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받으러 가서 울었다

04. 불란서에서 위통증과 함께하기

by 내향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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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달 동안 위가 쓰리고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초반에는 약 먹으면 나아지고 생활에 지장이 가고 성격이 포악해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점점 심해지고 있다. 스트레스가 심해짐에 따라 통증도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약을 먹으며 버티다가 학교 센터에 있는 병원에 가서 일반의의 진료를 받았다.

최근에 수업에 더더욱 집중하기 어렵고 잘 까먹고 텍스트를 읽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최근에 있던 문제를 다 얘기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갔다. 의사는 말이 빨랐고 처음부터 내가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불안해진 마음에 의사의 무표정이 중립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읽혀서 약간 더 불안함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렇게 위에 대한 증상을 말하고 진료확인서를 받을 수 있냐고 말한 뒤, 요즘 일어나는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의사는 잠은 잘 자고 밥은 잘 먹냐고 묻더니 심적으로 힘든 게 있냐고 물었다. '심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moral'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것을 좀 곱씹다가 나는 울컥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데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입술에 힘을 주며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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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느낀 감정은, '아, 나 왜 울지? 너무 창피하다'였다. 나는 누구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사실 너무 창피하다. 한참 미성숙한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더불어 마치 알몸을 보여주는 것처럼 수치스럽다. 항문외과에 가서 의사에게 항문을 보여줄 때도 이렇게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진료실을 나와서 화장실에서 최대한 눈물을 그치려고 노력했다. 이미 퉁퉁 부은 눈이 보였다. '에이, 운 거 너무 티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눈물은 그치려고 할 수록 계속 나왔고 울컥함도 계속 터졌다. 부러 먼 길로 돌아서 걸어갈 때도 이따금씩 울컥함이 터졌고 그걸 참으려고 노력했다.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는 자기 가족과 통화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도 와 있었는데 거기서도 가끔씩 울컥했다. 이러고 있다보니 신기한 걸 발견했는데, 울컥할 때 '아, 슬프다'라고 생각하면 감정이 쏙 들어가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무작정 억누르는 것보다 감정을 한번 읽어버리면 좀 더 나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에 또 누구 앞에서 울게 되거나 울컥하게 되면 써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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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었던가, 내가 알바하면서 울었던 게. 근데 또 다시 밖에서 울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감정을 몸이 담을 수 없어 터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심지어 요즘은 불안도 점점 더 심해진다. 일하는데 싫어하는 동료가 나한테 뭐라고 할까봐 불안하고, 복습을 시간내에 다 못할까봐 불안하고. 온 세상에 빨간 사이렌이 울리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또다시 새로 알게 된 건, 그동안 프랑스어로 받은 스트레스도 상당했다는 것이다. 수업을 듣거나 대화를 할 때 긴장하고, 못 알아들으면 괴로워하고 다시 되묻는 것을 민망해하고. 이번에 한 학기 내내 조별 과제를 하면서 보고서를 써야 하는 수업이 있는데 이게 너무 괴롭다. 모두가 다 의욕이 없고 모두가 다 말이 빠르고 한 애는 입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해서 정말로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다 내가 못 알아들으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담당 교수님도 굉장히 엄격하고 깐깐하며 말을 알아듣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 어떤 다른 수업보다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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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는 없지만 '하늘의 뜻'은 믿는 편인데 지금 모든 요인들이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신적으로 몹시 불안정하고 위 통증이 사상 최고로 극심한데다 스트레스가 찰 대로 차버려서 하루에도 울컥울컥 할 때가 많다. 더불어 임의로 짜여진 조의 조원들도, 담당 교수님도 그 무엇하나 좋은 점이 없어 그냥 최악이라 나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를 준다. 모든 게 나를 밀어내고 있는데 이럴 때는 밀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밀려서 어떻게 되든 간에 말이다. 2학기를 쉬고 가능성이 크지 않아보이는 석사 지원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석사가 되지 않으면 1년을 쉬고 내년에 다시 2학년 2학기를 다녀야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나가버릴 시간이 아깝고 기존의 유학 기간에서 1년이 더 추가되는 것이 부담스럽고, 좋았던 동기들과 멀어지는 것이 아쉽다. 어려운 시간이다. 선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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