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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모티 May 07. 2020

매직 워드의 변천사

내 삶의 마일스톤이 되어준 매직 워드

매직 워드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0대 중후반이었다. 카페에서 친한 언니한테 나의 풀리지 않는 고민들과 하소연들을 쏟아내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언니가 나한테 ‘티모티야, 내가 매직워드(Magic Words) 하나 가르쳐줄게' 라며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하나 알려줬다. 그 이후 꽤 한 동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언니가 가르쳐준 매직워드를 떠올리면서 ‘매직워드'를 체내화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매직워드는 단순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외우는 주문은 아니다. 생각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는 말이다. 초등영어에서는 매직워드를 타인을 배려해 주는 사소하지만 강력한 힘을 갖는 표현으로 정의내리며, “고마워", “부탁해”, “미안해" 등등의 말을 가르친다. 이처럼 타인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매직워드도 있지만, 나의 매직워드는 완벽하게 이기적으로 내 마음을 위로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겪고 있는 경험과 상황 그리고 나의 성숙도(?)에 따라서 매직워드도 변했다. 기억이 나는 20대 초반부터 지금 30대 초반까지의 나의 매직워드 변천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대 초반)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내가 승리를 거두어 기쁘거나 위대한 일을 성취했을 때 자만하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고, 시련과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 반지를 만들어주게”라고 말했다. 보석 세공사는 고민하다 솔로몬을 찾아갔다. 그때 솔로몬이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다.
20살, 드디어 정해진 틀 안에서 주어진 공부와 숙제를 하던 때를 지나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최소한의 울타리만 있었을 뿐, 아무도 나에게 틀을 정해주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기 전과 동일하게 주어진 건 24시간이 전부였다. 그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도 온전히 나의 뜻에 맡겨졌다.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 안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좌충우돌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단지 시간이 지나 20살이 되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유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의 선택을 조금씩 책임지기 시작하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짜릿함, 설레임 그리고 동반되는 감정노동과 상처들, 책임이 동반된 선택의 시행착오, 자신감과 열등감을 오가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들 모두 낯설었다. 그 때는 빨리 다 늙고 싶었다. 우왕좌왕 하면서 상처받거나, 미숙하고 싶지 않았고, 태연하게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마치 연륜있고, 여유있는 우리 할머니처럼.
그래서 항상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매직워드를 되새겼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니, 너무 좌절할 필요도 없고, 기뻐할 이유도 없으며, 힘을 뺄 필요도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지금 와서(30대 초반) 되돌아보니, 그 때가 순수해서 또는 순진해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20대 중반)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정한 기준과 틀 속에 모든 사람들을 대입해서 선을 그어두고, 이 선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착한 사람, 이 선 밖에 있는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맞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거 같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라고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며,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참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친한 언니가 내가 안쓰러웠던 지 나에게 필요한 매직워드를 가르쳐주었다. 언니는 그냥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리라고 가르쳐줬다. 그때, 그 말을 듣는 순간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나와 맞지 않던,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던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던졌던 수많은 “왜?”라는 질문이 오히려 그 사람과 나의 사이를 선으로 긋고, 경계를 만들었던 것 같다. 정말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내가 납득될 때까지 “왜?”라고 따져 묻기 전에,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사정이 있을거야” 라고 믿고, 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은데, 어찌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냥 포용하는 수밖에.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의 가치관과 생각의 기준들이 확고해진 부분도 있지만, 언니가 가르쳐 준 매직워드 덕분에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말랑말랑해졌다.



Enough! (20대 후반)

나의 20대 후반은 취업 후 직장생활 3–4년 차 정도 쯤이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여유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여유를 ‘나' 또는 타인을 살피고, 배려하는데 쓰지 않고, 오히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채찍질하는 데 쓰고 있었다.어떻게 하면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연봉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더 큰 기업으로 이직하려면 어떤 걸 더 공부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한테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등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평균 이상의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짧은 시간 동안 작게나마 이루었던 나의 성과며 나의 노고와 시간들이 모두 헛되이 느껴졌다. 단순히 남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와 평균 이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매순간 나를 맹목적으로 갈아넣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교수님께서 눈빛을 잃어가며 메말라가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Enough!”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순간 ‘Enough'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Stop’이라고 들렸다. ‘이미 충분하니 그만 멈추어도 된다’라는 말이 내게 필요했던 것 같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자발적이었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뒤쳐지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에 온전한 나의 의지라고 할 수 없었다. 열심히 챗바퀴를 돌리던 내게 ‘이만하면 충분해. 이제 챗바퀴에서 내려와도 돼'라는 말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 이후로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한 생각이 들거나 자괴감이 들 때면, 매직워드 ‘Enough!’를 되뇌었다. 충분을 넘어 자족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과 마음을 갖기를 소망해본다.            



취해 있지 마라 (30대 초반)

뭐든지 과유불급이라 했다. ‘Enough’를 매직워드로 많이 되새겼던 때문일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됐지'라는 안일함과 나태함을 넘어 때로는 교만함까지 이를때가 있다고 종종 느낀다. 기존에 해왔던 관성에 젖어 또는 익숙한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며, ‘해봤는데, 겪어봤는데, 지나와봤는데 이게 최선이야.’라며 현 상태에 머무르는 선택을 하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해왔고, 잘하고 있다며 나 자신을 토닥이는 것은 너무나 필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허무한 자기 위로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미생의 오차장이 장그래에게 한 말이 너무나도 머릿 속에 맴돈다.
“취해 있지 마라” 미생 16국에 나오는 말이다. 회사를 퇴사한 김선배가 오차장을 찾아와 “회사가 전쟁터라고 ? 밀어낼때까지 그만두지마라 밖은 지옥이다” 라는 명대사를 남긴 회다. 김선배는 오차장을 만나 다시 회사로 돌아오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돈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오차장은 다시 김선배를 찾아 돈을 돌려주며 장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요. 어린 친구가 취해 있지 않더라구요.” 라며. 너무 멋있는 말이다. 최고의 극찬이 아닐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중심있게 균형잡힌 삶을 묵묵히 살아낸다는 거. 내가 하고 싶은 바로 그거다. 그래서 난 30대 초반인 요즘(오늘도)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 된다고 느낄 때, “취해 있지 마라”고 매직워드를 외쳐본다.      



길을 잃었을 때, 이정표가 되어줄 나의 매직워드들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면 어김없이 ‘매직워드’를 떠올린다. ‘매직워드'는 내가 성장해 온(또는 지나 온)시기에 맞춰 내 삶의 마일스톤(이정표)가 되어줬다. 길을 벗어나 헤매고 방황할 때, 다시 내가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리셋을 도와주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매직워드'를 거치게 될지,어떻게 ‘매직워드'가 변해갈지 궁금하다. ‘매직워드'로 나를 성찰하면서, 성숙한 어른으로 깊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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