셈이다.

헝가리의 오르반이 사법기관을 재편한 경로, 폴란드의 PiS가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한 경로와 형식적으로 놀라울 만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은 이것을 "민주주의의 완성"이라 부른다는 것.


공소청은 퍼즐의 한 조각이다. 좌파 정책의 더 큰 그림을 보자.

부동산 규제를 강화한다. 다주택 과세, 농지 규제, 똘똘한 한 채로의 수요 집중. 결과는? 지방 자산가치 하락, 수도권 집중 가속. 서민층의 자산 기반이 무너진다.

자산 기반이 무너진 자리에 정부가 들어온다. 공공임대, 기본소득, 맞춤형 복지. 시민은 자유로운 주권자에서 복지의 수혜자로 위치가 바뀐다.

여기서 투표의 성격이 변한다. 우리의 한 표는 신념의 선택이 아니라 배급표 확보가 된다. 복지를 축소하겠다는 세력은 "생존의 위협"으로 간주된다. 복지를 확대한 포퓰리즘 세력에게 표가 돌아간다. 그리고 재집권한 세력은 더 과감하게 견제 기관을 해체할 것이다.

이 루프가 한 바퀴 돌면 정책이 된다. 두 바퀴 돌면 구조가 된다. 세 바퀴 돌면 체제가 된다.

그리고 이 연성독재 체제는 선거를 통해 작동한다. 쿠데타가 필요 없다.


가장 냉소적인 장면은 이것이다.

규제로 서민과 중산층의 자산 축적 경로를 막은 사람이 "탐욕스러운 다주택자로부터 서민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한다. 자산가치가 파괴된 피해자들이 "더 강력한 규제"를 요구한다. 자기를 아프게 한 처방을 더 달라고 요청하는 환자.

이것이 의도적 설계인가? 처음에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5년, 그리고 지금까지, 이 피드백 루프의 결과를 관찰할 시간은 충분했다.

버그를 발견하고도 패치하지 않으면 그건 피처(Feature)가 되는 것이다.


폴란드는 PiS의 사법 재편을 정권교체로 되돌렸다. 그러나 우리와는 두 가지가 달랐다.

첫째, EU라는 외부 견제 프레임이 있었다. 사법독립 기준 위반에 대한 제재 압력이 국내 여론을 환기했다. 한국에는 그런 프레임이 없다.

둘째, 폴란드 시민 다수가 "어느 정권이든 사법부는 독립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동의했다. 한국은 다르다. 우리 편이 이기면 좋은 것이고, 상대편이 하면 독재다. 정권이 바뀌면 포지션이 정확히 뒤집힌다.

민주주의를 "좋은 사람이 권력을 잡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회와, "누가 잡든 그 권력을 제한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사회는 같은 제도 아래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연성독재는 다수에게 불편하지 않다. 선거는 치러지고, 언론은 존재하고, SNS는 자유롭다. "뭐가 독재야?"라는 반응이 나온다. 맞다. 체감되지 않는다. 독재의 피해를 다수는 모른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아마 이 구조가 보이는 소수일 것이다.

보이는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구조 안에서 싸우거나, 구조 밖으로 나가거나. 싸우는 것은 숭고하지만 승산을 따져야 한다. 피해자들이 이 구조를 원하고 있을 때, 그 구조에 반대하는 사람은 구원자가 아니라 적폐세력이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다. 국가가 제공하는 시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자산 구조를 만드는 것. 특정 국가, 특정 통화, 특정 자산 유형에 종속되지 않는 포트폴리오. 이것은 단순한 재테크가 아니라, 독립된 개인으로 남기 위한 실존적 선택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의 설계도 위에서, 설계자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설계도를 읽는 것뿐이다.

그리고 읽었다면,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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