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은 도시 곳곳에 널려 있다
부탄의 심장, 팀푸
부탄의 수도인 팀푸(Thimphu)는 히말라야 산맥에 기대어 있는 부탄 왕국의 행정과 경제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팀푸는 산에 자리 잡은 나라의 수도답게 해발 2,320m에 위치해 있다.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엄청난 규모의 수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부탄은 75만의 적은 인구 때문인지 수도인 팀푸에 사는 사람들을 전부 합쳐도 95,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팀푸의 인구가 적은 것은 부탄의 수도로 공식적으로 지정된 지 100년도 안 되는 역사적 배경도 한몫할 것이다. 부탄은 샵드룩 응아왕 남걀에 의해 통일된 후에도 9개의 종카그(Dzongkhag)가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나라였다. 이 때도 왕국의 중심지는 오랜 역사를 가진 푸나카(Punakha)였고, 1961년에 3대 왕인 지그메 돌지 왕축(Jigme Dorji Wangchuck)이 수도를 이전하기 전까지 작은 지방도시에 불과했다. 팀푸가 수도로 발전하게 된 건 중국이 1959년에 티벳을 침략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탄은 인도에 의지하기로 결정한다. 인도의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필요로 한 부탄은 인도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팀푸에 인도로 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게 된다. 그 결과, 팀푸는 자연스럽게 수도로 급격히 부상하게 되었고, 현재 인구 10만에 육박(?)하는 대도시가 된 것이다.
팀푸 시내에 나서면 처음부터 눈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는 도로 한가운데를 신호등이 아닌 교통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같이 힘들고 고된 일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 수도인 팀푸로 몰리면서 도로는 점점 혼잡해지고 교통체증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부탄 정부는 처음에는 다른 나라처럼 신호등을 만들어 교통을 통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기들의 불교문화를 지키려는 팀푸 시민들의 보수적인 정신은 신호등도 허락하지 않았다. 신호등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부탄 시민들의 민원이 엄청나게 들어왔던 것이다. 결국 정부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신호등을 철거한 뒤, 원래대로 교통경찰을 두기로 결정한다. 그 결과, 팀푸는 세계에서 둘 밖에 없는 '신호등이 없는 수도'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호등이 없는 또 다른 수도는 어딜까. 그 도시는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깝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북한의 수도 '평양'이다.
부탄의 수도답게 여전히 조용하다
팀푸에 입성할 때는 역시나 한 나라의 수도답게 입이 떡 벌어지는 대도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2주 동안 부탄에서 살면서 현지화된 내 착각에 불과했다. 팀푸를 거닐다 보니 수도라는 느낌이 들기보다 인구 10만의 소도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부탄의 다른 마을과 비슷하게 강을 끼고 살아가며, 고(Gho)나 키라(Kira)를 즐겨 입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원이 곳곳에 숨어있으며,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부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다만 시내 곳곳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수많은 건물들이 여기가 수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왕 강 (Wang Chhu) 바로 옆에 있는 장토 펠리 사원 (Zangto Pelri Lhakhang)은 1990년대에 부탄의 국가를 작곡한 다쇼 아쿠 통미 (Dasho Aku Tongmi)에 의해 지어졌다. 다른 부탄의 사원들과 비슷하게 구루 린포체 (Guru Rinpoche)가 모셔져 있지만, 이 사원의 큰 매력은 수많은 사람들이 돌리고 있는 기도 바퀴다. 이른 아침, 하루를 신성한 정신으로 시작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원을 찾아와 거대한 기도 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으니, 기도 바퀴를 돌리던 한 시민이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기도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부탄 여행의 마지막이 될 팀푸 여정을 행복하게 끝내게 해달라고 기도 바퀴를 힘겹게 돌리면서 기도했다. 이제는 다시 보기 힘들 종카(Dzongkha, 부탄 문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팀푸의 랜드마크, 국가 기념 탑
팀푸 시내로 들어서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초르텐(Chorten, 탑)이 있다. 번역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곳이 바로 국가 기념 탑 (National Memorial Chorten)이다. 번쩍이는 상륜부를 자랑하는 탑은 팀푸를 수도로 지정한 3대 왕인 지그메 돌지 왕축 (Jigme Dorji Wangchuck, 1928-72)를 기리기 위해 1974년에 티벳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팀푸 시민과 스님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탑에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탑 내부로 들어가면 3대 왕을 기리는 사당을 만날 수 있다. 왕을 위한 사당을 차지하고 있는 불상과 벽화들은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답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팀푸 중심가가 한눈에 보이고, 탑 옆의 작은 사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드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극히 현대적인 불탑이 감동적인 느낌을 주는 건, 3대 왕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마음과 부처님을 향한 그들의 헌신 때문이었을까.
팀푸를 지켜보는 부처, 도르덴마
사람들은 재력이 넘치게 되면, 풍부한 물질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기념물을 세우는 데 쓴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선 사업을 펼치기보다 돈을 펑펑 써가며 정치에 뛰어들기를 시도한다. 세력이 커진 교회나 절은 넘쳐나는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보다 더 큰 교회나 불당을 짓기 위해 쓴다. 이런 세태를 절대 욕할 수는 없다. 나도 풍부하게 산다면 똑같이 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팀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팀푸 계곡(Thimphu Valley)을 바라보는 언덕 꼭대기에 높이 51m의 거대한 불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부처인 도르덴마(Dordenma)와 그 주위를 둘러싼 따라(Tara)의 모습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미소는 인자하기 그지없지만, 거대한 규모와 눈부신 황금빛은 부탄이라는 국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쿠엔셀 포드랑(Kuensel Phodrang, 쿠엔셀 궁전)은 이름에 걸맞게 사원이라기보다 궁전에 가깝다. 불상 아래에 있는 신전 내부 또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수많은 스님들이 사원 안에서 경전을 베껴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님들은 우리가 호위 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부처님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사원을 나오니 족히 만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 스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때마침 부탄 불교의 최고 지도자인 제 켄포(the Je Khenpo, the chief abbot)가 강연을 하고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그가 설법(說法)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부탄 각지에서 출발해 팀푸로 모인 사람들만 수만 명에 달했다. 이제야 이렇게 거대한 불상이 세워진 이유가 이해가 된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팀푸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치를 부리고자 함이 아니라 부탄 국민들이 부처님에게 헌신할 수 있도록 부탄 정부가 애쓰고 노력한 결과 탄생한 곳이 바로 이 곳, 쿠엔셀 포드랑 (Kuensel Phodrang)이다.
부탄 최고의 아트 스쿨, 국립 미술 공예 기관
팀푸는 수도답게 부탄에서 제일가는 교육 기관이 있는 도시다. 우리나라 제1의 대학교인 서울대학교가 수도인 서울에 있는 것처럼, 부탄 최고의 대학교 또한 팀푸에 있다. 다만 미술에 있어서 홍익대학교가 최고로 인정받는 것처럼, 팀푸에서도 미술과 공예를 위한 학교는 별개로 존재한다. 부탄 최고의 아트 스쿨은 바로 국립 미술 공예 기관 (National Institute for Zorig Chusum)으로, 부탄 미술의 전통을 잇기 위해 13개 분야에 걸쳐 4년에서 6년 동안 수련생들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회화, 목공예, 자수,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들이 열심히 기술을 익히고 배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팀푸에도 수많은 불교 유적들이 있지만, 이 도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국립 미술 공예 기관에 들러 부탄의 미래가 양성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만큼 신비롭진 않겠지만,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학교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기숙사를 제외하면 학교 내부를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데, 학생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경이롭다. 비록 국력은 약할지 모르지만 지구 상에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는 것을 알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부탄의 미래는 밝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학생들이 제작한 작품들을 직접 구입할 수도 있는데, 작품의 질이 예사롭지 않다. 불교 회화인 탕카(thangka) 외에도 부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작품들도 많아서 부탄에도 현대미술의 흐름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탄 국립 도서관
국립 미술 공예 기관 바로 옆에 늠름하게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이 있다. 이 곳이 1967년에 설립된 부탄 국립 도서관 (National Library)인데, 종카(Dzongkha, 부탄 언어) 또는 티벳 언어로 된 귀중한 고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다. 부탄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들어서면 세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1층에는 부탄 왕국이 세워진 후의 역사를 증언하는 사진들이 걸려 있고,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도서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책인 'Bhutan'으로 무게는 68kg, 길이는 무려 2m에 달한다. 한 달에 한 페이지씩 넘긴다고 하니, 이 책을 다 읽으려면 평생 부탄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탄의 역사를 만나기 위해선 층계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 2층 위로는 수많은 고문서들뿐 아니라, 문서를 인쇄하는 데 쓰였던 목판이 진열되어 있다. 부탄의 역사를 증언하는 문서들을 직접 펼쳐볼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부탄 사람들의 열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노르진 람 공예 시장
국립 도서관을 나서고 나니, 아침 일찍 시작된 일정에 벌써 지쳐버린다. 따시는 도서관에서 나와 노르진 람 (Norzin Lam)이라는 대로로 날 안내한다. 도로 한가운데로 수많은 노점상들이 서 있다. 땡볕 아래서 고생하며 상점을 둘러보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거리에 서 있는 노점들을 둘러보는 것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상점들 대신 각각의 상점들이 자신들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 외에 손으로 직접 짜서 만든 자수, 가면, 직물 등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부탄에서 보낼 시간이 얼마 남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몇몇 기념품들을 구입했다. 동남아시아의 소수 민족들이 만드는 물건들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부탄의 추억을 향수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티탕 타킨 보호구역
부탄의 다른 지역과 달리 팀푸는 사원 외에도 볼거리가 너무도 많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곳이 바로 '모티탕 타킨 보호구역 (Motithang Takin Preserve)'이다. 보호구역에 들어서면 동물원과 달리 넓은 초원 속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슴들도 눈에 띄지만 생전 처음 보는 타킨의 모습이 너무도 신기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풀을 뜯어먹고 있는 타킨은 부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동물이다. 소처럼 거대한 몸집인데 얼굴은 정말 염소와 닮았다. 타킨의 신기한 생김새에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수많은 서양인들이 타킨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게다가 타킨의 탄생과 관련된 전설은 부탄 사람들 또한 이 동물을 신기하게 바라봤다는 걸 알게 해준다. (아래 box 참고)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탄 정부가 이런 보호 구역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부탄 정부는 동물원이 자신들의 사상에 위배되는 것을 깨닫고 동물원 내 모든 동물들을 야생으로 풀어준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연에 적응하고 잘 살았지만, 동물원에 있던 타킨들은 산에서 내려와 팀푸 시내를 활보하는 일이 잦았다. 사람들을 잊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부탄의 국왕은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상징이 되는 타킨을 위한 보호구역을 만들었다. 덕분에 고지대에서 트레킹을 하지 않더라도 나 같은 여행객들은 팀푸에 들리면 타킨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탄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10 - 타킨 (Takin)
타킨(Takin)은 부탄의 상징적인 동물로, 오직 부탄에서만 서식하고 있다. 타킨이 부탄의 상징이 된 이유는 'Divine Madman'이라 불리는 드룩파 쿤레이 (Drukpa Kunley)와 얽힌 전설 때문이다.
드룩파 쿤레이는 15세기에 부탄을 방문했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닐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기를 원했고, 쿤레이는 먼저 점심 식사로 소와 염소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다. (승려라는 자가 육식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이 미쳤다는 것을 증명한다.) 식사를 끝낸 뒤 뼈만 남게 되자, 그는 염소의 머리를 소 뼈에 끼워 맞춘다. 그가 명령을 내리자 염소의 머리에 소의 몸통을 가진 동물이 일어나 뛰어다녔고, 이 동물이 현재 우리가 부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타킨 (Takin)'의 기원이 되었다.
타킨은 여름이 되면 3,700m가 되는 고지대로 이동하여 모기를 비롯한 해충들을 피하고, 초원 속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이때 수컷 타킨의 몸무게는 1톤에 육박할 정도로 비대해진다. 이 시기는 타킨이 짝짓기를 하는 시간이다. 여름에 짝짓기를 끝내고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7~8개월 정도로, 12월과 2월 사이에 새로운 타킨이 탄생하게 된다. 가끔 히말라야 곰이 갓 태어난 타킨을 먹이로 삼기 위해 이 시기에 암컷 타킨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타킨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생이별하고 곰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8월 이후가 되면 타킨은 다시 저지대로 내려와 2,000~3,000m 사이에서 겨울을 보낸다.
타킨에 대한 사냥은 금지되어 있지만, 타킨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아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지도 않는다. 타킨을 위협하는 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야크들과 (야크는 쓰임새가 많아 유목민들이 기르기를 선호하는 동물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감소다.
팀푸 최고의 트레킹 코스
산악 왕국 부탄답게, 수도인 팀푸에서도 멋진 트레킹 코스를 즐길 수가 있다. 팀푸 시의 왼쪽 언덕에 위치한 산가이강 (Sangaygang) 지구에 있는 BBS 타워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벨피나 (Belpina) 지구의 데첸 포드랑 (Dechen Phodrang)까지 걸어가는 코스다. 언덕 위를 걸음에도 불구하고 산책길은 높낮이가 거의 없어서 팀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힘들이지 않고도 만끽할 수 있다.
팀푸 시내는 수많은 건물들이 건설 중이라 정신이 없다. 계곡의 좁은 공간은 이미 건물과 도로로 가득 차 있고, 비탈을 따라서도 공사가 한창이다. 시가지는 끊임없이 확장되어 북쪽과 남쪽의 농경지까지 집어삼키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개발 되고 있는 팀푸가 한국의 수도인 서울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서울에도 산이 많지만 한국의 역사가 살아있는 궁궐들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산만큼 높게 지어진 고층빌딩과 아파트 숲들은 서울이 수백 년 도읍지라는 걸 실감할 수 없게 만든다. 팀푸는 건물을 짓더라도 전통 양식에 따라지어야 하는 법 때문에 고층 빌딩이 절대 들어설 수 없다. 덕분에 유서 깊은 장소들을 지도를 짚어가며 찾을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수도인 서울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시 자체에서 역사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창덕궁을 비롯한 궁궐이나 조선왕릉을 직접 찾아가지 않는다면 서울 시내에 있더라도 오래된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왕디체 굄바 (Wangditse Goemba)를 지나면 부탄 국왕의 업무 공간인 트라시 추에 종 (Trasi Chhoe Dzong)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으로 따지면 청와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구 80만의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업무 공간 치고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팀푸 시청의 역할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공간이 점차 부족해지게 되었고, 많은 사무국들이 요새 바깥의 단출한 건물들로 옮겨졌다고 한다. 트라시 추에 종은 다음 날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요새를 한눈에 감상하기엔 트레킹 중 만난 전망대가 최고의 장소다. 푸나카 종 (Punakha Dzong)만큼 아름답지 않지만, 부탄 행정∙경제∙종교의 중심지인 만큼 격식 있고 근엄한 구조를 자랑하고 있다.
팀푸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데첸 포드랑 (Dechen Phodrang)에서 보낸 시간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사원은 원래 팀푸 종 (Thimphu Dzong)의 일부였다. 현재는 250명이 넘는 학생들을 8년 동안 가르치는 로브라 (lobra, 승려를 양성하는 학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수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사원답게, 사원 내에는 오래된 벽화와 샵드룽 응아왕 남걀 (Zhabdrung Ngawang Namgyal)을 만날 수 있다. 부탄의 사원이란 사원은 다 들러봤지만, 이 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어린 승려들과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8년이라는 긴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마당에서 놀고 있는 승려들의 연령대도 다양해 보였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학생들은 축구를 하며 놀고 있고, 앳된 아이들은 마당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스님이 되기 위해 수양을 한다고 하지만 어릴 때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하는 건 일반인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빨간색 로브를 걸치고 뛰어다니며 노는 그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몇몇 아이들은 부끄러워 도망 다닌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나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고, 덕분에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속세에서 떨어져 살아가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이 행복해 보였던 건 세상의 온갖 욕정에 찌들지 않고 부처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팀푸 주말 시장
주말 시장 (Weekend Market)이라 불리는 이 곳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팀푸 지역의 농부들이 자기들이 수확하거나 가꾼 농산물을 팔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곳곳을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부탄답게 고추, 감자, 콩, 마늘, 양파를 비롯한 각종 농산물들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신기한 건 부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치즈인 닷세 (datse)다. 어떻게 먹는지 감이 오지 않지만 직접 만져보니 예상과 달리 정말 딱딱하다. 치즈라고 생각해서 입에 넣는 순간 곤욕을 치를 거라고 따시가 경고까지 할 정도였다. 이 딱딱한 치즈의 용도가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진다. 따시는 닷세가 뜨거운 물에 녹여 차를 만드는 데도 쓰이지만, 부탄의 시그니처 디쉬인 엠마 닷세 (ema datse)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한다. 엠마 닷세는 따시가 권유해서 먹어 본 적이 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다. 조리법은 간단하다. 잘게 자른 고추와 닷세를 볶으면 그만이다. 마치 각설탕처럼 생긴 치즈의 용도를 알고 나니 왜 많은 사람들이 닷세를 사 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고추를 사랑하는 부탄 사람들이 고추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으니까.
시장 곳곳을 둘러보면 절에서 사용하는 약재들을 비롯해 진귀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국의 5일장도 이런 분위기일까. 차이점이 있다면 농산물뿐 아니라 온갖 생필품들도 구할 수 있는 한국의 5일장과 달리 팀푸의 주말 시장은 정말 '농부들의 시장'이라는 것이다. 농부들이 주인공이 된 시장은 잡화들이 섞인 다른 나라들의 시장과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상술과는 거리가 멀고, 농부들의 피땀이 스며든 농산물들을 욕심내지 않고 제 가격에 파는 이 곳, 아직도 문명의 이기가 스며들지 않은 팀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장이다.
독특한 수도, 팀푸에서의 멋진 밤
주말 시장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오니 어느덧 어둑해진 팀푸 시내를 각종 조명들이 환하게 밝히고 있다. 교통경찰은 여전히 신호등의 역할을 대신하느라 정신이 없고, 젊은 사람들은 밤을 즐기기 위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팀푸의 마지막 밤은 다음 날이었지만, 날 안내해 준 여행사의 대표인 소남 초르펠씨는 오늘 밤에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내가 부탄을 여행하고 있는 동안 호주에서 온 가족이 3박 4일의 짧은 일정으로 부탄을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호주 가족이 부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오늘이었고,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간이니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루가 더 남았지만 환송식을 하게 되는 날이니 부탄을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나 왠지 서글퍼진다.
저녁을 먹기로 한 8시까지 팀푸 시내 곳곳을 둘러본다. 현지인들의 문화를 관찰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데는 카페만 한 곳이 없다. 팀푸에서 가장 유명한 앰비언트 카페 (Ambient Cafe)에 들리니, 수많은 팀푸 시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금까지 들러 본 부탄의 다른 카페들보다 커피 맛도 뛰어나 내 우울한 기분을 달랠 수가 있었다. 팀푸는 (내가 볼 때는) 부탄의 유일한 도시라 수많은 상점들을 들러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부탄 전통복장과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을 비롯해, 짝퉁 의류와 신발을 팔고 있는 상점, 서점, 아웃도어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 등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소남 초르펠씨와 마지막 저녁 만찬을 함께 하기 위해 스위스 식당 (Swiss Restaurant)에 모였다. 오늘 그를 팀푸에서 한 번 만나긴 했었다. 그는 현재는 Bhutan Journeys의 매니저지만, 회사를 차리기 전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이드로서 일한 경험이 있다. 따시와 파상이 나를 따라 여행을 떠나고 있을 때, 소남 씨는 3박 4일의 짧은 시간 동안 호주 가족들의 가이드를 자처했던 것이다. 타킨 보호구역에서 만난 그는 힘들 텐데도 아이를 계속 안은 상태로 부모들이 여유롭게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저것이 바로 프로 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때를 놓쳐 독신으로 살게 된 그가 한 편으로 안타깝기도 했지만 자유를 즐기면서 사는 그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매번 여행사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건 그가 빼먹지 않고 꼭 하는 일이다. 그는 식사를 함께 하면서 부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꼭 부탄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고 글을 쓰는 내가 부끄럽지만, 부탄은 비싼 돈을 주고도 꼭 한 번 방문해 볼만한 나라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폽지카에서 검은 목 두루미를 굳이 보러 가지 않아도 된다. 붐탕까지 먼 길을 가서 고생할 필요도 없다.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며 나 같은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부탄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부탄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