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길

파로, 아니 부탄의 상징 타이거 네스트 (Tiger Nest)

by TOMO
아침 산책

해외여행을 떠나면 반드시 해야만 성이 풀리는 것들이 있다. 나에겐 아침 산책이 그중 하나인데, 아침 산책을 하면 어느 나라를 가든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시장이나 공원이다. 시장에 가면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서 한국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는지 비교해보고, 상인들이 파는 물건이나 음식을 보면서 현지인들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다. 그뿐인가. 외국인인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과 왁자지껄한 시장의 분위기 속에서 시끄러운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아, 내가 진짜 이 나라에 와 있구나'라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시장을 들리고 나면 으레 가는 곳은 공원이다. 공원은 의외로 한 나라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중국에 가면 태극권을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일본에선 조그맣게 꾸며진 정원을 찾을 수 있으며, 태국에선 아침마다 스님들이 탁발(托鉢)하러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탄의 아침 산책 중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지만, 생동감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그럼 부탄에서는? 부탄에서는 밖에 나가 걸어 다닐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부탄에선 항상 가이드인 따시가 곁에 있어야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편견이 있었고, 호텔이 시내와 동떨어진 언덕에 위치해 있어 부탄 사람들의 일상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적으니 시장이 반드시 이른 아침에 열릴 필요도 없다. (애초에 시장 규모도 크지 않아 볼거리가 없다. 수도인 팀푸를 제외하면.) 그럼 공원을 보러 산책을 나가볼까. 그런데 사람들이 공원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큰 도시 속에서 깨끗한 공기와 자연을 느끼고 싶어 만드는 게 공원인데, 마을 자체가 거대한 자연인 이 나라에서 공원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다. 결국 아침 산책을 나가봤자, 파상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을 두세 번 더 보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부탄 여행 세 번째 날에 아침 산책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침 산책을 떠난 이유는 당연하다.

"밤에 할 게 없으니 일찍 잘 수밖에 없고,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도 아침 산책 중 만나는 도로 표지판과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아침 산책에 의미를 더한다.

부탄의 도로는 대부분 산을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급커브길이 많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부탄의 국도 곳곳에 수많은 명언들이 운전하는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도로에서 안전은 집에서 차 한잔" (Safe Tea = Safety)

"산은 천천히 운전할 때 즐길 수 있다" (Pleasure, Leisure 유사 발음을 활용한 언어유희)

재미있는 문구를 읽으며 산책을 하니 다른 나라에서 즐기는 아침 산책과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가이드의 통제 없이 이곳저곳의 숨겨진 풍경들을 감상하는 것이 마치 어릴 적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기도 했다. 따시에겐 미안하지만 부탄에서의 아침 산책은 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내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날 이후 매일 아침 호텔을 빠져나와 걷기로 결심했다.

호랑이 굴, 탁상 사원 (Taktsang Goemba)

부탄을 안내하는 여행책자 표지에 항상 등장하는 사원이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지어진 황금 지붕으로 덮인 사원. 부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사원으로 알려진 곳. 수많은 전설들을 가지고 있으며 부탄 국민들의 성지인 이 곳. 바로 호랑이 굴(Tiger's Nest)로 불리는 탁상 굄바(Taktsang Goemba)다.

탁상 굄바 등산로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노점

따시는 탁상 사원으로 가기 위해선 파로 계곡을 따라 30분 정도 운전해야 하고, 차에서 내린 뒤에도 1시간 반 동안 등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날 날씨가 안 좋아 산행길이 즐겁지 않을 수 있으니 나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주차장에 도달하니 탁상 사원이 새겨진 마그넷, 각종 불교용품과 골동품들을 파는 노점이 보인다. 기념품은 수도인 팀푸에 가서 사기로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보기만 하고 빠르게 지나치니, 수많은 말들이 숲 속에서 여행객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말 타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따시를 바라봤지만, 그는 무심하게도 말들의 배설물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걸어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말 타고 올라가려면 650Nu(뉼트람, 대략 12,000원)을 따로 내야 하며 걸어가는 것보다 시간이 배로는 걸린다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말을 타고 편안하게 산중턱까지 이동할 수 있다.

말을 타는 대신 따시와 나는 다른 여행객들보다 빠르게 탁상 사원에 도달해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기로 결심한다. 등산을 하며 만난 여행객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을 오른다. 원래 한 시간이 걸릴 거리를 45분 만에 주파해 도달한 곳은 해발 2940m에 위치한 카페테리아다. 탁상 사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점심을 먹기도 하지만, 카페테리아의 가장 큰 보물은 눈 앞에 펼쳐진 탁상 사원의 경이로운 풍경이다. 깎아지른 절벽 한가운데 위치한 탁상 사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바로 카페테리아 앞 전망대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주왕산을 연상시키는 절벽을 따라 세워진 사원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저런 곳에 사원을 지을 생각을 한 부탄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절벽 위에 세워진 호랑이 사원, 탁상 굄바 (Taktsang Goemba)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탁상 사원에 다녀온 후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전망대에서 봤을 때는 저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갈까 신기했는데, 절벽을 따라 수많은 계단들이 세워져 있었고 계단을 따라 걸어가니 멀리서 보이던 탁상 사원이 나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탁상사원이 눈 앞에 펼쳐지니 부탄 건축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와 닿는다. 꼭대기부터 흘러내리는 폭포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탁상 사원 검문소가 나온다. 탁상 사원은 부탄의 성지 중 성지라 휴대폰, 카메라를 비롯한 모든 짐들을 보관하고 입장해야 한다. 따시가 내 짐을 맡기고 여행허가증을 제출하는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탁상 사원의 문이 열린다.


정문을 들어가면 신성한 돌이 나오는데, 따시는 나에게 눈을 감고 엄지손가락으로 돌 한가운데 구멍을 짚어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 Karma)을 테스트하는 거라나. 손쉽게 테스트를 통과하고 나니, 따시는 나에게 불교 신자가 되는 걸 추천해주며 사원의 내부를 보여준다.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가 세 달 동안 명상했다는 동굴인 둡캉(Dubkhang), 구루 린포체의 여덟 형태 중 하나인 페마 중미(Pema Jungme) 상이 있는 구루 숭존마 사원(Guru Sungjonma Lhakhang), 드롤레 사원(Drole Lhakhang), 17세기에 사원을 지은 곌시 텐진 랍게이(Gyelse Tenzin Rabgay)가 봉안된 구루 첸지 하캉(Guru Tsengye Lhakhang)을 차례로 들린 후, 구루가 명상하는 동안 구루를 태운 호랑이가 머물렀던 굴(Tiger's Nest)을 보여준다. 사원 내부에는 호랑이를 타고 괴수인 싱게이 삼드룹(Singey Samdrup)을 물리친 돌지 드롤로(Dorje Drolo, 구루 린포체의 여덟 가지 형태 중 하나)를 기리는 그림이 수많이 그려져 있어, 부탄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보다 두 번째 부처라 불리는 구루를 더욱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부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인 탕통 걀포(Thangtong Gyalpo)샵드룽 나왕 남걀(Zhabdrung Ngawang Namgyal)도 이 곳을 방문한 걸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부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찾는 성지로 꼽힌다.

가까워질수록 탄성이 나오는 탁상 굄바
부탄 건국의 아버지, 샵드룩 나왕 남걀(Zhabdrung Ngawang Namgyal)
부탄 여행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03 - 샵드룩 나왕 남걀 (Zhabdrung Ngawang Namgyal)

샵드룩 나왕 남걀(1594-1651)은 티베트에서 태어나 1616년에 부탄을 건국한 사람이다. 하얀 수염과 드룩 카규(Druk Kagyu, 티벳 불교의 한 종파)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탄의 불교 사원에서 구루 린포체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로,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티벳의 랄룽(Ralung)에서 페마 칼포(Pema Karpo)가 환생한 인물이 샵드룩이다. 샵드룩은 23세가 되던 1616년에 수호신인 예세 괸포(Yeshe Goenpo)의 계시로 부탄으로 내려와 라야, 가사, 팀푸 지방을 여행하며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서부 부탄에서 세력을 키운 그는 팀푸 주변에 심토카 종(Simtokha Dzong)을 건설하여, 요새 내에 행정국과 불교국이 있는 현재의 종(Dzong) 형태를 완성하게 된다. 그의 세력이 커지는 걸 견제하기 위해 라마 팔덴(Lama Palden) 휘하 다섯 명의 라마(Lama, 영주)가 연합하여 1629년에 심토카 종을 공격하지만 샵드룩은 심토카 종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그는 이후 이어진 라마들의 세력이 인접국인 티벳과 연합하여 수많은 공격을 받지만 이를 잘 방어하고, 결국 티베트로부터 부탄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현재 파로를 비롯한 부탄의 서부 지역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샵드룩은 부탄을 통치하면서 인접국인 네팔과 인도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현재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남아있는 푸나카 종(Punakha Dzong)을 건설한다. 이슬람교나 기독교에서 종파 간의 싸움이 일어나듯이, 당시 샵드룩이 이끌던 닝마파(Nyingmapa) 종파가 커지는 걸 견제하기 위해 1644년 티벳의 달라이 라마가 주도하는 게룽파(Gelungpa) 종파가 중심이 된 몽골-티벳 연합군이 부탄을 다시 한 번 침략하게 된다. 보기 좋게 이들을 격파한 샵드룩은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파로 계곡 상류에 지금도 남아있는 드룩겔 종(Drukgyel Dzong)을 짓는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달라이 라마 'Great Fifth'가 1648년과 1649년 부탄을 재차 공격하지만 이조차도 막아낸 샵드룩은 부탄이 티벳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다. 샵드룩은 이후 부탄의 중부와 동부 지방도 자기 영향 아래 두고 자카르(Jakar), 루엔체(Lhuentse), 트라시 양체(Trashi Yangtse)에도 종을 지어 현대 부탄이 차지하는 영토 대부분을 자기 발 밑에 두게 된다.

샵드룩은 티벳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부탄의 불교문화와 통치 방식에도 변화를 가한다. 부탄의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데시(desi), 종교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수도원장(the Chief Abbot)을 두어 정치와 종교를 확실하게 분리시켰다. 이는 지금의 부탄왕국에도 똑같이 전승되어 왕과 의회가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불교와 관련된 모든 것은 수도원장이 관리한다. 부탄의 기틀을 마련한 샵드룩이 죽은 후, 구심점을 잃어버린 부탄은 200년 동안 내전에 시달리게 된다.
파로의 상징, 아니 부탄의 상징, 탁상 사원

탁상 사원을 나오니 구루 린포체의 수많은 이미지와 호랑이가 머물렀다는 굴이 눈에 아직도 아른거린다. 사원에서 본 수많은 귀중한 유품들을 사진으로 못 담은 게 너무도 아쉬워 머리에 남기려고 애쓰지만 흘러가는 기억은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재의 탁상 사원은 보기와 달리 오래된 사원이 아니었고, 사원에서 신성시하는 물건들도 몇몇을 제외하곤 새로 만든 것들이었다. 1951년 한 차례 화재로 복구한 뒤, 1998년 4월 19일에 다시 한 차례 화마를 입어 7년의 세월에 걸쳐 재건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상 사원이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히는 건 구루 린포체라는 인물의 상징성과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부탄 사람들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


폐허가 된 요새, 드룩겔 종 (Drukgyel Dzong)

드룩겔 종(Drukgyel Dzong)은 탁상 사원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파로쪽으로 돌아가는 대신 티벳쪽으로 가면 나오는 요새다. 드룩(Druk)은 부탄, 겔(gyel)은 승리를 의미하며, 1644년에 샵드룩 나왕 남겔이 티벳을 물리친 걸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티벳은 부탄을 자기 영향 안에 두려고 파로 계곡을 통해 여러 번 공격했지만, 샵드룩의 뛰어난 전략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부탄은 마침내 자주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부탄과 티벳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교류하게 되자 티벳이 부탄을 침략하기 위해 사용한 길 위에 새워진 드룩겔 종은 침략을 방어하는 요새 대신 주변 지역을 다스리는 시청으로 역할을 한다. 1951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허로 남아있다가 2016년 현재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이 왕자를 얻게 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복구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드룩겔 종은 복구공사로 한창이다.

등산으로 지친 따시는 드룩겔 종에 가도 한창 공사 중이라 볼게 별로 없다고 말했지만, 난 부탄이라는 소국이 당시 강대국이었던 티벳을 물리친 상징적인 장소를 꼭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따시도 내가 부탄의 영광스러운 역사에 대해 언급하니 파로로 돌아가는 대신 드룩겔 종에 들리는 걸 허락한다. 드룩겔 종은 가운데 망루인 우체(utse)는 이미 완공된 상태였고, 이를 둘러쌀 건물들이 한창 지어지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400년이 다 되어가는 돌들을 어루만지고, 이 돌들이 그동안 봐왔던 부탄의 유구한 역사와 영화로웠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티벳의 침략을 최대한 빨리 발견하기 위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드룩겔 종에서 자기들만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쓴 부탄 사람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따시는 요새에 음식과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숨겨진 통로를 가리키며 선조들의 지혜를 설명하는 데 열중했다. 따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시 치열하게 싸웠던 티벳과 부탄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국이지만 주권을 잃은 티벳과 달리 소국이지만 자기들의 문화를 지키는 데 성공한 부탄. 400여 년 전 부탄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독립을 얻지 못했다면, 현재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왕국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웅장한 모습을 되찾고 있는 드룩겔 종

파로로 돌아가는 길 오른편에 조그마한 초르텐(chorten, 승탑)이 세워져 있다. 삿삼 초르텐(Satsam Chorten)이라 불리는 승탑 주변으로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깃발인 마니다르(Manidhar)가 보인다. 아무 특징도 없는 이 곳에 초르텐이 세워진 이유는 이 곳이 당시 부탄의 펜롭(penlop, 영주)이 차지하는 영토의 경계선이었기 때문. 삿삼(Satsam)이라는 단어의 뜻도 경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땅. 이제는 그 의미가 사라져 버린 초르텐을 보면서 아직도 DMZ, 판문점 같은 용어가 너무도 익숙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생각나 서글퍼졌다.

삿삼 초르텐 (Satsam Chorten)
파로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파로 시내로 돌아오기 전, 따시는 도로 오른편에 있는 조그마한 사원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봐왔던 사원과는 색다른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다. 보통 2층 건물에 뾰족한 지붕이 올려져 있는 부탄의 사원과 달리 2층이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라마불교(티벳불교) 형식의 탑이 올려져 있다. 따시는 사원의 이름이 둠체 하캉(Dumtse Lhakhang)이라고 알려주며, 철교 건축가(Iron Bridge Builder)로 유명한 탕통 걀포(Thangtong Gyalpo)가 1433년에 지은 오래된 절이라고 말해준다. 절이 3층으로 이루어진 건 각 층이 천국, 현세, 지옥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3층의 탑은 불교에서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을 아우르는 13을 상징한다. 13은 평면적 방위를 포함하는 8방과 하늘과 땅인 천지의 2를 더한 뒤, 과거∙현재∙미래의 3을 더한 숫자다. 건축양식만으로 불교의 사상을 나타낸 둠체 하캉의 경이로움은 사원 내부에 그려진 오래된 벽화들을 보면 더 커지게 된다. 손전등으로 벽화를 비추며 벽화에 그려진 부탄 불교의 상징과 역사에 대해 들으면서,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점점 더 깊어지게 되었다.

둠체 하캉 (Dumtse Lhakhang)

호랑이 굴에서 걸린 시간이 짧아 따시가 나에게 준 자유시간이 길어졌다. 호텔에 가도 할 게 딱히 없어 파로 시내에 내려달라고 부탁한 뒤, 따시의 눈을 피해 멀리 떨어진 보물을 찾아 떠난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 타면서 눈여겨본 작은 사원이 있었는데, 따시도 모르는 사원이라 혼자 찾아가 이 사원의 내력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시내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하니 굳게 잠긴 문이 눈에 띈다.

"아, 부탄의 사원들은 평소에 잠겨있었지..."

하지만 이에 굴하면 여기까지 찾아온 수고가 헛된 법. 잠긴 문에 조그맣게 붙여진 종이에 전화번호가 쓰여있다. 막상 전화해보니 스님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한다. 사원 이름인 페나 하캉(Pena Lhakhang)을 반복적으로 말하니 뭔가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 같긴 하다.

페나 하캉 (Pena Lhakhang)

전화를 했으니 그래도 오겠지...라는 대책 없는 생각을 하고 사원 앞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옆집에 있는 아주머니가 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 오, 근데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신다! 역시 나에게 한 첫마디는 "가이드는 어디 있어요?"다. 이렇게 된 이상 숨길 것도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잦을 테니까.

"가이드는 시내에 있고 전 파로 곳곳을 탐방하러 혼자 돌아다니고 있어요."

페나 사원 이모는 놀라면서 혼자 돌아다니는 외국 여행객은 처음 봤다고 용기가 가상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이유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하시면서, 현재는 집순이로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도 한탄하신다. 10여 분 동안 대화를 나누니 고(Gho)를 입은 스님이 등장하며 문을 열어준다. 스님 혼자 계셨다면 난 사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이모가 통역을 해줘서 사원의 내력과 벽화, 유물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페나 사원을 안내해주신 두 부탄 사람들

페나 하캉(Pena Lhakhang)은 파로의 숨겨진 보물로, 키추 사원을 짓고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송첸 감포(Songtsen Gampo)가 7세기에 지은 오래된 사원이다. 부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사원 중 하나인 이 곳에는 귀중한 유물들이 봉안되어 있으며, 파로 시민들이 소원을 빌고 위로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파로의 다른 사원들과 달리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오랜 역사와 사원이 가진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따시와 파상을 제외하면 부탄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한 것도 처음이라 더 아름다웠던 곳이랄까.

부탄 사람들이 즐겨먹는 고추
파로에서 먹는 태국 식사

파로 시내로 돌아와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호텔 뷔페에서 먹는 것이 지겹기도 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여행에서 느끼는 큰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까. 예겔 카페(Yegyel Cafe)에 들어가 보니 손님은 없고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놀고 있었다. 혼자 있는 내가 신기해 보였는지 날 흠칫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 안정을 찾고 나에게 메뉴를 가져다준다. 여기서 제공하는 음식은 주로 태국 음식. 똠 까 가이(치킨 코코넛 수프)와 부탄 음식인 호게이(hogey) 샐러드를 주문한다. 역시 다른 나라 음식은 그 나라에 가서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건가. 톰 까이를 다 먹고나니 몇 년 전 태국에서 "Great~!"을 연발하며 먹었던 똠얌꿍과 팟타이가 그리워졌다.

예겔 카페 (Yegyel Cafe)
부탄식 온천, Hot Stone Bath

5시 이후에 따시와 파상을 다시 만나 Hot Stone Bath를 즐기러 갔다. 농가에서 제공하는 현지 식사와 Hot Stone Bath를 즐기기 전 수많은 여행객들이 활이나 다트를 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따시와 파상이 나에게 활 쏠 줄 아냐고 묻는다. 나는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고 말하며 내가 한국인의 활 솜씨를 보여줄 거라고 말했다. 결과는 물론 내가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걸 증명한 걸로 끝났다. 수십 발 쏜 화살 중 맞춘 건 두 발에 그쳤으니까. 따시와 파상은 깔깔 웃으며 두세 번 시도만에 과녁을 맞혀버린다.

"야, 난 못 하지만 한국은 올림픽 양궁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나라라고."

"그럼 뭐하냐. 넌 활을 못 쏘는데!"

실컷 놀림만 받다가 쌓인 스트레스를 풀러 Hot Stone Bath로 향했다.

Hot Stone Bath를 즐기기 전 부탄 사람들이 사랑하는 활쏘기를 즐겼다.

Hot Stone Bath는 한국이나 일본의 온천욕과 달리 개인실에서 목욕을 즐기는 시스템이다. 조그마한 욕탕에 몸을 담그고 달구어진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갖 에너지를 흡수하며 내 몸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으며 목욕을 한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뜨거운 물에서 쉬는 것만으로 등산으로 지친 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목욕을 즐긴 뒤 농장에서 제공하는 건강식을 먹으니 파로에서의 마지막 밤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Hot Stone Bath. 불로 달군 돌을 물에 넣어 목욕을 즐긴다.
Hot Stone Bath 이후 농장에 딸린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신뢰의 중요성

부탄 여행에선 모든 걸 가이드에 맡겨도 된다. 여행 일정과 모든 편의, 추가로 지불해야 되는 비용에 관해서 가이드들은 100% 정직하다고 볼 수 있다. 여행객들이 불만을 느껴 이의를 제기하면 정부나 여행사로부터 징계를 받아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데 어떤 가이드들이 푼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사기를 당할 염려를 안 해도 되는 것뿐 아니라, 일정 또한 자기가 세우는 것보다 가이드의 말을 따르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 부탄 여행 3일 차에 탁상 사원을 방문했는데, 탁상 사원이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라 이후에 방문하는 다른 사원들이 시시해 보일 수 있다. 원래 탁상 사원은 부탄 여행 마지막 날에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독자적인 일정을 세워 Bhutan Journeys의 소남 초르펠씨에게 요청을 했던 것. 그의 조언대로 나머지 사원들은 탁상 사원에 비하면 "Wow"할만한 요인들이 적었다.


Hot Stone Bath는 추가 비용을 내야 이용할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론 700뉼트람이면 충분하다고 들었는데 따시가 나에게 요구한 비용은 1500뉼트람. 동남아시아에서 현지인들이 수많은 사기를 치는 걸 봐왔기에 따시와 이미 친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 매니저였던 소남 초르펠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부탁하니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따시가 날 속일 리가 없다고 안심시킨다. 실제로 농장에서 목욕을 즐기는 비용, 식비가 다 합쳐져 1500뉼트람을 내는 것이 맞았고, 따시는 나에게 언제나 정직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괜한 의심으로 따시와 나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었지만, 따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럴 수 있다고 날 이해해줬다. 이후 따시가 세우는 일정과 그가 제시하는 의견에 대해 가능하면 동의하려고 노력했고, 여행이 한결 수월해지고 재미있어지는 걸 느꼈다. 부탄이라는 특이한 조건 속에서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뿐 아니라 모든 여행이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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