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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랍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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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웅 Feb 04. 2023

중동 그리고 가려진 진실

요르단 암만عمان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대를 잡은 택시 기사는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크리스찬이세요?” 갑작스러운 종교 질문에 나는 한동안 말없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인 이곳에서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종교는 들어내고 싶지 않았는데… 택시 기사 앞에서 나는 이실직고해야 했다. “네, 크리스찬이예요.”


눈 미러로 살짝 보이는 그의 얼굴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그저 창밖으로 보이는 암만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사람들과 자동차로 뒤엉킨 시장 거리의 모습. 그 속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 강렬한 색깔을 자랑하는 과일과 야채들. 히잡حِجَاب hijab을 쓰고 있는 여성들. 새하얀 모스크와 그 안에서 기도하는 이들. 그리고 저 멀리 언덕에 빼곡히 들어선 회색빛 집들. 집집마다 달려있는 하얀색 위성접시. 그렇게 내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모든 것들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택시 안에서 (이집트, 카이로)


택시 기사는 다시 입을 뗐다. “모든 것이 뉴스에서 보는 것만 같지는 않아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종교가 다르다고 테러를 행하고 서로 죽이고 해코지하지 않는다고요.” 아마도 그는 불편해하는 나의 모습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내가 알고 있던 중동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내가 생각하던 중동과 아랍 그리고 이슬람은 서양과 끊이지 않는 갈등이 있는, 기독교를 배척하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힘없는 이들이 억압받는,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고로 ‘샬롬’שָׁלוֹם shalom, 평화가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기 동네는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이에요. 그리고 바로 옆은 크리스찬들이 사는 동네예요. 저들은 모두 아주 좋은 친구이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렇다. 우리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물론 이런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다. 천 년간 이어진 종교적 정치적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이슬람 극단주의Islamic extremism에 빠진 이들은 여전히 테러를 자행하며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히잡에, 또는 니캅نقاب niqāb이나 부르카برقع burqu에 가려진 그 모습을 위협적이라 잘못됐다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색안경을 끼고 계속해서 이들을 본다면, 과연 언제쯤이나 돼서야 우리는 진실을 볼 수 있을까?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택시 기사는 다시 내게 말했다. “내가 볼 때는 여기 중동보다 한국이 더 위험한 것 같아요. 한국이야말로 아직 북한과 대치 중이지 않나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전개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외신 뉴스에 보도되는 경우가 북한의 도발 때 말고 또 언제 있겠는가? 외국인들이 반복적으로 보는 모습은 북한의 각 잡힌 열병식과 커다란 무기들, 그리고 군사경계선의 긴장된 모습이다. 그저 테러의 참상을 보며 중동이라 일컫고, 총을 든 테러리스트들의 모습을 보고 이슬람교도라 일컬으며 반복적으로 학습한 것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미디어에서 보는 것만 보고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나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반복적인 이미지를 시청한다. 그리고 왜곡과 편견으로 포장된 사실만 알도록 학습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진실은 다시 한번 가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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