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란서에서 혹사 달인과 같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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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느껴질까? 왜 시간을 허투루 쓰면 죄책감이 느껴지고 수업을 째면 죄책감이 느껴질까? 그렇다고 한들 내가 이 사회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한 것도,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말이지. 오늘 아침에 수업을 쨌다. 그때는 너무 피곤하고 위도 아프고 마음은 가야지, 싶으면서도 결국 가지 못했다. 좋아하는 수업이라 갔으면 좋았을텐데, 제출해야 하는 과제도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오후가 되니까 든다. 하지만 언제나 그때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나는 어제부터 그때 그때의 감정이나 어려움들을 기록해두고 있다. 머지않아 학교를 때려치울 것인데 나중이 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최대한 세세하게 어려움들을 적어두고 있다. 이러면 그때의 사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 수많은 좋은 것들을 다 제쳐두고 지금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그 치명적인 나쁜 것들이 있겠지. 더구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남의 감이 더 맛있어보이는 사람인지라. 수업에 안가면 수업을 가지 않은 현재를 즐기기보다 아, 갔으면 이게 좋았을텐데... 이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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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다시 또 진로고민을 하는 빼박 서른을 목전에 앞둔 나는 잠깐 제쳐두고 지금에 집중해야 함을 다시금 떠올리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혼자 어찌저찌 잘 살아왔는데 지금은 정말로 위태롭게 흔들리는 멈추기 직전의 팽이같다. 적어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만은 그러하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고 나면 뭔가 마음이 후련해지는 부분도 있고 느낌만 있던 게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고. 왜 사람은 심플하게 살지 못하고 이렇게 복잡한 머리를 가지고 있을까.
당초 프랑스에 몇 년 더 머물기로 했을 때 내가 정한 나의 체류기간은 '더 이상 프랑스에 살 마음이 들지 않거나 살 수 없을 때'였다. 그렇게 미련을 가지지 않기 위해 잔뜩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1학년은 고생이었고 학업 때문에 힘들었고 체력적으로 지쳤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의 가능성과 능력치가 꽤나 나쁘지 않음을 봤다면 지금은 그냥 존나 지쳤고 내 프랑스어는 개그지같고 움츠러들고 위축되고 심지어 외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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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랑스를 떠날 거냐고 물으면 '아직 그 때는 오지 않았다, 여전히 미련이 남을거다'라는 것이 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 간다고 삶이 심플해지고 모든 고민이 없어지고 그러지 않는다. 새로운 고민과 애로사항과 고생과 빡침 등등이 생겨나겠지. 어째 글을 쓰면 쓸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지금 학교에 가서 시험공부도 하고 병원도 가야하는데 그냥 울고 싶다. 어제 밤에 어묵국을 먹고 자서 퉁퉁 붓고 아침에 많이 자서 퉁퉁 부은 눈이 더 붓게 생겼다. 아, 안그래도 못생겼는데 더 못생겨지겠군. 정말 내가 바라던 대로 고생을 해서 조금씩 프랑스 살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있는 중인데 그 고생과정에서 내가 산산조각이 날 것 같다. 아, 존나 힘들다 정말.
이번 학기를 그냥 다니지 말고 휴학을 하든 전과를 하든 할까 생각중인데 그러면 결국 이번 한 해를 버리는 거다. 너무 낭비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은퇴를 몇해 남겨둔 엄마를 생각하면 어서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은데 1년 더 기간이 늘어난다니. 그마저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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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업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근데 학교 안 가기에 배가 그렇게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대체 얼마나 더 아프기를 바라는건지 모르겠다. 정말 스스로를 혹사하는 대회가 있다면 나도 우승권에 가볍게 들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프고 얼마나 더 심리적으로 힘들어야 쉴 것인지.
건강이란 것이 있을 때는 별 거 아닌 것 같다가도 없어지면 치명적이고, 병이라는 건 소리소문없이 찾아오는 법인데 그럼 대체 위장에 구멍이라도 하나 뚫려야 편안한 마음으로 통증에 신음하며 쉬러 갈 것인지 정말 짜증이 나려고 한다.
예전에는 글을 쓰면 좀 마음이 편해졌는데 오늘은 또 그렇지만도 않다. 어서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