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고 푸르른 기억, 오키나와
선명하고 푸르른 기억, 오키나와
그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회사에 여름휴가가 8월 초인데 함께 여행을 가면 어떨까 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나도 그도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했고, 심지어 그때까지 근거리 여행도 함께 가본 적이 없어서 대답을 머뭇거렸지만, 이 기회에 좀 더 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잡다한 고민은 잠시 서랍에 넣어두고 바로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원래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시기에 여행을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의 회사는 여름휴가 일정이 8월 초에 고정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성수기에 여행 일정을 맞추게 되었다. 뭐 사람이 많으면 어떻고 조금 비싸면 어때, 함께 하는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어?
제일 먼저 가장 중요한 여행지를 먼저 고르게 됐는데, 사실 둘의 여행 성향이 구두로 얘기는 나눴지만 정확히 파악이 안 된 상태라 너무 고난도 여행지는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했다. 결국,
이동시간이 짧고
관광, 휴양, 레저를 조금씩 즐길 수 있으며
둘 다 한 번도 안 가본 곳
으로 방향을 좁힌 후 여러 곳을 리서치한 결과, 최종 결정된 곳이 오키나와였다. 오키나와는 최근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추천하는 여행지여서, 한동안 직접 가보고 싶은 여행지 랭킹 1위였다. 다행히 그도 오키나와가 위의 조건에 잘 맞는 여행지인 것 같다고 동의해서 결국 첫 번째 여행지는 오키나와로 결정되었다.
공교롭게도 내 별명이 오크라 '오키도키, 현오키, 오키' 등으로 베리에이션(?)돼서 불리는데, 가끔씩 혼합형 별명으로 나오는 게 오키오키 오키나와였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별명이라 그땐 그냥 그런 곳이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그때 그렇게 외쳤던 그 오키나와에 가게 되다니! 말로만 듣던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기분에 잠시 설렜다.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8월 초에는 태풍이 랜덤하게 오는 시기라 잘못 걸리면 여행하는 내내 비가 올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것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방금 비가 내려서 우산을 펼치면 바로 쨍쨍해지는, 변덕이 매우 심하다고... 그리고 심지어 어마어마하게 덥다는 소문까지!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으로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밖은 더워도 가게 안에는 대부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둬서 이동하는 중에만 더위를 잘 피할 수 있으면 괜찮다고 해서 약간 위안 삼기로 했다.
오키나와의 날씨에 대해 어마 무시한 소문만 듣고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고 갔는데, 실제로 오키나와에 도착해서 머무는 동안 마지막 출국하기 몇 시간 전 빼고는 날씨가 모두 화창해서 가는 곳마다 인생샷이 나올 지경이었다. 주변에 비슷한 시기에 앞뒤로 다녀온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혹시 모르니 모두 방심하지 마시고 우비 혹은 우산, 자외선 차단제, 그리고 슬리퍼를 꼭 챙기시길...
오키나와는 크게 북부-중부-남부로 나누어 여행하게 되는데(오키나와의 지역적 구분은 위키나 여행 관련 사이트에서 자세하게 확인 가능하다.) 대다수의 여행 경험자들이 3박 4일 내지 4박 5일 정도의 기간을 추천한다. 4~5일이면 웬만한 북부-중부-남부의 대표 여행지는 둘러볼 수 있다. 나와 남자친구는 3박 4일 머무는 일정으로, 하루에 한 2~3 군데의 코스를 밟는 스케줄로 크게 무리하지 않고 둘러보는 일정을 계획했다. 처음 가는 여행이고 심지어 그 첫 여행 장소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오키나와인데 서로 힘들고 지친 기억으로 남으면 안 되니까.
오키나와의 음식은 일본 본토랑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라 흔히 생각하는 일본 음식을 생각하고 갔다간 많이 실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직접 먹어본 다음에 실망해 보고픈 싶은 나란 돼지...) 대표적인 음식으로 오키나와 소바, 바다포도(우미부도), 오리온 맥주, 스테이크, 블루씰 소금 아이스크림, 오키나와 특산 사시미/초밥, 앤더버거(A&W 버거)와 루트비어 등이 있는데, 개인적인 입맛으로는 어느 하나 맛이 없는 게 없었다. 함께 여행한 그도, 나도 혀가 수용할 수 있는 맛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웬만한 음식이 다 맛있었다. 특히 오키나와 소바는 한국인의 입맛에 굉장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인데, 이것은 다른 편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이어 가겠다.
비행시간이 짧은 곳으로 떠나고 싶은 분
관광, 휴양, 레저를 조금씩 다 즐겨보고 싶은 분
가족단위, 특히 아이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야 하는 분
떠나기 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가져가니 꿀이었던 아이템들을 모아봤다.
1. 차량용 햇빛 가리개 ★★★★★
오키나와는 많은 여행객들이 차량 렌트를 통해 이동하게 되는데, 이때 잠깐 어디 구경이라도 다녀오면 8월의 햇볕에 차량 내부가 거의 오븐 수준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차에서 떠나기 전에 차량용 햇빛 가리개를 잠시 설치해두고 간다면 약간의 수고로 상당히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남자친구가 디테일하게 챙겨 온 물건 중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장 쓸모 있었던 물건이었다.
2. 선글라스 ★★★★★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제대로 된 선글라스가 없어서 이번 여행 때 굳이 사가지고 갔는데,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햇볕이 강렬하다. 오키나와의 풍경을 맨눈으로 보고 싶다면 선글라스는 필수!
3. 휴대용 선풍기 ★★★★☆
8월 초 오키나와의 날씨는 너무나 덥고 습한데, 매번 수동으로 부채질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따라서 휴대용 선풍기(요즘 흔하게 쓰는 usb 충전도 되고 이왕이면 풍력이 센 기종을 추천)가 그렇게 유용할 수가 없었다.
4. 포켓 와이파이 ★★★★☆
아마 이건 오키나와 여행에 대해 조사를 해 본 분들이라면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아는 거 알면서도 한 번 더 강조해본다... 두 명이라 유심보다 포켓 와이파이가 저렴해서 신청했는데, 배터리도 한번 충전하면 꽤 오래가는 편이고 쓰는 동안에는 와이파이 1도 신경 안 쓰고 사용할 수 있었다. 필수 아이템!
5. 래시가드 ★★★☆☆
8월 초에는 비키니나 모노키니는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화상을 예방하려면 최대한 몸을 가릴 수 있는 래시가드를 챙겨가는 편이 훨씬 좋다.
6. 챙 넓은 모자 ★★★☆☆
챙이 넓은 모자도 거의 필수 품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뜨거운 햇살 때문이다. 얼굴에 화상을 입는 것도 예방해주지만, 땀으로 범벅된 머리를 살짝 감춰주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소중한 아이템이었다.
7. 채도 높은 립스틱 ★★★☆☆
8월의 오키나와는 너무 더워 야외 일정시 땀을 많이 흘리면 메이크업도 삽시간에 무너져 버린다. 이땐 과감하게 피부 표현을 포기하고, 칙칙한 피부 대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채도 높은 립스틱을 추천한다.