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그린하우스를 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너는 체력이 대단한 것 같아.
최근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인데, 사실 나는 체력이 아주 많이 약하다. 본의아니게 태생적으로 나름(?) 약하게 태어난지로 조금만 피곤해도 쉽게 피로를 느껴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할정도다. 그런 나에게도 이렇게 평일 주말 가리지않고 달릴 힘이 있다는것에 새삼 놀라곤 한다. 그래도 내가 그린 꿈이 있으니, 달릴 수 있나보다.
그런데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나는 비닐하우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 대부분 농부 선배님들의 연배가 있으신 편이다보니 블로그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몇몇 정보만 확인 가능했다.
첫 시작부터 막막해 일찍이 멈춰섰다. 다른 건 둘째치고 하우스도 못 짓는 농부라니...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결국 우리 동네 대장인 터줏대감 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알아봐주는 나름의 혜택으로 엄마를 팀장으로 시켜주었다. 물론 내 마음속의 팀장으로 말이다. 엄마는 금새 부천시의 도움을 받아 먼저 체험농장을 운영하신 농장 주를 찾아내었고, 터줏대감답게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었드랬다.
아저씨의 하우스는 내가 꿈에 그리던 하우스였다. 단동 (여러 하우스가 아니라 딱 하나의 하우스) 인데다가 천장이 높아 탁 트이는 느낌이 웅장할 지경이었다. 아저씨의 조언은 달콤했다. 아저씨 말씀으로는, 온실을 짓는게 당연히 예쁘고 좋겠지만 초기 자본이 적은 상황에서 농부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충분히 비닐하우스로도 가능하고, 아저씨의 하얀 비닐이 아닌 투명 비닐로 한다면야 온실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앞면은 아스테이지 (우리가 아는 아스테이지보다는 두꺼운듯 했다) 재질로 한다면 더더욱 온실 같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꿈꿔왔던 이 모습이 비닐하우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두근 거려왔다. 진짜 되는건가.
꿈이야 생시야.
아저씨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내게 남겨주었다. 블랙 하우스를 짓는것도 좋지만, 녹슬지 않으려면 도장을 해야하는데 그럴려면 비용이 아주 많이 들 것이라는 것. 가장 본질 그대로의 하우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도장을 피하라고 하셨다. 나는 현실적으로 온실 카페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니, 이처럼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시금 집어주신거다.
아저씨는 하우스만 몇억은 쓰신 분이다. 농장 생황을 평생 해오셨기 때문에 대선배의 조언은 주옥 같았다.
키다리 아저씨 같던 대선배 농부로부터 비닐하우스 시공하는 또 다른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제부턴 실무였다.
위에는 런던에 있는 피터솀 (Petersham Nurseries) 라는 농장 카페인데, 연동하우스의 좋은 예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알고보니 온실이었다는 것. 온실의 기본은 유리인지라 일단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에도 피터솀을 모티브로 한 온실카페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단동으로 짓는 건 어떨까요?
아저씬 반대. 지금의 상황에서는 자본금이 크지 않기 때문에 비추라고 했다. 이유는 즉슨, 단동으로 높게 지으면 차양막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게 설치해야하는데 천장이 높아 전동으로 설치해야한다고 한다. 이는 설치비만 해도 인건비만 받는다쳐도 꽤 큰 돈인데다가, 겨울, 여름에 냉온방비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비닐하우스를 연동으로 짓는 건 어떨까요?
아저씬 동의. 하지만 연동으로 지으려면 지금의 비닐하우스는 철거해야한다. 그러나 이는 가족의 반대로 이어졌다. 지금의 하우스를 유지하고 싶다는 것. 일단 철거비와 새로 짓는비를 더한다면, 지금의 하우스+뉴하우스를 짓는 것보다 비용이 더 나갔다. 최대 투자자인 엄마와 이모의 반대가 있으니 탈락.
결론은 지금의 하우스+ 뉴 하우스 이렇게 두동으로 나누어 가기로 했다. 지금의 하우스는 체험장으로, 새로은 하우스는 우리가 그린 그림. 쉼터로 꾸며가기로 했다. 물론 내 투잡의 메인 오피스가 될만한 곳이기도 했다.
나름의 유학생활에, IT 마케터로 살아온지 어느 덧 7년. 나는 내가 하우스를 지을거란 걸 꿈에도 몰랐다. (물론 농부를 투잡으로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짓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지난날 오래도록 한결같았던 할머니가 물려주신 땅에는 포크레인이 들어왔다. 할머니에게 더 나은 곳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겠다 마음의 다짐을 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에선 만나기 쉽지 않은 유럽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곳이었다. 올해는 하우스를 짓게 되어 모두 꽃을 옮겨 심어주었다. 물론 투잡임을 핑계로 나는 회사에 나가 있어 홈가드닝 담당인 이모와 스트럭처 담당인 엄마가 현장을 지켰다.
기존 하우스보다는 더 높게 짓기로 했다. 여기선 내 입김이 작용했다. 기존의 하우스는 높이가 낮은편인데, 대체로 상추 등 기본 채소들을 심을 때 많이 사용하는 높이라고 했다. 비닐하우스 아저씨께서는 조금 더 높이는 건 문제 없고 태풍과 겨울 눈에도 강한 정도의 높이로 유지하자고 하셨다. 높이를 3.5m 정도로 확정지었다.
기존에 있던 오두막의 위치를 옮겼다. 새로 지어지는 오두막은, 어린이들이 체험을 왔을 때 식사도 하고, 주말에는 어른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될 것이다. 기존의 오두막보다는 조금 더 넓혀주었다.
이모가 꿈꿔온 작은 꽃밭도 있다. 여긴 제법 특별한 유럽꽃들이 대부분 자리 잡을 건데, 어린이들이 체험을 오면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꽃밭을 만들고 싶다 했다. 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꽃이 피지 않은걸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려고 한다.
현재는 파사드를 고민하고 있다. M크루 중 새로운 분이신데, 사실은 디자인비와 설계비를 포기하시면서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계신다.
이유는 이랬다. 비용을 고려해보니 생각보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기존의 하우스처럼 하우스만 두 동 덩그러니 있는 것은 싫었다. 이 고민을 털어놓고 보니 디자이너분께서는 파사드를 권유해주셨다. 두 동이 한 동인것처럼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데, 여러 레퍼런스를 보여주셨고, 나는 비용과 마음이 둘다 맞는 것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미 있는 여러 온실카페들과는 달랐으면 했고, 농장의 본질 그리고 흙바닥까지의 느낌을 모두 살렸으면 했다. 디자인비와 설계비도 안드리는 마당에 바라는건 엄청 많아 죄송하다를 백번은 말한 듯 하지만 우리의 의리파 디자이너님은 단 한번도 귀찮아하시지 않아했다. 주변에 참 도움을 많이 받아 감사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흙바닥에 파사드를 세울 수 있을까?
디자이너님은 가능. 하지만 흙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는 각재라는 것을 추천해보았지만, 각재는 목재보다 얇아 이번 시공의 경우 목재가 더 낫다고 한다. 물론 철제가 가장 좋겠지만, 현재 비용에선 철제는 불가능인 상황.
디자이너님은 나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에 따라 맞춤형 제안을 해주시기 시작했다. 한정적인 예산에서 큰 투자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욕심을 내지 말라셨다. 하지만 확장 등의 상황을 고려해 나중에 시공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모네만의 특징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하우스 특성 상 생길 수 있는 태풍이나 겨울 눈에 대한 고려도 모두 함께 하였다.
지난 몇개월을 잠도 못자고 달려왔다. 직장인 취미에서 투잡으로 옮겨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화려한 오프닝도 아니고, 작지만 행복한 공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그 시작을 밟았다. 농부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대선배들의 조언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올 봄, 정말 내가 그린 그린하우스가 완성된다.
모네정원이 새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