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에서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을 뒤로하고 귀국길에 오르다
드디어 부탄을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어제와 달리 화창하게 바뀐 날씨가 나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다. 이른 시간에 텅텅 비어있는 팀푸의 거리에는 사람들도, 자동차도, 수많은 떠돌이 개들도, 사거리 한가운데 서 있는 교통경찰도 없다. 일요일 아침, 팀푸의 적막함 속에서 거리를 걸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리일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이 사실이 팀푸를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특이한 수도, 팀푸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을 느끼며 정처 없이 떠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부탄의 대표 스포츠를 만날 수 있는 곳, 창리미탕 국궁장
팀푸의 중요한 행사들이 열리는 곳은 도시의 젖줄인 왕 강 (Wang Chhu)를 따라 서 있다. 국왕이 집무를 보는 트라시 추에 종 (Trashi Chhoe Dzong), 팀푸 주말 시장 (Thimphu Weekend Market), 창리미탕 스타디움 (Changlimithang Stadium) 등 신분을 막론하고 팀푸 시민이라면 누구나 왕 강을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다. 왕 강을 따라 걸으니 굳게 닫힌 창리미탕 스타디움이 보이고, 경기장 남쪽으로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 조용한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소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창리미탕 경기장 남쪽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었다. 수없이 많은 부탄 남자들이 깃발 주위에 서성이는 모습이 보인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데도 부탄 전통복인 고(Gho)를 입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 보니 활을 쏘는 레인은 두 개가 있고 과녁은 양 끝에 하나씩, 총 네 개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레인으로 다가가니 사람들이 들고 있는 활이 범상치 않다. 전통을 사랑하는 부탄 사람들이니, 활을 쏠 때도 나무로 만들어진 전통 활을 사용할 줄 알았다. 옷은 전통복장인데 손에 들고 있는 건 양궁의 종류인 컴파운드 보우다. 부탄 사람 아니랄까 봐 다들 활 쏘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100m 정도 되어 보이는 거리인데 좁은 과녁을 잘도 맞힌다.
컴파운드 보우를 사용하는 레인을 보고 나서 전통 활을 사용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사용하는 활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도 다르다. 컴파운드 보우 쪽에서는 궁수가 활을 쏠 때 사람들이 벽 뒤로 피하지만, 전통 활을 사용하는 쪽에서는 화살을 멀뚱히 지켜보면서 피한다. 화살의 속도 차이가 엄청났던 것이다. 컴파운드 보우로 쏠 경우 너무 빨리 눈으로 보면서 피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화살은 웬만하면 과녁 가까이를 향하니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때마침 누군가가 전통 활로 과녁을 맞히자,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경쟁을 하는 상대임에도 기뻐해 주는 것을 보면, 부탄 사람들은 경쟁보다 즐기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부탄이 축구를 좋아함에도 FIFA 랭킹 최하위를 두고 다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창앙카 사원 (Changangkha Lhakhang)
창앙카 사원은 부탄 시내에 위치한 사원 중 가장 성스러운 곳이다. 12세기에 티벳의 랄룽에서 온 라마 파조 드룩곰 식포 (Lama Phajo drukgom Shigpo)에 의해 지어진 사원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을 때 부모들이 아이의 이름을 받기 위해 방문한다. 팀푸의 수호신인 탐드린이 창앙카 사원에 있으며, 아이들을 지켜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창앙카 사원은 점성술로도 유명한 곳이다. 절 안에 점을 보는 스님이 있으며, 스님에게 생일을 말하면 가장 어울리는 기도 깃발을 준다. (Nu 150)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팀푸 시민들은 계단을 올라 창앙카 사원에서 아이들이 축복을 받기를 원한다. 법당 안에는 어린아이를 안고 축복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들로 가득하다. 사원의 벽을 따라 엄청난 수의 챠챠(tsha-tsha, 불탑 모양의 진흙 형상)가 이들의 소망을 대변하고 있다. 나도 팀푸의 수호신에게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부탄에 좀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강했지만 이제 돈도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트라시 추에 요새 (Trashi Chhoe Dzong)
관람시간: 5.30-6.30pm Mon-Fri, 8am-6pm Sat&Sun, to 5.30pm winter
팀푸 시내 북쪽에 위치한 트라시 추에 요새, 즉 팀푸 요새는 부탄에서 가장 거대한 요새다. 멀리서 지켜볼 때도 그 장대한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다. 다른 요새보다 훨씬 긴 회랑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 바로 트라시 추에 요새다. 건축적으로 볼 때 푸나카 요새나 트롱사 요새처럼 큰 매력이 있지는 않지만 큰 규모만으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탄의 수도인 팀푸를 다스리는 요새이며, 부탄 국왕이 업무를 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탄을 다스리는 5대 국왕이 2008년에 대관식을 치른 곳이자, 팀푸의 가장 큰 축제가 열리는 곳이 바로 여기 트라시 추에 요새다.
팀푸 요새의 역사는 12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마 걀와 란앙파 (Lmam Gyalwa Lhanangpa)가 팀푸 요새를 처음 건설했으나, 원래 자리는 팀푸 시내를 지켜보는 언덕에 위치한 데첸 포드랑이 있는 곳이었다. 몇 년이 지나, 창앙파 사원을 지은 라마 파조 드룩곰 식포가 팀푸 요새를 차지하고 현재 부탄 불교 주 종파인 카규 종파를 전파하는데 힘쓴다. 1641년에 부탄 건국의 아버지인 샵드룽이 요새를 차지한 뒤에는 '거룩한 성전의 요새'라는 뜻의 트라시 추에 종으로 이름이 바뀐다. 샵드룽은 요새가 종교뿐 아니라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기도 원했지만, 데첸 포드랑이 있는 언덕은 너무나 협소했다. 그는 언덕 아래 왕 강 옆에 제2의 요새를 지었고, 이 요새가 바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트라시 추에 요새다.
1771년 화재로 인해 원래 요새가 파괴되었으나, 이미 모든 중심은 언덕 아래로 옮겨진 상황이라 재건이 불필요했다. 트라시 추에 요새 또한 1866년 화재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수 차례 재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요새가 더욱 확장된 건 3대 왕인 지그메 돌지 왕축이 1962년에 수도를 팀푸로 옮기기로 결정한 뒤였다. 확장을 위해 중앙탑과 몇몇 사원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들이 새롭게 지어졌기 때문에, 트라시 추에 요새에서 고즈넉한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요새의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팀푸로 몰려들어 국회의사당은 다른 건물로 분리되었고 수많은 사무실들도 임시 거처를 마련한 상황이다.
검문소를 지나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부탄 건축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엄청난 규모임에도 아름다운 비율을 유지한 채 지어진 요새가 놀랍기만 하다. 공무원들이 업무를 보는 평일에는 느낄 수 없는 한적한 분위기가 요새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든다. 중앙탑 모서리에 있는 가루다상은 부탄 건축가들의 센스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수많은 건물들 중 관람객들이 출입 가능한 곳은 본당 건물밖에 없다. 본당 건물의 중심은 석가모니 부처가 차지하고 있으며, 3대 왕과 4대 왕이 사용했던 왕좌, 불교 총무원장이 사용하는 옥좌가 놓여 있다.
팀푸에는 트라시 추에 요새보다 오래되고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요새가 있다. 팀푸 시내 남쪽에 위치한 심토카 요새가 바로 그것인데, 샵드룽이 티벳을 비롯한 외부 세력을 물리치고 부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곳이다. 시간이 없어 심토카 요새를 들리지는 못 했지만, 만약 다음에 부탄을 방문한다면 심토카 요새를 꼭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베사 마을 식당 (Babesa Village Restaurant)
전화번호: 02-351229
메뉴: 부탄 코스 요리 Nu500-600
바베사 마을 식당은 팀푸에서 파로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부탄 전통 식당이다. 귀국하는 마지막 날까지 호텔 뷔페를 먹기 싫어 따시를 졸라 마지막 만찬을 즐긴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식당 건물은 100년이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부탄 전통 가옥이며, 각종 부탄 요리를 코스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불교 국가답게 코스 요리는 대부분 채식이었지만, 그 특유의 향이 매력적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빈대떡, 서양 국가로 따지면 피자와 비슷한 멘가이라는 음식도 이 곳에서 먹을 수 있다.
팀푸를 떠나 파로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4시 10분에 인도 캘커타를 거쳐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간다. 팀푸에서 파로로 가는 길은 장대한 자연 그 자체다. 기암괴석이 곳곳에 펼쳐진 산들은 차 안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감을 느끼게 만든다. 수많은 기도 깃발들, 에메랄드빛 강, 황금빛 계단식 논... 부탄이 가진 고유한 풍경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파로강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자기 갈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부탄의 농부들은 여전히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수확을 하고 있다. 백두산만 한 높이에 위치한 산골 마을에서 보낸 2주일의 시간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느낄 만한 경험이었다. 비록 부탄이 정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일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파로 공항에 도착하자 그동안 정들었던 따시, 파상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차에서 내 짐을 꺼낸 뒤 약간의 팁을 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따시는 또 불교 경전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5년 내로 다시 돌아오라고, 더 길게는 못 기다려준다는 그의 말이 재밌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따시는 문화 탐방보다 트레킹이 더 재밌다고 하니 다시 올 때는 야크와 함께 트레킹을 하러 올 거라고 대답했다.
파로 공항은 부탄의 작은 인구만큼이나 별 볼일 없는 규모다. 면세점에서 구매할만한 물건도, 글로벌 브랜드 상점 하나 없다. 조그만 주류 상점이 여기가 면세점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동남아시아와 비슷하게 면세점 내 상점들의 가격은 "면세"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비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파로나 팀푸에서 더 많은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이 옳았다.
이륙시간이 되자 부탄을 자유롭게 출입 가능한 인도 사람들이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인다. 인도 사람들은 시원한 산악지방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을 때 부탄을 여행한다. 우리가 큰 비용 부담 없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향하는 사람들 중 동북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부탄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에게 얼마나 안 알려져 있는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파로를 이륙한 비행기는 히말라야 산맥의 장관을 보여주며 인도 캘커타로 떠났다. 부탄으로 올 때와 달리 화창한 하늘은 히말라야 산맥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산악지대를 지나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우기에 접어든 캘커타는 물이 고여있는 논밭과 수없이 많은 건물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캘커타에서 30분 정도 대기를 한 뒤, 비행기는 방콕 수왓나품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수왓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왠지 벌써 한국에 도착한 느낌이다. 태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미얀마에 갈 때 환승한 적도 있어서 공항이 너무 친숙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국어도 내가 드디어 오지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꿈같았던 부탄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한국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6시. 수호랑과 반다비가 2018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집에 들러 정리를 한 뒤,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첫 입사 날인데 과연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러고 보니 "부탄은 행복한 나라였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다. 이땐 정말 그랬다. 다시 부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