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골똘히 고민해봐도 도저히 어느 한 곳을 쉬이 고를 수가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디지털로 현상된 기억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꺼내 사진첩 폴더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지난 여행지들을 다시 방문해 보았다. 어떤 여행지를 꼽아야 할까? 오로라란 우주적 황홀경을 안겨준 아이슬란드? 도시는 물론 사람들까지 따뜻했던 도시 퀘백? 아니면 압도적 스케일에 할 말을 잃었던 미국의 여행지들? 폴더를 여기저기 방황하며 추억여행을 하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2012 몽골 IT 봉사활동' 폴더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2012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다. 군대를 갓 제대하여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우리 4인방 중 누군가가 카톡방에 무심코 던진 카톡이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부터 취준생들의 기본 소양이 되버린 #공모전, #교육봉사, #해외여행 같은 타이틀을 얻고 싶어서 그리 노력했던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해외 교육봉사 공모전 준비라는 좋은 핑계를 대고 을지로에 모여 술이나 마시자고 의기투합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떨어진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하루만에 급하게 서류를 준비하고, 다시 하루만에 복장과 발표자료를 구비해서 면접을 보았다. 그렇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밤 12시에 울란바토르 공항을 등지고 안내등이라고는 달빛 밖에 없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험상궃게 생긴 아저씨와는 말도 안 통해, 덩치도 산 만해, 도망갈 다른 길도 없어... 그땐 정말이지 어디론가 끌려가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다. 숙소에 도착해 '앞으로 남은 29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걸까?'하는 생각을 하며 쓰러져 잠들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명색이 교육봉사였기 때문에 주된 업무는 물론 교육이었다. 하지만 청춘들은 항상 엇나가지 않던가. 우리는 틈 나는대로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물론 교육도 성실히 했다!) 그 당시에 우리들의 눈과 귀로 찍었던 B급 영화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날 것 그대로의 자연과 우리'라 명하고 싶다. 필름 속에는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몽골의 초원과 사회의 그을음이 묻어있지 않았던 방형, 임형, 최군, 그리고 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초원에서 말을 타고 어린아이 같이 좋아했던 순간과 게르에서 마유(馬乳) 요거트를 먹고 너무 비려 몰래 남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비 사막을 가로질러 태양의 성지에 누워 일출을 맞이했던 아침과 사막 위를 달리는 승합차 안에서 부르던 '서른 즈음에' 합창도 선명히 기억난다. 우리는 공룡 뼈를 보고 인디애나 존스라도 된 것 마냥 철없이 좋아했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우주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천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이제는 돈도 버니 원하면 휴가를 내고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심지어 이마트도 3호점까지 들어왔으니 더 이상은 초보 여행객에도 그리 어려운 행선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날 것 그대로의 자연과 어리숙했던 우리들은 더 이상 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어쩌면 이 폴더에서 멈춘 건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맞이할 수 없는 그 때의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마음 속에서 놔줄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