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

아이고, 너란 나라 왜 이렇게 가기가 힘드니

by TOMO

드디어 됐다! 개발자로서 언제나 꿈꿔왔던 회사에 가기로 결정된 날, 너무도 기뻐 뭘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직이 결정된 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입사일을 정하는 것. 입사일을 당겨 일을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입사일을 조금이라도 늦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은 욕망도 컸다. 서버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과 멀리 훌쩍 떠나 그동안 고생했던 나에게 보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치열하게 다투는 순간, 반드시 한국을 잠시 동안 떠나야만 할 일이 생겼다.


대학생일 때부터 그랬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택한 도피책은 여행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는 여행만 한 것이 없었다. (한편으로 비겁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새로운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관계에서 오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멋진 사진을 찍으면서 오는 성취감을 느끼며 삶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었기에 어느덧 여행은 나에게 마약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택한 곳은 미지의 세계, 부탄이었다. 사실 이미 많은 한국인들은 부탄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늪에 빠져 돈 벌기 바쁘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알려져 있으니 호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부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은데, 부탄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적기도 하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널리 알려진 명소들이 없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비용과 자유가 없는 일정"이다.


나 또한 막연하게 부탄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부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나라에 대해 알아갈수록 느낀 것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여행 준비를 하기 전 우선 널리 알려진 영문 가이드북을 펼쳐본다. 'Before your trip'이라는 부분을 읽어보니, 다른 나라 가이드북과 달리 여행사 사이트들이 주르륵 뜬다. 믿을만한 여행사들을 알려주면서 "부탄은 여행사를 통해 통제된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행사에 문의해 자신들의 일정을 잘 세워보라고 말한다. 결국 내가 아무리 일정을 혼자 짜더라도 여행사들의 최종 허가를 받지 않으면 그 일정대로 여행을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스크린샷 2018-03-14 오후 7.41.37.png 부탄 여행 일정

여기까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자기들만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자세는 존중해 줄만 했으니까. 하지만 부탄 정부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루 체류 비용 $230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요구했던 것. 그리고 혼자 또는 두 명이서 떠나는 사람들에겐 추가 비용을 또 받는다. (혼자 떠나면 1박당 $40) 가이드비, 식비, 숙박비, 교통비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는 비용이라지만,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자 발급비($45)는 또 따로 받네? 어휴... 드는 비용만 해도 한 숨만 나오는 이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맞나 고민하게 된다.


스크린샷 2018-03-14 오후 8.19.42.png 내가 선택한 여행사 Bhutan Journeys에서 요구한 여행비용


그리고 부탄에서 입국하는 방법조차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 부탄 정부가 운항을 허락한 항공사는 딱 두 회사, Bhutan Airlines, Druk Air 둘 모두 자국 항공사다. 부탄은 작은 규모의 나라답게 두 항공사 모두 부탄 외 다른 나라에 취항한 도시도 극히 제한적이다. 네팔 카트만두, 인도 캘커타, 태국 방콕, 싱가포르 등 인접국 외엔 이 항공기들을 탈 방법조차 없다. 결국 한국인들이라면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 도시에 도착한 뒤, 부탄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용은 그렇다 치고, 환승시간이랑 탑승시간이랑 합치면 그동안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더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덤.

스크린샷 2018-03-14 오후 7.40.41.png Druk Air 항공 일정표. 살인적인 가격과 좋지 않은 시간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부탄 여행 일정을 짜면서 "아 이렇게 해서라도 부탄에 가야 돼?"라는 질문이 몇 번씩이고 머릿속에서 맴돈다. 사실 여행사에서 알아서 일정을 짜주기 때문에 실제로 생각한 건 엄청난 여행 경비와 드는 시간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부탄 여행을 결정하게 된 건, 부탄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바로 10월이었고 이때가 아니면 절대 다시 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개발자라면 전혀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나라에서 얼마간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좋아, 가자!"라는 결정을 내리고 만난 마지막 장애물은 바로 해외 송금이었다.


부탄 정부는 해외 여행자들의 만족도를 보장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 지불하게 되는 경비를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다가 여행 일정이 끝난 뒤에야 여행사에 돈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 중 30%는 부탄 정부가 가지고 가고, 나머지 70%만 여행사가 들고 가기 때문에 호텔비, 식비 등을 제하고 나면 여행사는 남는 게 별로 없다. 부탄 정부는 여행으로 벌어들인 돈을 부탄 국민들이 교육비, 의료비에 대한 걱정 없이 살게 해주기 때문에 국민들의 행복도는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연? 어쨌든 나에게 중요한 건 부탄 정부에 어떻게든 송금을 해야 된다는 거였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져봤다. 부탄 정부가 사용하는 은행은 Standard Chartard New York 지사였는데, 수수료가 덜 드려면 해당 은행 계좌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난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주거래 은행을 이용해서 보냈다. 큰돈을 송금하고 나니 이게 제대로 보내진 건가라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여행사 매니저였던 소남 트로펠에게 입금이 확인되었고 비자가 발급되었다는 메일을 받은 순간, 부탄으로 떠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걸 느꼈다.

스크린샷 2018-03-14 오후 7.42.04.png 부탄 비자. 메일로 프린트해서 가면 된다.

기대 반 걱정 반. 불교의 왕국 부탄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부탄은 과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맞을까. 이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 방콕을 거쳐 부탄의 관문 파로(Paro)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 부탄으로 향했다. 히말라야 산맥이 눈에 보이는 순간 미지의 왕국 부탄에 드디어 발을 내딛게 되었다.

IMG_0056.JPG 눈에 보이는 산 건너편으로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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