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푸 계곡의 비 오는 하루

팀푸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는 두 사원을 찾아가다

by TOMO

팀푸가 부탄의 수도로 지정되고 반세기가 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팀푸로 몰려들면서 옛 도시로서 가진 매력을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긴 하지만, 팀푸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다. 부탄의 다른 마을들과 달리 사원 외에도 볼 것이 많을 뿐 아니라, 인구가 적은 부탄이라는 나라에서 10만 명이 몰려든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도시가 가진 독특한 점이 되어버렸다. 불교 국가인 부탄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 사원 탐방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지만, 부탄 여행을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몇몇 중요한 절을 들린 후에 들린 '도시' 팀푸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도시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도시의 혼잡함과 수많은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 복잡한 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 이면에는 도시가 주는 편리함과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아늑함이 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치열한 삶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우리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팀푸에서 보낸 시간들은 '도시'에서의 삶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도시 속에 살고 있어 그 소중함을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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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 북쪽에 위치한 팡리 잠파 (Pangri Zampa)
팀푸 계곡의 역사를 따라 떠나는 여행

'도시' 여행이 매력적임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푸에서 둘째 날은 다시 사원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 도쿄, 베이징 같이 수백 년의 역사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동북아시아의 수도와 다르게, 팀푸는 짧은 역사와 작은 규모 때문에 하루면 충분히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팀푸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선 결국 팀푸 계곡을 따라 늘어선 불교 사원들과 국왕이 머물고 있는 종(Dzong)을 둘러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보슬비가 내리는 팀푸의 둘째 날 아침,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떠난 여행은 팀푸의 사원들 또한 다른 지역의 사원들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Thimphu003.jpeg 세월을 못 이기고 무너져 내리는 벽들이 이 절의 역사를 증언한다

팀푸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부탄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샵드룽 응아왕 남걀 (Zhabdrung Ngawang Namgyal)에 의해 지어진 팡리 잠파(Pangri Zampa)는 점성술로 유명한 사원이다. 왕실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절에 거주하는 승려이자 점성술사들이 길한 날짜를 알려준다. 현재 5대 국왕의 대관식도 팡리 잠파의 승려들이 지정한 날에 열렸다고 할 정도니, 이 곳의 승려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사원 안에 들어가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불상들과 더불어 벽에 그려진 별자리들이 눈에 띈다. 다분히 비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첨단 과학 기술의 발전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대한민국에서도 사주나 혈액형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자연현상의 신비로움은 이성적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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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리 잠파의 이름은 팀푸 계곡을 건너는 이 아름다운 다리에서 비롯되었다
Thimphu006.jpeg 5대왕의 할머니의 후원으로 지어진 드롤마 징캄 하캉 (Drolma Zhingkham Lhakhang)
베가나 (Begana) 마을의 신성한 그림들

팡리 잠파를 벗어나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베가나 마을이 나온다. 작은 마을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돌 위로 불교 경전이 종카(Dzongkha, 부탄 글자)로 써진 것을 보면, 팀푸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열심인지 느낄 수 있다. 돌 위에 새겨진 비문들과 부처님의 형상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수많은 조각가들이 곳곳에 부처님의 모습을 새기면서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불교 대신 유교가 국가적 신념으로 채택되면서 무형적인 가치가 강조되고 수백 년 된 절과 사원들이 허물어지게 된다. 절에 비해 건축적으로 특별한 매력이 없는 서원과 향교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고, 수많은 불상들이 깨뜨려지고 버려지고 만다. 현재 수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불교에서 비롯된 유형적인 유산인 것을 보면, 유교를 이데올로기로 택한 조선 왕실의 선택이 더욱더 아쉬워진다. 유교적 가치의 중요성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요즘, 가치 있는 불교유산을 남기기보다 파괴하는데 앞장섰던 조선 왕조의 선택은 수많은 전쟁으로 훼손된 한국의 문화적 가치가 폄하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문화 대혁명을 겪은 중국보다야 낫지만,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이들의 선택이 더욱 아쉬워진다. (일본도 메이지유신을 겪으며 문화유산이 훼철되긴 했지만, 정도는 우리보다 덜했다.)

1620527.jpg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출처: 문화재청). 이렇게 아름다운 불상이 남아있다는 건 대한민국의 축복이자 자랑이다.

베가나 마을에는 최근에 써진 종카를 비롯해 국가적 영웅인 구루 린포체(Guru Rinpoche)가 바위에 그려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자기들의 종교적 신념 또는 국가적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돌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들의 역량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지만, 부탄의 국민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부탄의 영웅을 보는 데 아무 거부감이 없는 것은 한 국가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그들만의 영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는 것처럼, 부탄 사람들도 구루 린포체라는 그들의 영웅을 기억하려 애쓰는 것이다.

Thimphu008.jpeg 바위에 새겨진 종카 (Dzongkha, 부탄 글자)
Thimphu009.jpeg 바위에 그려진 구루 린포체 (Guru Rinpoche)
부탄의 첫 번째 사원, 체리 굄바 (Cheri Goemba)

한국의 절들은 불교가 배척된 이후 산으로 쫓겨났지만, 대개 의식주를 공급받기 쉬운 계곡 아래편에 자리 잡고 있다. 부탄은 나라가 성립된 이후 지금까지도 불교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절들은 여전히 시내 한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목적 외에도 명상 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승려들은 속세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절을 짓고자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의 접근이 힘든 언덕 위로 많은 절들이 세워지게 된다. 팀푸 계곡 상류에 있는 체리 굄바(Cheri Goemba)탕고 굄바(Tango Goemba) 또한 팀푸 중심가와 한참 떨어진 산 위에 위치한 절들이다.

Thimphu010.jpeg 체리 굄바 (Cheri Goemba) 입구의 초르텐 (Chorten)

해발 2,600m의 작은 마을 도디나(Dodina)에 다다르면, 팀푸 시내를 흐르는 왕 강(Wang Chhu) 상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날 수 있다. 하얗게 칠해진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다리 옆의 수많은 룽다르(Lungdhar)들은 속세에서 벗어나 신들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을 알려준다. 다리를 건나가면 벽으로 둘러싸인 특이한 모습의 초르텐(chorten, 승탑)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소풍을 온 팀푸 시민들이 보인다. 도디나 마을은 스님들이 명상하는 사원의 입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팀푸 시민들이 힘든 삶에서 벗어나 쉬어가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정성을 다 해 불교적 신념을 표현하는 장소로, 돌 위에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구루 린포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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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강을 가로질러 체리 사원으로 향하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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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굄바 입구의 초르텐 주변은 팀푸 시민들이 번잡한 시내를 떠나 소풍을 오는 곳이다
Thimphu014.jpeg 체리 굄바 입구에도 구루 린포체가 그려지고 있었다

떠들썩하게 놀고 있는 팀푸 시민들 곁을 지나, 따시와 나는 긴 산행을 시작한다. 체리 굄바(Cheri Goemba)는 스님들이 명상하고 있는 사원답게, 속세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애쓴 것 같다. 보슬비가 내려 질퍽해진 흙길 위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팀푸와 사뭇 다른 모습의 절이 수도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평일에도 수많은 등산객들로 붐비는 북한산과 관악산을 가진 서울에 비하면 이렇게 조용한 산을 가지고 있는 팀푸는 과연 한 나라의 수도가 맞는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Thimphu017.jpeg 45분의 고된 산행 중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

40여분을 오르자 언덕 위 야트막한 평지에 위치한 체리 굄바(Cheri Goemba)가 모습을 드러낸다. 호랑이 사원인 탁상 굄바 (Taktshang Goemba)만큼 멋지진 않지만, 좁은 공간에 늘어선 여러 채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부탄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사원으로 알려진 이 곳은, 1620년에 샵드룽 응아왕 남걀에 의해 지어졌다. 아래층에 위치한 본당은 스님들이 3년 동안 명상을 하는 장소로 이용된다. 30여 명의 스님들이 이 곳에서 생활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 뒤편의 숨겨진 공간으로 가면 화장실과 부엌, 세탁실을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곳이 갖춰져 있다. 쌀을 씻고 식사를 준비하는 스님들, 향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는 스님들을 만나고 나니, 이 곳이 시주를 받기 위한 절이 아니라 부처님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한 사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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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산행을 끝내면 도달할 수 있는 체리 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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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mphu024.jpeg 체리 사원에서 볼 수 있는 팀푸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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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사원 곳곳의 귀여운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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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된 레일 위로 물자를 공급받는 체리 사원

본당 뒤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절벽 위에 지어진 조그마한 절을 만날 수 있다. 비록 작은 규모지만 이 곳의 중요성은 아래 본당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건물의 이름은 '악마를 억누른 사원 (Demon-Subjugating Monastery)'으로, 샵드룽이 팀푸 지역에서 활개 치던 악마를 물리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절벽 위에 위치한 절 입구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팀푸 계곡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신성한 공간답게 바깥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절의 모습도 범상치 않다. 벽돌 위 툭 튀어나온 목조 창가가 일반적인 절과 다르게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절의 문은 의외로 자물쇠로 채워져있지 않다. 때마침 등장한 스님은 삭발도 안 했을 뿐 아니라 멋진 수염도 기른 모습이다.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해준다. 절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구루 린포체와 석가모니 부처를 만날 수 있지만 이 곳의 상징은 왕관을 쓰고 있는 샵드룽 응아왕 남걀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불 상답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샵드룽의 모습은 절로 경외심을 갖게 하며, 절 내부를 한층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영화배우같이 멋진 스님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지니, 이 곳에서 경험이 더욱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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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억누른 사원 (Demon Subjuated Mona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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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안내해 준 스님과 함께

체리 굄바의 또 다른 상징은 산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월악산 등 일부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멸종 위기종인 산양은 부탄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 곳 체리 굄바로 내려와 스님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때마침 스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남은 밥을 돌 위에 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와 쌀알을 먹고 있는 산양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진다. 체리 굄바는 스님들이 명상을 하며 얻은 깨달음을 자연과 함께 나누는 환상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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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사원의 또다른 상징, 산양!

점심을 먹기 위해 빠르게 하산하여 도디나 마을에 도착하니, 진귀한 장면이 눈에 펼쳐진다. 방목되고 있는 소 뒷다리가 전깃줄에 걸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인부들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소를 구하기 위해 뿔과 다리를 잡고 전선을 풀어준다. 소가 자유로워진 뒤, 사람들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다. 자신들이 한 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소야 어찌 됐든 상관없이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역시 부탄의 가장 아름다운 매력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순수함을 가진 '부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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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다리가 걸린 소 (왼쪽)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인부들 (오른쪽)
샵드룽의 성지, 땅고 굄바 (Tango Goemba)

체리 굄바와 땅고 굄바가 위치한 팀푸 계곡 북쪽은 팀푸와 가깝지만 점심을 해결할 식당은 하나도 없다. 절 주변에 온갖 상업적인 시설이 가득한 우리나라와 또 다른 모습이 놀랍다. 덕분에 땅고 굄바 아래편에 위치한 우리만의 장소에서 따시가 싸 온 점심을 먹는다. 닭고기와 각종 야채로 구성된 부탄 음식을 야외에서 맛볼 수 있는 경험은 부탄 여행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주변의 방해 없이 자연을 감상하면서 먹는 점심은 나로서는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싱글인 데다, 차도 없고, 요리도 못하니 밖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먹으니 벤치에 앉아 편하게 먹지 못하는 점심 식사도 너무나 감사하다. 부탄에서 마지막 피크닉 식사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일념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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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시가 준비한 도시락
Thimphu046.jpeg 남은 음식을 주변의 서성이는 개들에게 주는 파상

땅고 굄바 (Tango Goemba)로 가는 길도 체리 굄바와 마찬가지로 한참을 올라야만 하는 길이다. 체리 굄바로 가는 길과 달리 벽돌로 포장된 길을 따라 불교적 사상이 적힌 팻말들을 읽으며 걸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과 조그마한 초르텐들 또한 땅고 굄바까지 가는 길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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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 굄바로 올라가는 길 내내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이 적힌 팻말들과 불교적 상징들을 만들 수 있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면 경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사원이 눈에 펼쳐진다. 불교 대학으로서 역할을 하는 사원답게 수많은 스님들을 수용할 수 있게 지어진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사원 내부로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통로 옆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벽화들을 볼 수 있다. 벽화들은 커튼으로 보호되고 있어, 궁금하면 커튼을 들어 올려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이런 수고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벽화들을 감상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벽화뿐 아니라 문과 통로에 새겨진 수많은 조각들도 이 사원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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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 굄바의 웅장한 모습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과 달리, 사원의 역사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건물은 15세기에 'Divine madman'인 드룩파 쿤레이에 의해 지어졌으며, 탁상 굄바를 건설한 걀세 텐진 랍계 (Gyalse Tenzin Rabgye)의 일곱 번째 환생체인 걀세 린포체 (Gyalse Rinpoche)가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샵드룽 응아왕 남걀이 1616년에 이 곳을 찾아와 명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명상한 동굴도 사원 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 샵드룽은 관세음보살 (Chenresig) 상을 만들어 여기에 봉안했으며, 그의 후손이 19세기에 황금지붕을 올리는 등 부탄 건국의 아버지가 다녀간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샵드룽의 기일인 4월 또는 5월 (음력을 따르므로)에 이 곳 땅고 굄바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수많은 부탄 사람들이 이 곳에 찾아와 그를 만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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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 굄바의 아름다운 모습

돌아오는 길은 올라왔던 길 대신 산을 한 바퀴 돌아 드롤룽 굄바 (Drolung Goemba)를 들리고 가는 길을 선택했다. 드롤룽 굄바는 1969년에 설립된 절로, 체리 굄바와 마찬가지로 스님들의 명상을 위한 곳이다. 인적은 더욱 드물어 사라진 길을 찾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갖은 고생 끝에 들린 절은 팀푸 시내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우뚝 서 있었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이 절에 들리고 싶었던 이유는 사원 그 자체보다 사원에서 펼쳐지는 팀푸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절의 정문을 지나 사원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스님이 큰 소리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따시는 종카로 외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다가, 절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번역해준다. 먼 길을 돌아서 왔지만 결국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해 아쉬웠지만, 똑같은 길을 걷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고 위로하며 오늘의 일정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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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롤룽 굄바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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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롤룽 굄바 (Drolung Goemba)
팀푸에서 보낸 부탄의 마지막 밤

팀푸 시내는 작은 규모답게 들를 곳도 많지 않아, 이곳저곳 특이한 상점들을 내 멋대로 찾아보기로 했다. 시계 상점인데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 곳, 부탄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위한 상점, 부탄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형(?) 슈퍼마켓, 세븐일레븐의 짝퉁인 8 ELEVEN 등 골목을 걸어보니 재미있는 곳이 참 많다. 팀푸 주말 시장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팀푸 공예품 시장 (Thimphu Crafts Market)이 나온다. 저녁시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탄의 공예품 시장 아니랄까 봐 대부분의 상점들이 불교와 관련된 공예품들을 팔고 있고, 실생활에 쓸 수 있는 수공예품 몇몇도 눈에 띈다. 어제 들린 노르진 람 공예품 거리 (Norzin Lam Crafts Stalls)에 비해 특별한 것이 없어 눈으로만 감상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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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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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 공예품 시장 (Thimphu Handicrafts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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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에서만 찾을 수 있는 수퍼마켓들. 8 ELEVEN이 인상적이다.

어제가 소남 초르펠 씨와 함께한 공식적인 마지막 만찬이었다면, 이 날은 2주일 동안 동거 동락한 가이드 따시와 드라이버 파상과의 비공식 만찬이 있는 밤이었다. 따시에게 팀푸에서 가장 유명한 바에 가자고 하니, 모조 파크(Mojo Park)에 데려다준다. 때마침 한 부탄 밴드의 보컬이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있고, 부탄 시민들은 이에 열광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밴드에 비하면 실력이 한참 모자란 것 같았지만, 변화가 느릴 대로 느린 팀푸에도 서서히 현대 문화가 스며들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평생 다시 팀푸에 올 일이 있을까. 과연 그때 팀푸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시끄러운 락 밴드의 연주 속에서 따시와 파상은 건배를 하며 나에게 다시 부탄에 오라고 당부를 한다. 빠른 시일에 오지는 못 하더라도 자기들을 잊지 말고 꼭 다시 찾아오라고 반협박(?)을 한다. 나도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다시 찾아와 부탄에서 트레킹을 즐기고 싶다. 물론 부탄을 다시 찾아 올 그 여유가 생기려면 내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거나 부탄 정부가 가격을 낮추는 것과 같은 방법 외엔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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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푸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브 뮤직 바, 모조 파크 (Mojo Park)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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