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이어가는 동아서점 이야기
2020년 10월 단풍철에 들어설 무렵 특별한 계획 없이 속초와 동해에 가기로 했다. 계획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속초와 동해에 게스트하우스 예약만 해놓고 어디를 둘러볼지 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사실 딱히 정한다고 해서 갈 데가 많은 건 아니었다. 속초의 제일가는 관광지라고 하면 설악산, 대포항, 동명항, 속초해수욕장 등일 텐데 모두 두 번 넘게 가봤기 때문이었다. 대포항은 리모델링한 후 간 적은 없으므로 다시 가 보는 게 의미가 있을 수도 있었다. 정처 없이 바다를 걷다가 카페에 들러 책을 읽다 돌아가는 것, 나에게 있어 아무 준비 없이 가는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것이었다.
다만 구독하고 있는 여행 잡지에서 가 볼 만한 곳이 있으면 저장해 놓는 것이 습관이기에 속초에 도착한 뒤에서야 목록을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속초에는 내가 가 보지 못 한 곳이 있었다. 속초가 자랑하는 두 개의 호수 청초호・영량호를 비롯해 북쪽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아바이마을 등 가볼 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이틀 간의 속초 여행 기간 동안 각 호수를 한 바퀴 걷고 아바이 마을 갯배를 탄 뒤 아바이순대를 먹고 동해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면 모든 것이 완벽한 일정으로 생각되었다.
청초호와 영량호를 따라 걷는 건 생각보다 단순하다. 강릉의 경포호나 고성의 화진포 호수를 따라 걸으면 중간중간 유명한 인사들이 남긴 건물들이 있어 시간을 뺏기기 마련인데 반해, 속초의 두 호수는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발달한 도시라서 그런지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물들이 '일절' 없다. 그나마 청초호 옆에 자리 잡아 속초의 상징적인 건물로 발돋움한 '칠성 조선소'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을 뿐이다. 두 호수를 따라 걸으며 든 생각은 속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과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는 '자연'이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이었다.
속초시민들이 내 의견을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역사가 짧은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속초에서 자란 수많은 사람들이 속초가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며칠 동안 쉬지 않고 할 수 있을만한 도시라는 것이다. 속초 시가지를 걸으면 속초의 발전과 쇠락을 함께한 '칠성 조선소'를 비롯하여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형성한 마을인 '아바이마을' 등 굴곡진 대한민국 현대사를 증언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초를 단지 설악산의 관문이나 동해의 맛있는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미식 도시라고 생각한 나는 속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을 점차 달리하게 되었다. 여행 둘째 날 단지 목록에 있다는 이유로 '동아서점'에 방문한 이후 속초를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에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동네 서점은 살 길을 잃었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은 점점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고 지방의 인구는 점차 줄어들면서 어딜 가든 흔히 볼 수 있던 서점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는 나조차도 흔히 말하는 프랜차이즈 서점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찾거나 온라인 서점인 '예스 24'를 둘러보는 것이 일상이다. 여행을 가더라도 몇몇 작은 독립서점을 찾아 쉽게 구할 수 없는 독립출판물을 구입하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네서점' 방문이었다.
동아서점은 속초 교동에서 1956년에 개업해 3대째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서점이다. 3대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동아서점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립서점이 아니라 종합서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서점에 들어섰을 때 놀란 것은 대형 서점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는 것과 독립 서적을 취급하는 것, 그리고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도서들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서점에 대해 궁금해지고 난 뒤 나는 곧장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도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칠성 조선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도 궁금했지만, 3대째 운영하고 있다는 이 서점의 이야기가 나에겐 더 흥미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동아서점에 대한 책인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가 내 눈에 들어왔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구입하였다.
할아버지 김종록・아버지 김일수・그리고 막내아들인 김영건까지 무려 60년을 넘게 속초 시민들에게 지식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동아서점 이야기는 김영건 씨가 2014년 8월에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고 9년 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한 채 속초로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가 서점을 경영할 때와 달리 대한민국의 소위 잘 나간다는 프랜차이즈 서점은 최첨단 기술을 받아들여 검색대를 갖추고 분야별로 서적이 확실히 나뉘어 있는 등 기능적으로 완벽한 공간이었다. 동아서점이 이런 프랜차이즈 서점과 똑같은 방식을 취하기엔 무리가 있으므로 막내아들은 색다른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유럽과 일본의 서점이 완벽한 기능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동아서점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책에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고충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분류하기 어려운 애매한 주제의 서적들・노벨문학상과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질 때 해당 작가의 서적을 미리 확보하지 못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직거래와 도매상의 차이・매장에서 취식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 등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고통 뒤에 기쁨이 온다고 그랬던가. 막내아들인 김영건 씨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동아서점에 온 손님과 인연을 맺게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2016년 7월에 결혼한 그는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가장 와 닿은 이야기는 동아서점의 사랑 이야기도, 서점 운영의 어려움도 아니었다. '꼰대와의 투쟁'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몇몇 염치없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자기가 교수라며 책값을 깎아달라는 손님, 서점에 대뜸 들어와 '해커스 토익에 전화 좀 걸어보세요.'라고 명령하는 손님, 절판된 책이 없다고 하자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책을 받기로 확답을 받은 뒤 서점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따지는 손님 등 장사를 하면 이런 꼰대들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분야를 불문하고 억지를 써가며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갑질을 한다.
우리 부모님 또한 창원에서 30년 동안 작은 장식 집을 운영하고 있다. 30년이나 안 망하고 아직도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아버지의 손놀림과 솜씨는 높게 평가할 만하다. 나 또한 부모님이 잠시 집을 비웠을 때 가게를 보면서 꼰대 같은 사람을 많이 봐왔지만 내 마음을 가장 슬프게 한 건 꼰대보다 더한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다. 시공을 마치고 대금을 받는 장식업의 특성상 양아치 같은 인간들이 한 명씩 등장하기 마련이다. 몇백만 원 규모의 공사를 요청하고 마무리한 뒤 돈을 받으러 가면 돈 없다고 배 째라고 하는 사람, 대금을 받으려고 전화를 걸어도 통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쓰레기들이 이 세상에는 참 많은 걸 느꼈다. 게다가 오후 9시 이후로 돈을 달라고 요청하는 건 불법이 되었다며? 아, 기본의 기본조차도 못 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책을 덮은 뒤 자영업이 어려운 걸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소도시의 서점을 운영하는 필자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시작할 때는 쉬는 날 없이 하루 종일 일했던 그의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어가는 지금, 다시 한번 동아서점을 방문하면 무슨 느낌이 들까. 아, 속초에 가기 전 내 고향 창원에 먼저 가봐야겠다. 30년 동안 많은 돈을 벌지는 못 했지만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동화장식'이라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한 우리 부모님 또한 존경스러운 존재니까. 오랜만에 가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한 마디 꼭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