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을 못 가

by 기원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이던 2021년 10월에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스무 살의 신촌은 젊음 그 자체였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만큼 신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미사여구는 또 없으리라. 신촌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맥도날드 앞에서 뻘쭘하게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에뛰드 하우스 앞을 지날 때면 야외 스피커 너머로 외국어를 섞어가며 손님을 끌어모으는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다. 주말이 되어 거리에 차가 없어지면 목소리와 몸짓으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거렸다. 밤이 되면 갓 성인이 된 친구들이 취기에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져 있기도 하고, 사랑이 넘치는 버뮤다 삼각지대로 사라지는 그와 그녀들도 있었다. 나에게 신촌은 그런 곳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북적거림과 젊음의 패기로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서른 세 살이 된 올해,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신촌을 찾았다. 일년 반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했지만, 이렇게나 바뀌어 있을 줄은 몰랐다. 맛집에 데려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에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골목 어귀를 어슬렁 거려보았다. 그러나 고깃집 앞에서 우리가 보았던 건 낮술하는 인파들이 아니라 A4 용지에 크게 적힌 ‘임대’라는 메모가 전부였다. 거리에는 사람이 비어있었고, 당연하게 들을 수 있었던 일본어와 중국어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지구가 멸망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동네가 조용할 수 없었다.


대학생이라는 딱지를 벗은지도 어느덧 7년이 되었다.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이제는 지난날의 영광으로만 남기라는 말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나의 옛 젊음이 남아있는 공간만큼은 지금의 젊음들이 채워주길 바랬다. 그래야만 나도 가끔 기운을 받고 내 어린 날을 찬미할 수 있을 테니까. 허나 코로나라는 짐승이 할퀴고 간 흔적은 너무나도 잔혹했다. 공공위생과 자본주의의 법칙에 군림당할 수 밖에 없는 시대상이라지만, 그러기엔 신촌은 나에겐 단순한 대학가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진 공간이었다. 황량한 그 곳을 뒤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속상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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