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크립션 Review
1년 전 슬더스로 덱빌딩 로그라이크에 입문한 나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새로운 덱 새로운 시너지 너무나 짜릿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슬더스 업적을 다 깨고 500시간 넘게 하다보니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극을 원했던 나는 '인스크립션' 이라는 덱빌딩 로그라이크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주위에서 진짜 재밌다고 몇 번 추천을 받았지만 그 때는 덱빌딩 로그라이크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미뤄두고만 있었는데 마침 스팀에서 세일을 하길래 바로 구매해버렸다 ㅎㅎ
게임을 시작하면 깜깜한 방에 눈 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와 테이블에 앉아 강제로 카드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남자는 카드게임의 규칙을 알려주고 게임 속의 적들을 직접 연기하면서 죽음의 카드게임을 즐긴다. 진짜 광기다 ㄷㄷ
체력이 0이 돼서 카드게임에서 죽는다면 방에서 쫒겨나 카드에 박제?되고 죽은 뒤 새로운 도전자로 깨어나 다시 게임을 시작한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다 보면 게임 속의 카드나 방 안의 오브젝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검은 방의 비밀이 조금씩 풀린다...! 과연 저 남자의 정체는?!$!*
인스크립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자연스러운 튜토리얼이었다. 게임 개발자에게 가장 어려운 걸 하나 고르라하면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튜토리얼이다.
튜토리얼을 구구절절 텍스트로 줄줄이 늘어트린다면 유저는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도 전에 벌써 질릴 것이고 그렇다고 튜토리얼을 간략히 줄이자니 유저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른다;;
거기에 카드게임이나 시뮬레이션류 게임처럼 룰이 복잡한 게임일수록 유저에게 게임의 룰을 익히도록 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인스크립션은 복잡한 카드 덱빌딩 로그라이트 게임임에도 그 어려운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한가지 예시를 보자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정체불명의 남자가 친구가 보드게임 룰을 알려주듯이 가장 기본적인 룰을 알려주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마다 알려준다.
한 두번 죽고 기본적인 룰에 슬슬 익숙해질 때쯤 게임 속 카드와 오브젝트들이 말을 걸어오고 그 말을 따라 방을 둘러보면 특이한 금고가 있다.
카드게임과 비슷하게 생긴 자물쇠가 있는데 기본적인 룰을 안다면 쉽게 풀 수 있다. 금고를 열면 새로운 카드가 있는데 남자는 좋은 카드를 얻었다며 새 카드를 덱에 넣어준다. 그렇게 유저는 새로운 카드를 써보면서 카드의 기능을 학습하고 이전 회차와 다른 플레이를 하게 된다.
게임개발자로서 정말 감탄이 나오는 지경의 게임디자인이었다. 사실 유저의 숙련도에 따라 새 카드를 푸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즐겨했던 슬더스에서도 어느정도 경험치를 채우면 그에 맞춰 새로운 카드가 해금된다. 하지만 인스크립션에서는 이 작업을 게임 속 스토리에 완전히 녹여버렸다. 거기에다가 플레이어가 지금까지의 룰을 확실히 이해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단언컨대 내가 지금까지 플레이 해본 게임들 중 가장 인상깊은 튜토리얼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스크립션임에도 난 30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슬더스는 500시간
(지금부터는 살짝의 스포가 있습니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소개한 부분은 1막이다. 인스크립션은 1막 2막 3막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챕터가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후기와 메타크리틱 점수를 보면 1막 2막 3막 별로 평가가 다른데 대체적으로 1막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2막 3막은 호불호가 정말 많이 갈린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갑자기 바뀌는 그래픽과 메타픽션 요소를 주로 꼽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학습량이다.
1막에서는 위에서 내가 설명한 것과 같이 짜임새있게 유저의 숙련도에 따라 새 카드를 1장 1장씩 유저에게 학습시켰다.
그러다 갑자기 2막으로 오니 새로운 카드가 지금까지 배웠던 카드의 3배나 있고 이 많은 카드들을 충분히 익힐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바로 보스들을 상대하라니 카드게임을 좋아하는 나도 너무 버거웠다; 교수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
게임엔딩을 다 본 나도 2막부터 본 카드들의 컨셉들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냥 보스들이 생각보다 엄청 약해서 어쩌다 이겼을 뿐이다;;
<식물 vs 좀비>의 게임디자이너 조지 팬에 따르면 플레이어의 학습의지는 시간투자와 함께 커진다고 한다.
게임을 오래 하면 할수록 게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학습의지를 넘어설 만큼 너무 많은 학습량을 쏟아내면 유저는 지루하다고 학술적인 걸 꾸역꾸역 하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유저가 게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며 학습의지가 커지는 것에 맞춰 학습량을 조절해야 한다.
반면 인스크립션의 경우에는 1막까지는 조금씩 늘어나는 학습의지에 맞춰 카드 한 장씩의 학습량을 주었지만 2막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학습량이 3배로 늘었고 너무 많아진 학습량에 유저는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결론!
인스크립션의 1막이 갓겜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공포스러운 연출, 재밌는 카드게임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유저의 숙련도에 따라 적절히 올라가는 학습량과 그 과정을 완벽하게 녹인 게임디자인을 꼽고 싶다. 반대로 2막, 3막이 호불호가 심한 이유도 반대로 학습량이 너무 많아진 것에 비해 유저의 숙련도가 못 따라간 것 같다. 1막을 너무 잘 만들어서 지친 나머지 2막, 3막 대충 만든 느낌이다 만약 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스크립션? 1막 자신있게 추천한다!! 2막, 3막은... 나도 잘 모르겠다 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