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9시 32분, 여느 때와 같이 한산한 서울 도심 한복판을 주행하는 중이었다. 어느 교차로에 다다렀고 직진하려던 나는 신호에 막혀 정지선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전방으로는 차가 없었기에 나는 드넓은 교차로를 막힘없이 볼 수 있었다. 앞을 보면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서 하얀색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하얀색 물체는 나를 기준으로 1시 방향의 인도에서 튀어나와 내가 가야 할 건너편 차도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하얀색 물체는 작았고 줄이 달려있었으며 인도에서 사람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멀리서 보아서 확실하진 않았지만 털의 수북함이나 몸통과 팔다리의 길이로 보았을 때 견종은 푸들이나 요크셔테리어인 것 같았다.
하얀 강아지는 어찌나 날쌘지 순식간에 인도에서 교차로 중심부근까지 와버렸다. 순식간에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다. 일요일 늦은 밤이었지만 교통량이 결코 적지도 않았던 데다가 도로 폭이 좁아 서행하는 곳도 아니었다. 짙은 어둠이 내린 왕복 8차선 도로 위에 작은 물체를 육안으로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신호가 곧 바뀌려고 하고 있었고 나를 기준으로 좌우 차선의 통행이 재개될 것 같았다. 게다가 위험에 빠진 강아지를 구하겠다고 인도에서는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강아지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도무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교차로 중앙으로 다가가서 멀뚱멀뚱 주위를 쳐다볼 뿐이었다.
강아지가 교차로 중앙으로 나오는 순간 내 머릿속은 난잡해졌다. 강아지와 견주 간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내 옆과 뒤에도 차가 있었지만 운전자들이 이 상황을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좌우 차선에도 차는 있었지만 그곳의 운전자들이 과연 강아지를 발견했을는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었다. 곧 좌우 차선에서 직진을 시작할 것이기에 시간을 지체할수록 강아지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강아지가 차에 치이는 현장을 나와 동승자가 목격할지도 모른다.
내가 나서야 했다. 본능이 우선했기에 결심하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 든 생각은 '클락션을 울려야 하나?'였다. 그러나 이 조치법은 아주 빠르게 셀프 기각되었다. 소음은 강아지에게 특정해서 전달되지 않는 것이기에 과연 강아지가 이 소음에 어떻게 반응할지 미지수였다. 좌우차선에서 달릴 차와 오토바이들이 클락션에 놀라 2차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다.
다행인지 강아지는 내 차 바로 앞에 서있었다. 대안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는 지체 없이 전조등 레버를 딸깍딸깍 2회 당겼다. 상향등을 켜고 이를 켰다 끄기를 빠르게 반복한 것이다. 마치 도로에서 앞 차에게 신호를 전달할 때처럼 말이다. 빛은 정확히 강아지에게 닿았다. 강아지가 이 번쩍이는 불빛을 볼 수는 있겠으나 이 빛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였다. 신나서 이쪽으로 뛰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예상할 겨를은 없었다. 그저 내 바람이 LED 광을 통해 강아지의 뇌에 전달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는 내가 쏜 하이빔을 인지했고 '갑자기 뭐야?' 식의 표정으로 내 차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강아지랑 눈이 마주쳤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강아지는 거동을 멈춰서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않았다. 1초도 지나지 않아 교통 신호가 바뀌어 좌우 차선에서 차들이 직진하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여전히 교차로에 나와있었다. 왼쪽에서는 택시가, 오른쪽에서는 오토바이가 제법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강아지는 위협을 느꼈던 것 같다. 갑자기 달리더니 견주가 있는 인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일단 사고는 면했다. 택시와 오토바이 뒤의 차들은 서행하는 것을 보니 그들도 상황을 인지한 것 같았다. 강아지는 인도로 올라가긴 했다만 그 위에서도 한참 달리고 있어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강아지를 잡으려고 애썼다. 다시 차도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여전히 위험해 보였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결국 인도에 있는 누군가가 앞으로 낙법 치듯 철퍼덕 넘어지면서 강아지 목줄을 낚아채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강아지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녀석은 나를 태연하게 쳐다본 것 같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만약 그 후 사고가 나서 절망적인 일이 벌어졌다면 강아지가 살아생전 본 마지막 사람은 내가 되었을 것이고, 나 또한 강아지의 최후의 순간을 목도했을 것이다. 끔찍한 장면이 내 눈에 각인되며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테다. 그저 강아지가 무사히 살아줘서 참 다행이다. 강아지를 위해서도, 또 나와 동승자를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