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비처 스토 (Harriet Beecher Stowe)
서점에 들어가는 시간은 항상 설렌다. 인간이 창조해낸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면 여행을 떠났을 때와 흡사한 신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고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면 평생을 읽어도 다 못 읽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때가 있다. '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현대인들은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쓸 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하다. 시간이 많다면 대충 아무 작품이나 읽어도 되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주일에 한 권 읽는 것도 벅찬 경우가 많다. 휴가일 때는 베스트셀러 서가에 꽂힌 책들 중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 책을 읽으려고 할 때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고전 소설을 읽는 것이 좋다. 담고 있는 메시지가 빈약한 대중소설의 경우 10년이 지나면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고전 소설은 묘사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 현대와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인간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던져준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미국 역사를 공부할 때 수없이 들어온 소설이다. 영국 독립전쟁・태평양 전쟁과 함께 미국 본토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전쟁인 남북 전쟁을 촉발시킨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미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미국 역사에 관심을 가진 지 10년도 더 되었지만,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은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를 읽은 뒤 러시아 문학에 심취해 있었고, 이후 나쓰메 소세키・다자이 오사무・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같은 일본 문호들의 작품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역사가 짧은 미국의 고전 문학이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 문학의 시발점이 된 유럽의 고전 문학보다 뛰어나지 못할 거라는 편견도 있었다.
이런 편견을 바꿔버린 건 잘 알려진 미국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가 아니었다. 작품은 꽤나 유명하지만 작가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모비 딕>을 읽고 나서였다. <모비 딕>은 출간될 당시에는 기독교를 모욕하는 불경함에 더해 산만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실제 포경선원으로써 살아 본 멜빌은 포경선의 구조와 고래 잡는 법, 향유고래에게서 기름을 얻는 법 등을 자세히 묘사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래잡이'에 대해 알려준다. '모비 딕'이라는 고래를 잡으러 가는 이야기는 각종 지식의 향연 속에서 연속되지 못하고 끊기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모비 딕>의 이야기는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강렬해진다. 헤밍웨이나 폴 오스터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작가들은 사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내는 데 재능이 있는 듯하다.
<모비 딕>을 읽고 난 뒤 감동을 받아, 미국 작가들이 쓴 고전 소설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세계문학전집의 경우 책 끝 부분에 문학 목록이 첨부되곤 하는데 내가 읽은 <모비 딕>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제목들 가운데 익숙한 이름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보였고 드디어 이 작품을 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도착한 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한 시도 빼놓지 않고 나는 이 책을 들고 다녔다. 피곤해서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줄거리는 흥미진진했고 마치 19세기 중반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노예제도의 참혹한 실상을 눈 앞에서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끝을 보고 책을 덮은 뒤 독서 노트에 기록하기 전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될 미국의 역사는 '남북전쟁'이다. 1861년 4월 12일부터 1865년 5월 13일까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며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남북전쟁은 6・25 전쟁처럼 한 국가의 통일을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은 자유주와 노예주가 반목하는 상황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근대화된 유럽에서는 노예제가 이미 종말을 맞이했으나, 미국에서는 조면기의 발명으로 남부에서 면화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자 면 수확을 담당하는 흑인 노예들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미국의 면화 농장은 남부인 버지니아부터 시작해 서쪽인 루이지애나까지 확장되었고 남부주는 지역의 경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노예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반면 북부는 공업의 발달로 노예를 두고 있는 것이 의미가 없었고, 노예제의 유지는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언급한 '인간은 자유, 생명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과 완벽하게 모순되었기 때문에 노예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노예제로 인해 대립하는 미국 연방의 각 주들을 달래기 위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은 수많은 타협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해결방법은 완벽히 상충되는 의견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웠고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것에 불과했다. 미국이 노예제로 인해 갈등이 격렬했던 시기부터 링컨이 부임하기 전까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전쟁을 통해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지 않는 한 갈등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을 암시했다. 남부에서 링컨이 선거인단을 한 명도 확보하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남부는 노예제의 종말이 올 것을 예견하고 섬터 요새를 포격하여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야기는 아서 셸비와 헤일리라는 노예 상인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노예 주인 켄터키 주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아서 셸비는 사업이 어려워지자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헤일리에게 노예를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헤일리는 톰을 비롯해 엘리자라는 여자 노예와 그녀의 아들인 해리를 사들이기로 결심한다. 아서의 아내인 에밀리는 엘리자가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빚을 진 상황이라 가세를 회복한 후 노예들을 다시 사 들이고자 했다.
엘리자는 노예 시장에 발을 들인 즉시 아들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죽기를 각오하고 늦은 밤에 아들과 함께 농장을 탈출한다. 헤일리는 뒤늦게 그녀의 뒤를 쫓아 결국 따라잡는 데 성공하지만 엘리자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오하이오 강의 얼음조각을 딛고 건너편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엘리자의 남편인 조지는 다른 농장에서 가혹한 대우를 견딜 수 없어 엘리자와 비슷한 시기에 도주했다. 퀘이커 교도들의 도움으로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 조지는 캐나다로 건나가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기로 했다.
톰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셸비의 농장에서 다른 노예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비록 글을 읽지는 못 하지만 아서의 아들인 조지 셸비의 도움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노예로 남부에 팔려가는 것 또한 주인인 아서에게 순종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헤일리와 함께 남부로 떠난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내려가는 배에서 에반젤린이라는 백인 여자애와 친해지면서 그녀의 아버지인 오거스틴 세인트클레어가 헤일리로부터 그를 사들인다.
오거스틴의 농장은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 있었다. 그는 남부에 살고 있음에도 다른 백인 농장주들과 달리 흑인 노예들에게 가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농장의 노예들을 통제하는 데 소극적이라 농장의 질서가 어지러운 상태로 유지되었다. 오거스틴의 아내인 마리는 전형적인 남부인으로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남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리가 갖은 질병으로 시달리자 오거스틴의 사촌 누나인 오펠리아가 북부 자유주인 버몬트에서 뉴올리언스로 오게 된다. 오펠리아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흑인 노예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여주면서 질서를 바로 잡아나간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흑인 노예들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생각과 다르게 그들과 접촉하는 걸 혐오하는 정서가 있었다. 오거스틴은 북부인들 대다수가 오펠리아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남부인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위선자라고 비판한다.
흑인 노예들을 진짜 인간으로 대한 건 오거스틴의 딸인 에바였다. 에바는 노예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한 인격체라고 여기며 그들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흑인 노예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천국에서 만나자고 한다. 천사 같은 에바의 영향과 톰의 도움으로 오거스틴 또한 기독교인이 되려는 찰나 그 또한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레 죽게 된다. 죽기 전에 오거스틴이 써 준 해방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고, 미망인이 된 마리는 톰을 비롯한 대다수의 노예들을 시장으로 팔아넘긴다.
톰을 구입한 건 루이지애나의 잔혹한 농장주였던 리글리였다. 그는 노예가 죽으면 새로 구입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혹한 체벌을 통해 노예들을 관리했다. 리글리는 두 흑인 관리인인 큄보와 삼보를 통해 나머지 흑인들을 감시하게 시켰다. 같은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리글리의 마음에 들어 더 안락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다른 노예들을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농장에서 도망치려는 노예가 있으면 리글리는 사나운 개들을 풀어 물어뜯도록 시켰다. 톰은 농장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성경을 읽으며 정신이 굴복당하지 않게 버텼다. 톰에게 농장의 최고 관리인을 맡겨 노예들을 엄격하게 관리하려고 했던 리글리는 그를 굴복시키는 데 실패하자 채찍을 휘둘러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톰은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리글리의 영혼을 구하지 못함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한편 지옥 같은 농장에서 벗어나고자 한 캐시는 꾀를 내어 에멀린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조지 셸비는 톰을 살 수 있는 돈을 모은 뒤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리글리의 농장에 방문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를 타고 켄터키로 돌아가는 조지는 캐시와 드투 부인을 만난다. 대화를 나누던 중 캐시가 엘리자의 어머니였으며, 드투 부인은 캐나다로 탈출한 조지의 누나임이 밝혀진다. 조지는 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4년을 보낸 뒤, 그의 가족들과 함께 흑인들의 자유국가인 라이베리아로 떠난다. 조지 셸비는 농장의 모든 노예들에게 자유인이 되었음을 알리고 그들에게 임금을 주고 교육을 시킬 것을 약속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톰 아저씨 덕분이라고 말하며 모두가 충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오거스틴이 그의 사촌 누나인 오필리어와 노예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오거스틴과 오필리어의 토론은 18장과 19장 두 장에 걸쳐 길게 묘사되고 있으며, 이는 소설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관통한다는 점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오거스틴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미국의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며, 북부인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두 분이 교회에서 들은 게 종교라고?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사회의 괴기스러운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굽어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종교라고? 세속적이고 눈멀고 비종교적인 내 성격보다도 양심적이지도 않고 관대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 그게 종교라고? 절대 아니야! 내가 종교를 바라볼 때는 나보다 위에 있는 어떤 것을 찾지 나보다 못한 것을 찾지는 않아."
-노예제를 옹호하는 목사들의 설교에 대해 비판하며
인간의 본성이란 모순 덩어리이고 특히 이상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인다. 어떤 일을 하려다가 중간에 그만두기보다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해리엇 비처 스토가 화자로서 한 말
"그분께서는 저들이 하고 있는 짓을 다 보고 계신가? 왜 그분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허용하실까? 저들은 성경이 그들 편이라고 말하고 있어. ...(중략)... 하지만 가난하고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발밑에 엎드려 먼지 속에서 뒹굴고 있어. 저들은 이 불쌍한 사람들을 사고팔면서, 이 불쌍한 사람들의 피와 신음과 눈물을 거래하고 있어. 그런데도 하느님은 그들을 가만 내버려 두고 있어." -종교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보이며 오거스틴이 한 말
당시 남부의 목사들은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면서 노예제도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목사들은 '그 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계절에 맞게 아름답게 만드신다'라는 구절을 이용해 사회 내의 모든 질서와 구분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통치하기 위해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노예로 태어나는 것은 절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질서라는 논리를 펼쳤다. 남부인들 대다수가 중소 농민이고 노예를 부릴 수 없는 위치였음에도 노예제를 적극 지지한 건 흑인들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입받은 탓이 컸다. 오거스틴은 미국의 노예제에 대해 간단하게 정의한다. '우리는 그것을 지지한다. 우리는 그 제도를 시행 중이고 계속 유지하려 한다. 그것은 우리의 편의와 이익을 위한 것이다.'
"내가 천국에 간다고요? 거긴 백인들이나 가는 데가 아니오? 거기서 나를 받아준다고요? 난 차라리 지옥에 가서 나리와 마님으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톰의 위로에 노예인 프루가 한 말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하지만 입으로는 기독교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기독교인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북부의 편견 역시 우리 남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압제란 말입니다." -오거스틴이 북부인들의 편견에 대해 비판하며 한 말
당시 미국은 수많은 선교사를 다른 대륙으로 보내면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지구 반대편에까지 정하겠다는 그들의 신념은 미국의 청교도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기독교를 믿는다고 자부하면서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깡그리 무시한 채 노예제의 유지를 위해 성경을 자기 멋대로 이용하기 바빴다. 북부인들 또한 기독교인의 양심에 따라 노예제의 철폐를 주장했지만 흑인 노예들이 자신들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오거스틴은 이런 현실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며 미국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
기독교를 불문하고 대한민국의 종교인들 또한 부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곡해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는 데 애쓰고 있다. 교회는 소외당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기보다 자신들의 세력을 불려 나가 기업처럼 되기를 원하며, 목사들은 자신들이 키운 교회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여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 스님들은 시주받은 돈을 이용해 비싼 신발을 신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사유재산을 가지는 등 속세와 융화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오거스틴의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건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가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따라 또는 불경을 따라 이상적인 삶을 살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욕망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시도하려고 마음먹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었다. 차라리 압제자들과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적절히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싸움은 사라지고 승리가 다가올 것입니다." -리글리 농장에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는 캐시와 대화할 때
"나리, 나리께서 병이 드셨거나 어려움에 빠졌거나 죽어간다면 전 나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제 심장의 피를 드리겠습니다. 만약 이 불쌍한 톰의 피가 나리의 귀중한 영혼을 구해내는 데 전부 필요하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께서 제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리글리로부터 다른 흑인들을 가혹하게 대하라고 강요받을 때 톰이 대답한 말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톰 아저씨가 평생 학문을 연구해온 나보다 더 깊이 있게 신의 뜻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실천한 것을 보고, 나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 하인리히 하이네
톰은 오랫동안 헌신했던 아서 셸비로부터 버림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거스틴의 농장에서 만족할 만한 삶을 살다가 리글리에 팔려나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도 성경을 읽으며 자신의 영혼이 타락하는 걸 막는다. 미국의 백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음에도 실천은 하지 않는데 반해, 톰은 글을 읽지 못함에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작가인 해리엇 비처 스토는 단순히 노예제의 폐지만을 바라고 작품을 쓴 게 아니었다. 그녀는 진정한 기독교인의 자세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고 실천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백인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흑인 노예가 예수님이 바라는 삶을 그대로 따랐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피부 색깔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톰이 리글리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자유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깨달을 수 있다. 톰과 같은 의인이 자유가 없을 때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쉽게 죽임을 당한다면 전 인류가 큰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밖에 없는 삶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죽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자유가 없는 노예제도의 흉악함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주 인도적인 한 법률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을 최악으로 학대하는 방법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나쁘게 인간을 학대하는 방식이 있다. 그것은 노예제도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미국의 배경은 셸비 가족의 농장이 있는 켄터키 (Kentucky)와 흑인들이 두려워하는 남부의 면화 농장이 있는 루이지애나 (Louisiana)다. 켄터키는 버지니아 주에서 떨어져 나와 노예주로서 연방에 가입했지만 북부의 자유주인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와 접하고 있어 흑인들이 탈출하기 쉬웠다. 또한 흑인들의 수요 또한 크지 않아 노예들의 대우 또한 남부보다 훨씬 좋았다. 미국의 다른 주에 비해 유명한 장소는 없지만 KFC로 대변되는 프랜차이즈가 켄터키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KFC는 1952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 (Salt Lake City)에서 창립한 회사로, 푸짐한 미국 남부식 손님 접대 상차림을 연상시키기 위해 켄터키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이다.
루이지애나 (Louisiana)는 재즈의 탄생지인 뉴올리언스 (New Orleans)가 있는 도시다. 노예제도가 존속될 당시에는 흑인들을 상대로 끔찍한 행위가 저질러졌던 지방이지만, 루이지애나에 살았던 흑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여 루이지애나를 미국의 문화 중심지로 발돋움시켰다. 내륙지방인 켄터키와 달리 카리브해와 접하고 있는 루이지애나에는 볼거리도 많다. 하지만 루이지애나에서 그 무엇보다 빛나는 도시는 바로 뉴올리언스일 것이다. 재즈뿐 아니라 흑인들이 만들어낸 다채로운 음식을 즐길 수 있으며 도시에도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미국뿐 아니라 라이베리아 또한 소설에 등장한다.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이라는 라이베리아는 미국이 흑인 노예들을 지원 및 이주시켜 1847년에 건국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조지는 흑인들로 이루어진 위대한 국가를 만들기를 꿈꿨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라이베리아가 건국될 당시 토착 주민들과 미국에서 이주한 흑인들 간의 갈등이 심했으며, 미국 출신 흑인들이 토착 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들의 갈등은 21세기까지 이어져 라이베리아 내전으로 격화되었다. 게다가 미국을 등에 업고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은 내전이 일어날 당시 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해리엇 비처 스토는 라이베리아를 통해 흑인들이 백인들의 국가 못지않은 국가를 만들 것이라 여겼지만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인간은 너무나 모순적이며 현실에 직면했을 때 자기의 이득을 취하기 바쁘다. 모든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톰 아저씨와 같은 삶을 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