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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Mar 05. 2017

청년 농부, 그 새로운 시작

필요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호탄을 던졌다. 



지난해 3월을 시작으로 서른살이었던 나는 꽃농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무언가 대단한걸 하기 위함은 아니었고, 지쳐버린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함에서 시작한 것인데 생각해보니 모든 직장인들은 이정도의 스트는 모두가 받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영혼만이 아니라 그들 또한 달래리- 


그렇게 시작한게 바로 프로젝트M 이다.




프로젝트M 의 시작.

- 필요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느낌이지만 사실은 타이틀을 멋지게 붙여본 것. 누가 본업 마케팅 아니랠까봐 괜히 멋 좀 부려보고 싶었다. 내 인생 프로젝트로 시작한 프로젝트M은 '모두가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는 것을 버리자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세상이 트랜드가 되었고, 그렇지만 버려지는 것들이 모두에게 필요 없는 존재는 아니다. 단지 그 순간, 그 상황에서 그에게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 필요 없는 상황이 있을지라도 그 존재 자체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가치로 재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시애틀은 green city (환경을 생각하는 도시) 로 잘 알려져있다. 그곳에서 20대를 보낸터인지 나는 유독 분리수거 등 live green 에 민감하다. 이 오일 드럼통들은 우리는 흔히 폐품이라고 말한다. 우리 농장에도 이 폐품들을 재활용해 근사한 화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오일 드럼통이 그저 폐품에 지나치지 않지만, 나에게는 테이블을 세워줄 멋진 기둥이 되고, 또 커다랗게 자란 관엽식물의 빈티지 화분이 된다. 


그 어느것도 가치없는 것은 없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일도 못하는게' 혹은 '대체 할줄아는게 뭐니?' 등 온갖 나쁜 소리가 난무한다. 나 또한 오랜 직장생활 중 이 소리를 못들어본 것이 아니다. 더 심하게는 '잘라버리겠다' 라는 소리도 듣지만, 그 자리에서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매니저의 위치가 되고나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싫거나 얄미운 친구가 당연히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집에서는 사랑받고 자랐을 것이고, 또 내 밑에 자리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는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친구일 수도 있다. 생각을 바꾸고 난 뒤로는 쉽게 화내지 않았다. 기회를 한번, 두번 더 주려고 생각했고, 정말 안되는 순간에도 짜증은 내더라도 화를 내진 않았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마케터로 일하면서 수많은 대행사들을 만나왔지만, 일을 내 마음에 들게 하지 않더라도 그냥 슬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더 어린 시절엔 씩씩- 거리며 화를 내곤 했는데 상대방에게 굉장히 무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화를 내봐야 함께 기분이 나쁜일 말고는 없을 것 같았기에 다같이 좋기 위해선 가끔 침묵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우리는 간혹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그치만 그렇지 않다. 무엇 하나 함부로 여길 것이 없다. 




M크루 모집.

- 주변에 참 좋은 사람이 많았다.


지금의 농장에서 새로운 정원을 만나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약 2달 남짓. 농사에는 겨울이라는 방학이 존재해 조금 시간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새 환경을 가꾸려면 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제법 마음이 급해졌다. 내 주위사람들 중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야만 했다. 


하우스 건축 - 큰 변여사 (a.k.a 우리엄마)

나름의 건축 경력이 있다. 지난 하우스를 지을 때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집을 두채나 지어봐서 제법 지식이 탄탄하게 있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큰 변여사를 structure 스트럭처 팀 팀장으로 앉혀주었다. 새로운 하우스를 짓는데 있어서 총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조금 더하면 복잡한 서류 업무들도 담당해야한다. 가령, 동사무소에 가야할 일이 있다면 이런 복잡한 일은 엄마 차지다. 


가드닝 - 작은 변여사 (a.k.a 우리이모)

아주 프로 수준이다. 꽃 피우는데는 선수다. 작년에 지은 꽃농사들이 잘 되어 씨를 잘 받아두었고 구근들도 모두 심어두어 가꾸고 있다. 우리 농장에는 유럽 야생화들이 많은데 이모는 이 유럽 꽃들을 키우는데 제법 선수가 다 되었다. 게다가 네덜란드로 출장을 자주 가시는 이모부 덕분에 새로운 구근들에 대한 든든한 빽(?) 이 있어 홈가드닝 팀 팀장으로 앉혀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허브류를 잘 심어준다. 무조건 함께한다.



재밌는 건, 물론 둘다 팀원이 없다는 것.

어쩔 수 없다. 우린 아주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꿈꾸는 농부들이니까.



그렇다면, 나의 역할은? 


인사와 마케팅 담당 - 나

두가지를 담당하고 있다. 일단은 우리 하우스를 짓고 나면 컨셉과 인테리어를 잡아줄 누군가를 찾는 것, 패키징과 로고를 책임져줄 디자이너를 찾는 것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로 했다. (물론 그들과 현재는 함께 하고 있고 차차 이야기할 예정) 뿐만 아니라, 본업에서의 나는 새로운 컨텐츠에 대한 연구를 늘 해왔기 때문에 분명 '자연' 에 대한 궁금증을 재밌게 풀어나갈 컨텐츠 제작은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화려한 옥외광고나 디지털 광고가 아니라, 쉽고 재밌게 재해석된 자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할 예정이다. 조금 멀리보면, 식물도감 하나쯤은 만들어보고 싶은 작은 욕심도 있다. 





프로젝트의 포문을 열다.

- 부천시 농업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렇다. 또 일을 내고 만 것이다. 예전에는 목동 야시장에 뽑혀 투잡을 하며 죽자살자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더운 여름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번엔 부천시 농업인이다. 아이디어는 친구들로부터 얻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 친구들은 키즈카페가 말고는 아이들과 함께 가야할 곳이 없다고 했다. 흙을 밟는것은 어떠냐니 너무 좋지만 체험농장들은 멀리가거나 주변에 없어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 마침 우리 농장은 목동과 부천 사이에 위치한 농장이고, 이것이다 싶어 부천시 체험농장 지원에 도전해보았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우리는 행복해했다.



사실 좋았던 것보다도 부담이 조금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와야하는 공간을 어떻게 어른들의 공간과 잘 조화를 이룰까를 고민해봤고, 이것을 위해 수많은 카페들과 하우스들을 지난 두달간 연구해왔던 것 같다. 게다가 본업이 마케터인지라 (마케터들이 욕심이 제법 있는 편이라서) '남들과는 다른 체험농장' 을 그려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생각의 반쯤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따뜻한 봄 4월이 오면 우리 체험농장은 문을 열게 된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지난 3개월 넘는 겨울방학동안 참 많은 고민을 했고, 봄을 바라보며 그 꿈을 이뤄보기로 또 일(?)을 내고 말았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하는 무모한 생각에서 시작된 도전. 단순한 생각이지만 가장 어려운 그 것. 


그래도 나는 올 4월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before) 오늘 자 농장의 모습

해가 지는 모습은 여전히 예술이다.



* 지난 3개월 전부터 연구해온 청년농부의 길, 직장인의 투잡의 모습을 브런치에서 그려나갈 예정입니다. 4월에 열릴 농장의 앞으로의 3개월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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